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에서 '더 심한 극우'가 부상했다고 폄하할 일만은 아냐
도쿄도(東京都) 의회선거에서 코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지사가 이끄는 연합세력(도민퍼스트회, 공명당, 무소속都民ファストの会、公明党)이 엄청나게 큰 표차로 승리했다. 자민당은 이번선거에서 대패해 지난번 의석의 절반도 못 건졌다. 사상최악의 결과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실제 이번 선거가 갖는 의미는 뭘까.
일본 내와 한국에 주는 의미를 종합적으로 보고자 한다. 특히, 아베라는 극우인사를 코이케라는 더한(!) 극우인사가 인기를 얻는 하나의 현상에 불과한 것일까에 대해 논해볼까 한다. 인터넷 댓글을 봐도 그런 반응이 다수라,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음'을 지적하는 게 목적이다.
우선 일본의 지방자치 선거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도쿄는, 한국에 비유하면 서울특별시와 경기도를 합쳐놓은 형태다. 서울특별시내 구에 해당하는 게 23구(신주쿠, 시부야 등을 포함해 23区)고, 그외 지방에 듣도보도 못한(필자에게도 아직까지 생소한 곳이 적지 않다) 도내 지방도시들이 있다. 추가로 태평양 지역에 다양한 섬들이 존재한다.
이를 다 묶어서 수도라는 의미의 도(都)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사카나 교토와 같이 역사적으로 중요하고 자존심이 센 곳은 부(府)라는 명칭이, 그외에 지역은 현(県)이다. 한국의 광역 지자체(특별시, 광역시, 도)에 해당한다.
지자체 선거시스템은 대체로 한국과 같다. 지역 수장에 해당하는 지사를 뽑고, 지사와 행정부를 견제, 지원하는 의회를 따로 뽑는다.
다만 도쿄도의 경우 한국과 차이가 하나 있는데, 의회선거가 완전한 소선거구제(지역별로 한명씩 뽑는 제도)가 아니라 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한 곳에서 2~8명 선출하기 때문에 소수정당도 살아남기 쉽다)가 섞여있다. 도시자와 의원 임기는 각각 4년으로 몇번이고 연임이 가능하다(한국의 경우 지자제장은 3선까지).
코이케 유리코는 지난해 도지사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44.9%로, 자민당 추천(사실상 공천)을 받은 마스다(27.4%), 야당 지지를 받은 토리고에(20.56%)를 넉넉히 제쳤다. 당시 선거 출구조사(아사히신문)로 어떤 사람들이 코이케를 지지했는지 살펴보자.
자민당 지지층에서는 49%가, 민진당(제1야당) 지지층에선 28%가 지지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51% 지지율을 보인 '무당파층'이다. 공산당과 공명당지지층에서도 그럭저럭 높은 지지도가 나온 걸 보면, 폭넓은 지지를 얻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무당파층은 최근 일본 정치판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자민당은 안 땡기고 그렇다고 야당을 지지하기도 애매한 사람들이 대부분 무당층으로 잡히고 있다.
이들은 정치이슈보다는 경제, 삶의 질 이슈에 관심이 많고, 자민당이 폭주하거나 지나친 우경화에 기울면 쉽게 돌아서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민주당 집권기에는 대거 민주당을 찍은 사람들로, 공산당까지는 안가지만 민주당과 자민당 사이에서 좌고우면 하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대략 맞겠다. 시골보다는 주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단순히 민주주의에 관심없고 우매한 대중이라고 폄하만 해선 안된다고 본다. 물론 한국보다 참여의식이 떨어지는 것자체는 사실이나, 제대로 대표할 정당이 만들어지지 않은 데 대해 무조건 국민탓만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냉전기 자민당이 그럭저럭 당내 우경화를 억누르고 경제발전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도지사 지지정당별 결과는 다음과 같다.
