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 Sep 29. 2017

'희망' 내걸고 야당 흡수하는 코이케 신당

일본 정치 기반의 허약함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

최근 일본 정치판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중간에서 왼쪽(중도진보) 세력이 허약함을 절감할 수밖에 없다. 


가장 왼쪽에 위치한 공산당은 나름대로 활약중이지만, 냉전이전에 어느 정도 세력을 떨친 사회당은 힘을 완전히 잃었다(북한과 연계해온 당은 공산당이 아닌 사회당). 공산당이라는 이름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지만 현재 일본 공산당은 완전히 기존체제화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 상황이다.


90년대 이후 생겨난 민주당(이름이 수차례 바뀌었다, 현재는 민진당民進党)은 지역이나 열성 당원 기반이 매우 허약한 상황이다. 자민당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의원들과 진보적인 의원이 권력 분점을 하고 있어 단합도 안된다. 2012년 정권에서 몰락한 뒤 정책이나 지향점도 분명치 않다.


이런 상황에 이번달 아베 수상이 갑작스럽게 의회 해산을 선언하자, 민진당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지난달 새로운 대표로 보수파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가 취임했지만 나름대로 생각한 인사가 실패했다. 검사 출신 야마오 시오리(山尾志桜里) 의원을 당 간판으로 내세웠으나, 바로 그때 주간지가 야마오의 '불륜 의혹 보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야마오 의원과 함께 마에하라보다 더 오른쪽에 있는 의원들도 당내 구조에 불만을 내비치며 하나둘 탈당하기 시작했다.


마에하라 세이지 민진당 대표


일본 정계에서는 아베가 민진당의 혼란과 북한 도발을 활용해 정권 연장을 꾀한다는 분석이 많았다. 지지율도 그럭저럭 올라갔고 지난 도쿄 의회 선거 대패로 원치 않는 이들과 내각을 짠 것도 불만이었을 것이다. 이번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승리하고 다시금 극우적 인사들을 기용해 헌법개정까지 몰아가는 게 아베의 전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 정책 관련해서는 소비세(부가가치세) 증세의 용도를 바꾼다는 공약을 내놨다. 소비세는 현행 8%에서 10%로 올리는 게 2019년 예정돼있다. 당초는 이를 재정적자를 메우는 데 쓸 예정이었다. 그러나 해산의 이유로 이 소비세를 교육이나 보육 등 복지에 돌리겠다는 방침을 들었다. 설익은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베 자민당은 의회가 개원하자마자 바로 해산해버린다는 이례적인 방침도 세웠다. 이를 통해 '모리토모' '카케' 양 사학재단 문제를 덮어버릴 기회로 삼았다. 만약 의회가 열리고 야당이 추궁하기 시작하면 지지율이 다시 떨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아베측이 세간의 허를 찌른 '기습공격'이라는 평이 나왔던 이유다.


이게 대략 이번주 초반까지의 전개다. 




여기서 잠깐 일본 의회제도를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일본 의회제도는 참의원(상원)과 중의원(하원)으로 나뉘어진다. 실질적 권력이 있는 의회는 중의원으로 법안과 관련된 건 1차적으로 이곳에서 이뤄지고, 중의원 다수당이 집권당이 된다. 한국과 동일한 소선구제+비례대표제(선거구 출마자가 득표율에 따라 비례로 당선되기도 하는 등 다른 점도 있다)로 전체 475석이다. 


임기는 기본적으로 4년이다. 하지만 일본 헌법 7조에 수상이 의회를 해산할 수 있다고 돼 있어 임기가 지켜지는 일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도 '수상이 마음대로 해산하는 게 맞는지' 최근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일본과 비슷한 제도를 유지해온 영국도 2010년쯤 수상권 견제쪽으로 해산 제도가 바뀌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국회선진화법으로 의결에 필요한 정족수가 많이 늘어난 것처럼, 일본도 중의원 3분의 2가 모든 법안 등을 쉽게 의결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다. 헌법 개정 발의 역시 중의원 3분의 2(참의원도 3분의 2)가 문턱이 돼있다. 현 시점에 일본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은 중, 참의원 3분의 2 의석을 넘기고 있다.




이번 해산과 맞물려 선거는 다음달 10월 22일 열리게 됐다. 


아래는 해산 생중계 영상이다. 의장이 수상에게서(명목은 천황) 해산취지서를 받아 읽으면, 의원들이 '만세 삼창'하고 일반인 신분으로 그대로 선거전에 들어간다. 


자민당쪽은 해산을 흘릴 초반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개헌 세력(특히 군대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헌법9조)이 3분의 2는 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코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 세력이 만든 신당도 보수 인사가 많아 결국 개헌은 어렵지 않을 거라고 봤다.


그러나 이제는 자민당의 '오산'이 흘러나오는 상황이 됐다. 우선 오산이 뭔가 나열한 뒤 그 배경을 짚어보고자 한다.


