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직장편: 인터뷰와 채용

뽑히는 일만큼, 뽑는 일도 쉽지 않은

by 싱대디

새 회사에 온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어떻게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갔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다 보니, 입사 초기에 스스로 설정해 두었던 일년 뒤 프로젝트가 과연 기한 안에 마무리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첫 한 달 동안은 사실 리서치를 거의 하지 못했다. 환경 세팅을 하고, 내부 시스템을 이해하고, 팀 구조와 사람들을 파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그중에서도 가장 예상보다 어려웠던 부분은 개발자들과의 소통이었다.


팀원들이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고, 개발자 대부분이 뉴욕과 시카고에 있다 보니 시차로 인한 협업 효율이 생각보다 크게 떨어졌다. 물론 지금은 추수감사절과 연말 시즌이 겹쳐 전체적으로 속도가 느린 시기이긴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템포로는 내 성에 차지 않는다.


입사 전에는 내게 두 명 정도의 헤드카운트가 배정되어 있었다. 원래는 둘 다 퀀트 리서처로 채우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팀을 세팅해 보니, 이 단계에서는 리서처보다 개발자가 훨씬 더 시급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열두 시간을 흘려보내며, 뉴욕의 아침을 기다리는 기도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혼자서 개발까지 병행하다 보니 리서치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고, 이 구조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빠르게 방향을 틀어, 리서처 한 명과 개발자 한 명을 뽑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고 보스에게 컨펌을 받았다.


HR 팀을 통해 채용 공고를 올리자마자 며칠 만에 지원서가 수백 장 쌓였다. 그렇게 지금까지 스무 명이 넘는 지원자들을 인터뷰했다. 서류상 스펙만 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들뿐이다. 전 세계 최상위권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친 사람들도 많고, 각종 올림피아드 수상 경력 역시 드물지 않게 보인다. 실제 인터뷰를 하다 보면, 어떤 질문에서는 오히려 내가 배우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느끼는 건, 정말 ‘좋은 사람’을 뽑는 일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사람이란 단순히 똑똑한 사람이나 스펙이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에게 중요한 건 ‘핏’이다. 지금 이 팀, 지금 이 상황에서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무기를 가진 사람.

그 무기가 반드시 총일 필요는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활이 훨씬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가진 강점이 지금 우리 팀의 결핍을 정확히 채워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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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다시 미국 내 고학력자들 사이에서 헤지펀드나 트레이딩 펌으로의 취업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이 문을 통과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들어가기 어려울까. 내 입장에서 정리해보면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애초에 뽑는 사람 수 자체가 적다. 골드만삭스나 JP모건 같은 셀사이드는 직원 수가 수만 명에 이르지만, 바이사이드의 경우 탑티어 회사들조차 몇천 명 수준인 경우가 많다. 자리가 절대적으로 적다. 그래서 실제로는 셀사이드에서 몇 년간 경력을 쌓은 뒤 넘어오는 경우를 자주 본다.


둘째는 비용 문제다. 트레이딩 팀에서 사람을 뽑으면 그 인력의 연봉, 보너스, 각종 부대 비용이 모두 팀의 비용으로 잡힌다. 지금 내가 채용하려는 인원 역시 전부 내 밑으로 산정된다. 결국 우리 팀이 만들어내는 성과로 이 비용을 모두 커버해야 한다는 의미다. 처음 세팅하는 팀 입장에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신입이라 하더라도 요즘은 제대로 된 인재를 데려오려면 연봉 몇 억은 기본으로 깔고 가야한다.


셋째이자 현실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경업금지 조항이다. 실력이 좋을수록 경업금지 기간이 길고, 실제로 enforce 될 가능성도 높다. 지금까지 마음에 들었던 후보가 두 명 정도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경업금지가 1년이다. 오늘 당장 오퍼를 준다 해도 실제로 내 옆자리에 앉는 시점은 2028년 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설령 모든 걸 감수하고 사람을 뽑았다고 해도, 몇 번의 인터뷰만으로 그 사람을 정확히 판단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과거에도 1년을 기다려 팀에 합류시켰지만, 기대만큼의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 사례를 여러 번 봐왔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지금까지도 레퍼런스를 통한 채용이 계속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인맥 채용’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선택에 가깝다. 이미 함께 일해 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최악의 선택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스무번의 면접을 진행하며 벌써 조금 지친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인터뷰 들어가기 전에 좋은 사람이길 기도하며 들어간다. 결국 인터뷰 하는 시간 자체도 내가 해야 할 일을 잠식하는 또 하나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또 연말이다. 일은 새롭고, 어렵고, 종종 귀찮지만 그래도 여전히 설레고 재미있다.

내년에도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리듬으로 걸어가며 지금보다 한 걸음 더 자라고,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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