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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Oct 20. 2017

'배제의 논리'로 밑천 드러난 코이케 유리코

'언더독' 효과만 낳은 채 유권자에게 버림받을 판

이번에도 일본 정치 얘기를 다룰까 한다. 코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의 '밑천'이 예상보다 빨리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글('희망' 내걸고 야당 흡수하는 코이케 신당) 마지막 구절에, 곧 있을 일본 총선거(10월 22일)에서 코이케가 긍정적 결과를 낳더라도 실망을 안길 거란 얘기를 했다. 


하지만 그 시점이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왔다. '희망의 당'이라는 잡탕당을 만들면서도, 나름대로는 '우익적 노선'을 견지하려고 하다 유권자가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코이케의 주요 지지자 성격을 나눠보면, '여성(특히, 중년 이상)' '실용노선(환경, 육아 등)에 관심' '적극적 우익 노선에는 거부감'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들이 희망의당의 행보에 "이건 아니다"라고 느껴 이탈하는 모습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코이케의 '헛발질과 배제의 논리'로 야당이 분열돼, 아베 자민당에 이익을 안길 분위기다. 민진당(民進党)을 해체하고 코이케 밑으로 들어간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전 대표는 역적이 될 공산이 커졌다.


물론, 이렇게 된 건 일본의 중도+진보(리버럴) 세력이 허약한 데 원인이 있지, 일시적인 정치공학적 선택만으로 벌어진 일이 아님을 다시한번 강조해둔다. 

코이케 유리코는 이달초 민진당과 합치면서 처음엔 누구든지 받아들일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보수적 색채의 인사들뿐만 아니라, 진보 세력(대표적으로 칸 나오토 전 수상, 에다노 유키오 전 관방장관 등)도 코이케 밑으로 들어갈 듯했다.


2009~12년 집권했던 민진당은 세력을 불려오면서 진보(헌법개정반대, 탈원전 등, 일본에서는 주로 '리버럴'이라고 함)와 보수(집권을 위해 그냥 능력있어보이는 사람을 받아들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자민당과 차이 없는 사람들)를 모두 끌어안았다.


우익으로 알려진 코이케 유리코에겐 선택의 순간이 찾아온 셈이다. '그동안 숨겨온(?) 본심을 명확히 밝힐 것인가' '지금은 아베를 쓰러뜨리는 게 중요하니 차이는 나중에 조정할까' 두 선택을 놓고 망설였다. '탈원전' '당장 헌법개정 필요 없다'는 식으로 비교적 리버럴적 입장을 보였으나, 만약 전자를 선택하면 '자민당과 차별화'는 어려워질 공산이 컸다.


결국 코이케의 선택은 일종의 '사상검증'이었다. 


일본에서 2015년 통과한 '안보법제'에 대한 입장을 기준으로 공천(공인)을 주겠다고 밝혔다. 안보법제는 자위대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것으로, 민진당은 국회에서 육탄저지를 시도할 정도로 강경하게 반대했었다. 한마디로, 민진당 세력을 두고 강경 반대 정책에 대해 '찬성입장'을 보이지 않을 경우, '오지말라'는 얘기였다.


아래는 관련 발언이 있던 기자회견이다.

여기서 코이케는 "민진당 전원을 받아들일 생각은 '전혀 없다(さらさらない)'"고 발언한다. 이게 기폭제가 됐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리버럴 세력이 "그럴 거면 따로 나가서 살림을 차리겠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일본어에는 '후미에(踏み絵)'라는 단어가 있다. 과거 에도시대에 기독교도들을 탄압할 때, 예수의 그림을 밟지 못하는 자들을 처형했던 데서 온 말이다. '희망의 당'이 민진당 리버럴 세력에게 '후미에'를 강요한다는 프레임이 짜이고, 배제된 '피해자'가 누군지도 명확해졌다.


필자 역시 일본의 리버럴 세력에 무조건적으로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신념을 지키겠다는 상황은 한 편으로는 짠했다. 특히, 오랜 기간 시민단체 활동을 해온 츠지모토 키요미(辻元清美) 의원의 아래 발언은 일본에 얼마 남지 않은 '신념형 정치가'의 모습도 얼핏 보였다. 

"리버럴의 힘과 중요성을 믿고 있다. 그렇기에 희망의 당에는 가지 않는다. 코이케씨는 관용적인 보수의 입장, 나는 현실적 리버럴 입장으로 아베신조 정권을 오른쪽과 왼쪽에서 눌러, 쓰러뜨린 다면 좋은 일 아니겠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겠다고 나선 셈이다. 그러자 인터넷에서는 '넷우익'을 중심으로 조롱이 쏟아졌다. '낙선 확정'이라는 말도 많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콘텐츠다. 츠치모토는 예전부터 '자이니치(在日=재일조선인)'니 '북한편(=종북)'이니 불려왔던 인물이기도 했다.


한국정치에서 종종 나오는 것이'동정표가 가장 무섭다'는 말이다. 감정적으로 불쌍하게 여겨지는 후보에게 이미 이성은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한국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되겠다. 학문적으로는 '언더독(underdog)'효과 라고 한다. 아래 기사에서 잘 설명해두고 있어 옮겨본다.