1. 북한 문제를 내세웠으나 선거로 인해 오히려 권력 공백기가 생긴다. 

-- 한국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지만 북한 위협은 어느 순간 고조됐다가 또 어느샌가 잊혀지는 일이 반복된다. 북한을 이유로 선거를 할 때,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 총을 쏴달라고 한다거나, 국내적으로 공안몰이를 하는 것은 위협이 항상 존재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선거에 북한을 이용한 일이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위협의 활용법(?)이 아직 익숙지 않다고나 할까.


2. 오히려 야당 세력에게 위기감을 안겨서 지리멸렬한 상황을 타개할 계기를 마련했다. 탈당 도미노가 예상되던 민진당 세력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한 방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특히 선거구마다 야당 후보를 단일화하는 '공투(共闘)'도 의외로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탈당 도미노도 오히려 예상치 못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루겠다.


3. 가장 큰 오산은 코이케 유리코가 예상보다 이른 시점에 전면에 나와버렸다는 것이다. 

--단순히 코이케가 신당을 응원하는 정도라면 자민당에 위협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자민당 내에선 코이케 신당이 의석을 얻더라도 '자민당 2중대'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문제는 코이케가 아예 반 아베 세력의 수장을 자임하고 자민당과도 구별되는 정책을 걸어버렸다는 점이다. 이른바 계속 견지해온 '기회주의적 포퓰리스트' 전략을 취해, 선거판 주목이 모두 코이케로 쏠려버리기 시작했다.


아사히신문 9월 29일자. 3인방이 모두 나와있다.


이 세가운데 가운데 2와 3은 자민당의 당초 예상보다 더 큰 폭풍이 될 조짐이다. 우선 코이케 세력의 움직임부터 살펴보자. 


코이케는 급거 '희망의 당(希望の党)'이라는 급조된 당을 만들고, 도쿄도지사를 하면서 스스로가 당 대표에 취임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번에 나서야 몸값이 올라갈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코이케가 내건 정책은 그야말로 잡탕인데, 일본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극우와 거리가 먼, 그야말로 '포퓰리스트(인기영합)' 정책의 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코이케의 포퓰리스트적 성격에 대해선 '도쿄의회 코이케 '압승'의 의미'에 자세히 적어뒀다). 


(물론 한국입장에서 보자면 관동대지진 조선인 추모제에 참석하지 않는 등 극우적 행보를 이어가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이게 일본 국내정치적 이슈라고는 하기 힘들어 일반적 극우보수-군대 보유를 위한 헌법개정, 원전 중시-와는 구분되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우선 '탈원전'이다. 자민당이 원전을 다시 돌리는 데 적극적인 데 비해, 일본 국민의 대다수는 원전 재가동에 반대한다. 코이케 자신이 원전과 큰 관련이 없는 만큼 인기를 위해 대표 정책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정치평론가들은 평소 원전에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다가 갑자기 탈원전을 내건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선 고이즈미 전 수상이 적극적 탈원전론자로, 코이케에게 적극 추천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헌법 개정에도 9조와 관련해서는 신중한(모호한) 입장을 보였다. 다른 조문에도 개정할 게 많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논점을 다소 흐리고 있다. 이는 우익으로도 리버럴로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되도록 많은 이들의 지지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법으로 보인다.


또, 소비세 증세가 당장 필요없다는 주장도 내걸었다. 이것도 자민당과 정책적 대립을 만들기 위해 내걸었다.


코이케의 탈원전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

'희망의 당 대중영합적 정책에 편향돼있다'고 비판하는 요미우리신문.

코이케는 여성들에게 굉장히 인기가 많다. 연령을 가리지 않고 여성들에게 '커리어 우먼'의 모델로 비쳐지고 있다. 보수적 색채를 억누르면서 이미지 관리를 잘해온 결과다(한국의 보수 여성 의원과 비교할 만한 인물은 솔직히 없는 듯싶다). 


우연히 카페 옆자리에 앉았던 60대 정도 여성 2명이 하는 얘기를 엿듣게 됐다. 이들은 "코이케에게 기대가 크다"는 데 서로 동의하면서도, 희망의 당에 보수파가 들어와있는 것이 대해서는 의문을 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자민당에게는 비판적인 얘기를 했기 때문에 아마도 코이케 당을 찍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를 일찌감치 지난해부터 포착한 일본의 방송국의 '와이드쇼(한국의 오전, 오후 종편과 비슷한 시사 프로', 주로 주부가 많이 본다)는 코이케의 일거수 일투족과 정치 상황을 대대적으로 전하고 있다. 총선의 주인공이 아베에서 코이케로 완전히 넘어간 것이다. 공세였던 자민당이 입장이 수세로 몰려버렸다.


