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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가정부(헬퍼) 문화

또 다른 가족 구하기

by 싱대디

이제 비자도 승인이 완료 되었고, 다음으로 해야할 일은 집을 구하고 가정부를 찾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이미 가정부와 함께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최대한 빠르게 구하는 것이 첫번째 목표이다.


한국에서 “가정부가 있다”고 하면 흔히 ‘부잣집 이야기’처럼 들리곤 한다. 하지만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가정부 제도가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내린 곳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이곳에서 가정부(Helper)는 특별한 존재라기보다는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제도이자 문화다.


개인적으로 나는 싱가포르의 여러 단점들이 헬퍼 문화 하나로 상당 부분 상쇄된다고 생각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주재원 가족이나 친구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도 헬퍼 제도라는 얘기를 종종 들었는데, 그 마음을 완전 공감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싱가포르에서는 가정부를 헬퍼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도 최근 싱가포르와 홍콩의 헬퍼 시스템을 벤치마킹해 시범 도입하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아직 미흡해 보이는 정부 차원의 체계적 관리와 보다 높은 비용들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부에 대한 사회적 인식 등이 동시에 개선되어야 하기에 갈길이 멀어 보인다.




그럼 어떤 점에서 헬퍼 문화가 이렇게나 잘 형성된 것일까?


싱가포르에서 헬퍼 문화가 이렇게 잘 정착한 이유는 분명하다. 정부가 제도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꾸준히 관리해왔기 때문이다. 여성의 경제 활동을 지원하고, 고령화 사회의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안정적인 헬퍼 제도가 필요하다는 걸 정부가 일찍이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헬퍼를 고용하는 가정뿐만 아니라, 헬퍼 개인의 권리까지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먼저 지원 자격부터 깐깐하다. 최소 8년 이상 정규 교육을 받은 23~50세 여성만 지원할 수 있고, 국적 또한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으로 제한된다. 특히 영어가 유창한 필리핀 출신 헬퍼는 전문성이 높아 상대적으로 급여도 더 높다.


헬퍼들의 권익 보호도 철저하다. 고용법에 따라 휴일 보장, 정기 건강검진, 기본 복지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고용주가 법을 위반하면 벌금이나 징역형까지 받을 수 있다. 제도가 단순히 고용주 편의에만 맞춰져 있지 않고, 헬퍼를 하나의 노동자로 존중한다는 점에서 제도적 안정성이 크다.


또 다른 이유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이다.

보통 헬퍼의 월급은 600SGD에서 1000SGD 사이로 형성이 되어 있다. 나의 경우엔 마지막에 함께 있었던 미얀마 출신 헬퍼는 경력이 10년 정도였기에 월급으로 880SGD로 계약하고 고용했다. 여기에 매월 약 300 SGD 정도의 세금(고용주가 대신 부담), 보험비와 건강검진 비용 등 부대비용까지 포함하면 한 달에 약 1200 SGD(한화 130만 원 정도)가 든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싱가포르의 집 구조 자체가 헬퍼 방을 고려해 설계되다 보니, 헬퍼를 고용하려면 방이 최소 3개 이상인 집을 선택해야 한다. 2베드에서 3베드로 넘어가는 순간 월세가 확 뛰어버리니, 사실상 또 다른 간접비용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교했을 때 비용적인 부담은 오히려 합리적인 편이다. 무엇보다 싱가포르 헬퍼들은 교육과 직업의식이 잘 갖춰져 있어 전문성이 높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히 육아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집안 대부분의 일을 함께 돌보며 육아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체감 효율이 높다.




하지만 모두가 만족하는 건 아니다. 몇 달을 못 버티고 계약을 종료하는 경우도 흔하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상시 거주 문제다. 가족 외에 또 다른 사람이 집에 함께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처음엔 무척 어색했다. 헬퍼가 집안일을 하는데 내가 소파에 앉아 있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고, 좁은 집에서는 공간적·심리적 불편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둘째, 핏(fit)의 문제다. 좋은 헬퍼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설령 만났다고 해도 우리 집의 생활 방식과 성향이 잘 맞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다. 결국 사람 대 사람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헬퍼를 구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소개
이미 다른 가정에서 검증된 헬퍼를 소개받는 방식으로 가장 안전하다. 나 역시 첫 헬퍼를 소개로 구했는데, 여러모로 만족스러웠다.

에이전시
선택지가 다양하고, 서류·비자·건강검진 같은 절차를 대행해주기에 편리하다. 다만 수수료가 1,000~2,500 SGD 정도로 만만치 않다.

커뮤니티 및 온라인 플랫폼
페이스북, HelperPlace 같은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 수수료가 거의 들지 않고 지원자 풀도 넓지만, 정부 서류나 절차는 고용주가 직접 챙겨야 한다.


이번에는 나는 HelperPlace를 통해 직접 고용하려 한다. UI가 기대 이상으로 깔끔하고 이곳에서 활발히 구직하는 헬퍼들 또한 많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고용 게시글 하나에 150명 이상 지원 했다. 비용 또한 약 7만원 정도 발생했기에 에이전시에 비하면 상당히 가성비 있는 선택이다. 물론 서류 처리나 정부와의 소통은 고용주인 내가 직접 다 해야하므로 다소 번거로울 것이다.

helper2.png 이번에 올린 공고


요즘은 밤마다 지원자 프로필을 넘겨보다가, 마음에 드는 후보가 있으면 영상통화로 인터뷰를 본다. 결국 2년 동안 함께 살 가족을 뽑는 일이니 신중할 수밖에 없다. 아직은 내 조건에 딱 맞는 분을 찾지 못했지만, 언젠가 좋은 인연이 찾아와 줄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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