그렇다면 이같은 무당파층은 대략 얼마나 될까. 매달 NHK가 조사하는 내용을 한 번 살펴보자. 아래 표의 '支持なし(지지없음)'이라고 쓰여있는 이들이 무당파층이다. 대략 40% 안팎으로 심지어 제1당 자민당 지지율보다 높다.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비율이 아베 정권을 지지(주로 경제적인 이유, 취업도 잘되고 기업 이익도 많이 올라갔다)하다 최근 잇따른 정치 이슈로 "해도 너무하다"고 느껴 이탈 조짐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참고로 한국은 무당파층이 10%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아래 기사에 적혀있다)
한국은 A 대통령 지지자가 대체로 A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일본에선 총리는 지지하되 당은 지지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큰 판의 정치인들은 명줄을 이어가려면 무당파층을 사로잡아야 하고, 그에 가장 성공한 인물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였다.
고이즈미는 일본 국내 여론을 자극할 '내셔널리즘 행보(야스쿠니 참배 등)'와 '기존 자민당 적폐 타파'(파벌 철폐, 자민당 내 고질적인 지방 돈뿌리기 억제)를 적절히 섞어, 무당파층에 어필, 장기 집권에 성공했다. 이런 고이즈미의 행보를 두고 극장형 정치(小泉劇場)라는 평이 나왔다.
일본 내 고이즈미 평가는 '극우행보를 지지율 결집에는 썼지만 그렇다고 실제 극우는 아니고 코스프레 하는 사람'이라는 게 대세로, (한국인들에게는 이해가 안 갈 수 있지만) 실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신념형 극우' 아베 신조와는 레벨이 달랐다.
고이즈미 이후 이 성공 공식은 여러 버전으로 나타나는데, 고이즈미의 수제자(?)로 꼽히는 게 코이케 유리코다. 고이즈미는 수상에 취임한 이후 코이케를 2003년 환경대신(장관)에 앉힌다. 2년 뒤엔, 자신에게 반대하던 자민당 적폐(?)들을 공천탈락 시킨 뒤, 코이케를 '자객'의 한 사람으로 총선에 내보낸다.
(이 당시 자객으로 골라진 사람들은 여성, 젊은 사람, 사업가 등 스토리가 있는 사람들로, 그야말로 자민당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무당파층에 초점이 맞춰진 인사들이었다)
코이케는 이 당시 '쿨비즈'를 대대적으로 제안해 언론의 관심을 받는다.
별 건 아니고, 옷을 가볍게 입어서 전기를 절약하자는 게 주된 내용이었는데, 쿨비즈라는 말 자체가 유행어 상을 받을 정도(2005년)로 주목을 끌었다. 코이케가 여성들을 중심으로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는 계기가 된다. 1기 아베정권(2006~2007년)에는 여성 방위대신(국방부장관)에 전격 발탁돼, 아베의 전폭적인 지원도 받게 된다. 아베와는 기본적으로 속한 파벌도 같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코이케는 '기회주의형 극우'에 가깝지 않냐 하는 생각이다.
핵무장이나 위안부 존재 부정 등 극우적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일본 극우들이 한결같이 반대하는 '여성황족 창설'(한국으로치면 동성동본결혼과도 비슷한 위치로, 현재 황족은 남자밖에 될 수 없다)에 대해선 찬성입장을 표한 적이 있다(황실 문제에 대한 일본 우익 단체의 집요함은 무서울 정도라, 황족을 조롱한 잡지사가 습격을 당한 일까지 있었다).
또, 자이니치(在日) 참정권 문제에 대해서도 당초에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세금을 내는 자이니치들에게 참정권을 주는 것도 고려해볼만한 선택"이라는 등등의 발언이 2000년 있었고, 현재 외국인 참정권에는 반대 입장이지만, 이것도 신념에서 나온 건지는 솔직히 의문이 든다. 아래 위키피디아 내용을 참고로 했다.