희망의 당에서 배제된 의원들이 바로 언더독의 대상이 됐다. 에다노 유키오가 대표를 맡고, 츠치모토는 주요 직책에 보임됐다. 당 이름은 헌법을 지키는 차원에서, '입헌민주당(立憲民主党)'으로 지었다. 


개인적으로 일본 정치외교를 공부하면서 리버럴 세력의 '비현실성'이 요새는 적지 않게 느껴지고, 자위대를 현 상태로 두는 것에는 부정적 입장이 됐다. 그래도 아베세력을 신뢰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개헌은 좀 더 온건한 사람들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달초까지만 해도 입헌민주당은 그냥 '패배세력'의 '마지막 발악' 정도로 비쳐졌다. 2011년 칸 나오토 정권이 동일본대지진에 제대로 대처 못했다는 의식도 다소는 남아 있었다. 


아래 사진은 지진이 일어나면서 에다노 유키오 당시 관방장관(정부 대변인격)이 얼마나 초췌해져 가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일본에서도 당시 민주당 정권이 삽질은 했어도, 간 나오토 수상이나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에 대해 '안타깝다'는 여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지진때 정부 대변인역할을 하며 피폐해져가던 에다노. 출처: http://blog.goo.ne.jp/hikarishokubai-2009/e/cf28b2434599f8f8c16356



결정적으로 흐름이 바뀐 건, 일본 리버럴 세력이 이대로는 "다 죽는다"는 위기감에 나선 데 있었다. 상징적인 사건이 입헌민주당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급증한 일이다. 


아래 기사는 트위터 데이터를 빅데이터 분석한 결과(니혼게이자이신문), 입헌민주당이 희망의당을 훨씬 제치고, 자민당에 육박할 정도로 거론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파란색은 입헌민주당, 녹색은 희망의당이다.


빨간색은 자민당, 파란색은 입헌민주당, 노란색은 공산당이다.



선거 여론조사에서도 입헌민주당의 기세는 확인되고 있다. 희망의 당을 제치고, 2당으로 오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야당이 완전히 분열되면서 같은 선거구에 여당 후보 한 명에 야당 후보가 여러명인 경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자민당이 어부지리로 '압승'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북한 이슈로 자민당이 압승한다는 보도도 일부 보이는데, 최소한 선거 중후반 북한은 그닥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아래 SBS 보도는 한국인들이 관심 가질만한 '야마'(주제)를 일부러 잡은 측면도 있어보이나, 진실은 정치판 구도가 자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짜여지고 있다는 점에 있다)



아래 아사히신문의 최신 여론조사 결과를 한 번 보도록 하자.

'어디에 비례투표를 해야 할까' 물은 데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자민당이 34%, 입헌민주당이 13%, 희망의당 11%, 공산당 7%, 공명당 5%가 나왔다. 이달 3, 4일 조사에선 자민당은 35%, 입헌민주당은 7%, 희망의당은 12%였다.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전체 40%) 가운데서는, 입헌민주당 25%, 희망의당 20%, 공산당 11%, 자민당 7%가 나왔다. 즉, 더이상 코이케 유리코가 리버럴로는 비쳐지지 않게 된 것이다. 어찌보면 본인의 정체(?)가 일찌감치 탄로나면서 정치적 타격도 적잖게 받게 됐다.


재미있는 건 아베정권 지지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아베가 계속 총리를 하는 데 대해서도 의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베가 계속 수상을 했으면 하는 사람은 34%,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0%에 이르고 있다.그런데 선거에선 자민당이 이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민의와 괴리'된 결과가 예상된다.


(젊은층의 자민당과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가 상당히 높게 나타나는 것도 참고할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취직 문제 등 일종의 정치적 효능감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지지하는 측면도 있고, 다른 리버럴 세력의 능력을 못본 측면도 있으리라고 본다. '보수화'인 측면도 없다고는 못하겠고)


'아베보다 더한 극우'로도 불렸던 코이케 유리코는 험로가 예상된다. 어차피 '이미지 정치'로 어중간한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에 일본 유권자가 일찌감치 본질을 보게 된 점은 한 편으로 예정된 결과이겠으나, 이 때문에 아베정권 존속이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만약 코이케가 아베 정권의 압승을 저지했더라면, 결국은 희망의당 내 민진당 세력이 코이케를 억누르고 당을 장악하려 나섰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했다면 아베 정권으로서도 쉽게 헌법 개정 드라이브를 걸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 분열 상황에서 이런 시나리오는 힘들어졌다.


한국의 2016년 총선을 떠올려보면 '유권자들의 전략적 선택'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소선구제하에서 그나마 괜찮은 야당후보에 표를 몰아주고, 비례선택 때 뜻대로 투표하는 것이다. 실제 입헌민주당측에서도 '전략적 투표'를 강조하고 나섰다. 



다만, 박근혜 정권에 대한 환멸만큼, 일본 유권자가 아베정권에 돌아섰다는 증거가 없다. 


그렇기에 이변의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타격' '오산'이란 말이 나왔던 선거 초반과 딴판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그게 현 일본 정치의 상황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싶다. 리버럴세력이 조금더 현실적인 이념과 집권 능력을 기르려면 아직 많이 기다려야 할 듯 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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