아사히신문에서는 '도쿄는 전멸할 것'이라는 자민당 의원의 우려도 전하고 있다.


여기에 민진당은 아예 중의원에 속한 당을 해산하고 코이케 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 역시 아베쪽은 예상 못한 시도였다. "명을 버리고 실을 취한다"는 게 이유였다. 대표 마에하라와 코이케는 90년대 일본신당이라는 새 정치세력이 만들어질 때 함께 했던 동료이기도 했다. 



이 시도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예상을 넘는 효과를 낼 것으로 점쳐진다. 첫째는 희망의 당이라는 가설정당에 민진당의 선거자금(수십억엔에 달한다고 한다)과 사람이 공급된다. 조직과 자금이 더해지는 것이다. 일본 최대 노동단체 '렌고'도 코이케 신당을 지지하겠다고 나섰다(탈원전에 반대해온 단체인데 무슨 의도인지는 불명확하다).


둘째는 주목도다. 민진당의 파멸적인 시도로 대중의 관심이 야당쪽으로 완전히 쏠려버렸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지적과 함께, 저것밖에 없지 않나 하는 긍정적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그럼에도, 선거판 주목도라는 측면에서는 자민당이 우려할 수준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과 별개로 정당이 신생 정당에 흡수되는 모습은 일본 정당 민주주의의 허약함을 그대로 대변하는 모습이라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기존 정당이, 인기 있는 정치인이 하나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책적 문제, 이념적 문제를 다 갖다버리고 급조 정당에 들어가는 건 매우 한심한 일이다. 


이 때문에 민진당 내 리버럴 의원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희망의 당 이름으로 공천을 안주는 등)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지방에서 강한 자민당을 희망의 당 세력이 이길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그럼에도, 자민당 3분의 2 붕괴 확률은 커졌다.


그러나 정치, 정책을 위해 정당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자민당을 꺾고 우리가 권력을 먹겠다'는 수준의 정치와 인기 투표로 전락한 선거는 일본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일이라 하기 힘들다. 정당의 문제와 일본 시민들의 정치의식 문제가 겹쳐져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전후 오랜 기간 자민당 1당 체제와 사회당의 견제(사회당은 애초 집권 의지가 없었다는 게 정설)만으로 이뤄져오다, 냉전 체제가 무너지자 한축이 무너졌다. 하지만 냉전 이후에도 유럽 등에서는 좌파 정당이 나름 건재하다는 점에서 일본 정치 기반이 그만큼 약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일본은 한국 민주주의의 불안정성, 즉 대통령 체포와 부패 문제 등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고 불안시하지만, 한국인은 반대로 이런 '자기들끼리'의 정치가 좀처럼 바뀌지 않는 데 의문을 표한다. 


세계적으로 보면 어떨까. 영국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민주주의 지수를 매년 발표한다. 이를 한 번 보자.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


일본의 민주주의 지수

이 지표만 놓고보자면 한국과 일본의 민주주의 수준에는 별다른 차가 없는 셈이다. 


한국이 앞서기도, 일본이 앞서기도 하는데, 재미난 건 최근 두 나라 모두 '불완전한 민주주의'로 전락했다는 사실이다. 점수가 8미만이면 불완전한 민주주의에 해당한다. 일본은 낮은 정치참여(6.67, 한국은 7.72)가 한국은 정부문제 등이 하락을 이끌었다. 


일본 입장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폄하하는 논평을 많이 보는데, 지표만 보자면 일본의 수준도 그닥 나을 것 없다는 점이다. 


다음은 개인적인 결론. 


코이케는 여태껏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어느 정도 권력이 쥐어지면 헛발질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선거가 코이케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낳더라도, 당의 분열과 정책 혼선 등으로 유권자에게 실망을 안길 여지가 적잖아 보인다. 


코이케는 여태껏 극우임을 표방하고 그런 유의 인물들과 어울려왔지만, 그럼에도 아베 등과 같이 대놓고 하는 극우행보는 자제해왔다. 이미지 관리의 달인이라 비치는 이유다. 교묘하게 논란이 되지 않을 일을 하면서도 그렇다고 대담한 정책이나 비전을 보여준 적도 없다.


'희망의 당'이라는 이름에서 보이듯, 사실은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게 코이케 신당이다(한국에도 비슷한 이름의 당이 있는데 정책 내용은 비슷하지 않은가? 재미난 일이다). 그저 '내 이름 필요한 사람들을 모으겠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전형적 포퓰리즘이다.


결국 코이케가 어떤 식으로든 유권자에게 환멸을 안기게 되면 이는 일본 민주주의에 분명 하나의 악재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일본 리베럴 세력이 난국을 타개할 능력이나 비전을 전혀 보여주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코이케 유리코라는 포퓰리스트에 휘둘려 마침내는 그 밑으로 들어가는 참담한 상황을 낳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