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직장편: 열두번의 면접

끝이 없는 검증 뒤에 찾아온 새로운 챕터

by 싱대디

3라운드까지만 해도, 아무리 많아도 세네 번 정도만 더 보면 끝나겠지 싶었다. 한국에서 일할 땐 대부분 5라운드 안에 끝났고, 해외라고 해서 그렇게까지 다르진 않겠지 싶었다. 국내 회사라면 대부분 5라운드에서 면접이 마무리되니, 나 역시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마음으로 4, 5라운드에 임했다.


보통은 일주일 안에 결과가 왔지만, 이번엔 유독 조용했다.

"팔로우업을 해야 하나? 너무 급해 보일까?"

혼자서 이래저래 여러 상상을 펼치다, 결국 며칠을 못 참고 인사팀에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도 답이 없었다.

그럼에도 2주 넘게 소식이 없었다.

‘아, 이렇게 떨어지는 건가’

싶던 찰나, 다시 연락이 왔다.

대부분의 팀원들이 연말 휴가 중이라 피드백이 늦어졌다는 설명과 함께 6라운드 일정이 잡혔다. 이번엔 몇 라운드가 남았는지조차 신경 쓰지 않고, 연락이 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으로 그렇게 다음 면접에도 전력을 다했다.


이번 면접은 CTO와 시니어 개발자가 등장했다. 내가 온보딩할 경우 팀에서 개발적으로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내 역량이 팀에 얼마나 맞는지, 또 나에게 팀이 몇명의 개발자 인풋이 필요할지 등, 단계별로 꼼꼼하게 검증이 이어졌다. 다행히 이번 라운드는 테스트도 없었고, 나의 전략과 팀에서도 현실가능성 있게끔 세팅을 해줄 수 있는지만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면 됐다. 면접을 마치고 나서야, “이젠 진짜 끝이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이제 정말 마지막 검증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은 또 빗나갔다. 다음 라운드가 또 잡힌 것이다. 어느새 면접이 한 달 반을 넘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진행하던 다른 두 회사 중 한 곳에서는 이미 오퍼가 왔고, 빠른 답변을 요청받고 있었다. 내 나름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지만 또 이를 티내고 싶진 않았다. 끝이 안 보이는 터널 같았지만, 다음 라운드가 마지막일 거라는 희망 고문은 여전히 유효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면접 프로세스나 남은 라운드 수를 물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샤이 코리안의 본능 때문인지 그땐 그저 철저히 을의 입장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또 다른 한달 동안 7,8,9라운드까지 마친 후, 1라운드 때 날 처음 인터뷰했던 보스와의 면담이 잡혔다. 이번엔 자신 있게 아내에게 말했다.

“이번엔 진짜 오퍼 받는 단계인 것 같아.”

기대에 부응하듯, 이번에는 면접이 아니라 현실적인 연봉 협상, 싱가포르 비자, 가족 동반 여부 등 실질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속으론 이미 몇 번이고 환호하면서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싱가포르 이삿짐을 싸고 있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미팅이 끝날 무렵 보스가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우리 싱가포르 팀은 오퍼를 주기로 했지만 아시다시피 저희 팀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서, 마지막으로 런던과 뉴욕에 있는 보스들과의 면접이 남아 있어요. 두 분 중 한 명이라도 fail을 주면 통과가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즈음엔 솔직히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다. 면접이 무섭다기보단, 끝없이 이어지는 긴장감과 불확실성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여기까지 왔으니 할 수 있는 건 오직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었다.


시차 때문에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인 하루의 가장 피곤한 시간에 면접이 잡혔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과 마주했다. 두 보스 모두 꽤나 강한 인상과 포스를 풍겼다. 다른 때보다도 더 긴장이 되었다. 이미 ‘보스’라는 사실에 선입견이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들은 성공한 트레이더의 아우라가 물씬 났다.

군더더기 없는 질문들. 감정 없는 표정. 핵심만을 찌르는 말투.

그 자리는 더 이상 “면접”이라기보단, 최종 심사에 가까웠다.

"이 사람이 진짜 우리 팀에 필요한 사람인가?"

그들의 모든 질문은 그 한 문장을 중심으로 맴돌았다.


일 년처럼 길었던 일주일이 흐른 어느 날, 마침내 인사팀의 메일이 도착했다.
“모든 면접을 통과하셨으며, 이제 Next Step으로 넘어갑니다.”

Next Step이라니.... 아직도 끝이 아니라고..?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기쁨보다 먼저 터져 나온 건 어이없는 웃음이었다.


남은 절차는 두 가지였다.

Reference check(레퍼런스 체크)

Background check(백그라운드 체크)


처음엔 낯설었지만, 사실 글로벌 기업에서는 이 두 가지가 거의 필수 절차다.

레퍼런스 체크는 말 그대로 내 평판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전 직장 상사나 동료 등 세 명에게 회사가 직접 연락해 나에 대한 평가를 받았다. 이 과정은 이메일이나 전화로 진행된다. 괜히 내가 뭐 잘못했는지, 서운하게 한게 있는지 되새기곤 했다.


두 번째는 더 길고 복잡했다.

백그라운드 체크는 전문 업체(HireRight 등)가 진행했는데, 이름만큼이나 정말 꼼꼼했다. 하루 이틀이면 끝날 줄 알았던 나는 큰 오산이었다. 범죄기록, 학교 졸업증명서, 영문 성적표, 심지어 5년 전 인턴 경력까지 일일이 확인 전화를 돌렸다. 심지어 들은 바에 따르면, 이 중 하나라도 거짓이면 오퍼가 취소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괜히 마음이 불안해졌다.


결국 이 백그라운드 체크는 2주가 넘게 걸렸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그 문장이 도착했다.

We are delighted to extend you an offer…

그 말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계약서와 복지 안내서가 첨부된 이메일을 보며, 그날 밤은 눈물이 날 뻔했다. 연봉은 두 배로 뛰어 있었고, 복지는 지금껏 겪어본 어떤 회사보다 좋았다. 4개월 동안 얼굴이 반쪽이 됐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 셈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계약서에 적힌 출근일이, 오늘로부터 무려 6개월 뒤였다.

아니 6개월 뒤라니?

면접 때 팀은 분명 "하루라도 빨리 와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번엔 비자가 문제였다. 분명 팀에서는 면접 과정에서 가능하면 최대한 빠르게 입사를 하면 좋겠다는 의사를 비췄다. 이번엔 비자 문제였다.

내가 싱가포르 국민이 아니니 스폰이 필요한 상황이고 회사 내부 일정상, 그 시점이 되어야 준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편안한 날이 없다. 처음엔 뜻밖이라 놀랐지만, 이젠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이 회사와의 여정은 처음부터 예측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으니까. 끝이 났다는 안도감과, 끝났는데도 끝난 게 아닌 듯한 묘한 기분.


그래도 이제는,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었다. 고민한들 시간만 낭비일 뿐이다. 남은 기간동안 오랜만에 가족과 온전히 시간을 보내며 다음 챕터를 위해 천천히 준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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