이런 코이케가 도쿄도지사에 출마한 과정이 재밌다. 당초 자민당 소속이었던 코이케는 당이 자신을 밀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뜻대로 안됐다.
2012년 총재선거에서 여론조사가 높았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보수지만 아베보다는 극우적 성격이 약함)를 지원한 데 대해 아베에게 응어리가 남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다수였다(이 역시 코이케의 기회주의적 성격을 보여주는 측면이 아닐까 싶다).
결국 코이케는 자민당 소속이 아니라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된다. 한국은 이런 경우 탈당하는데, 일본은 당소속을 그대로 유지한 채 무소속으로 나가는 것도 가능하다(실제 탈당계를 낸 것은 도의회 선거를 앞둔 지극히 최근의 일, 역시 기회주의적 면모).
코이케는 고이즈미에게 배운 수법을 적극 활용해, 미디어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선거에서는 초록색으로 자신의 상징 빛깔(클린, 환경)을 정하고, 극우적 발언이나 불필요한 논란을 자아낼 말을 삼간 채, 복지나 여성 채용, 올림픽 문제(경기장 건설 등이 난항) 등을 적극적으로 해결해가겠다고 주장했다.
특히 도쿄도의회가 자민당에게 장악돼 제대로 되는 게 없다는 비판을 같은 당 소속임에도 쏟아냈다(이 역시 고이즈미의 전형적 수법).
아래 동영상에 나오는, 당선 인사를 하는 코이케와 도의회 자민당 리더의 반응도 화제가 됐다. 선 채로 인사한 뒤 바로 헤어졌는데, 5분 예정이던 인사시간이 30초로 줄고, 60명 정도 있던 사람들이 2명만 남고 사라졌다.
솔직히 지난 1년간 신 지사로서 코이케 유리코가 제대로 한 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도정(都政)지지율은 50~70%로 상당히 높게 유지됐고, 도의회 자민당파와 코이케의 대립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필자는 지난 1년간 일본 신문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봤지만 코이케가 극우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오히려 한국에 '망언제조기'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전 도쿄도 지사를 새 수산시장(츠키지 시장 대체지) 건설 문제와 관련해, 적폐로 몰아 "책임을 묻겠다"며 청문회에 세우기도 했다. 코이케가 자민당 대체세력으로 인지돼 간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겠다.
코이케는 도의회선거 직전, 자신을 지지하는 도민퍼스트회를 창당하고, 필기시험+면접으로 뽑은(황당하지만 사실이다) 젊은 사람들과 여성(이 역시 고이즈미 수법)에게 대거 공천을 줬다. 자신이 톡톡히 덕을 본 자객선거를 치른 것이다. 여기에 지역 기반이 강한 공명당이 합류하기로 하면서 천군만마를 얻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고이즈미도 끊임없이 코이케를 추켜세웠다.
아베가 측근 사학재단에 특혜를 준 것도 점점 기정사실화되면서 마침 민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장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없던 마당에, 도쿄도의회 선거는 정권을 심판하는 대리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선거 결과가 직접적으로 의회에 영향을 끼칠 방법은 없지만, 심리적으로는 어느쪽도 밀리면 안되는 입장이 된 것이다.
특히, 무당파층이 아베를 계속 밀어줄지, 아니면 버릴지가 이번 선거의 결정적 변수였다.
결과는 자민당의 전례 없는 참패였다. 출구조사 결과, 무당파층 가운데 52%가 코이케 세력을, 35%가 공산당(17%)과 민진당(10%) 등 기타야당을 찍었다. 자민당을 찍은 건 겨우 13%였다. 좌향좌 현상이 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밝혔지만 무당파층에서 지지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의원내각제인 일본 특성상 정권이 오래 버티지 못한다. 자민당의 콘크리트 지지율이라고 하는 것도 20% 안팎에 지나지 않는다.
코이케는 이번 선거가 자신의 극우성을 지지하는 선거가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극우 행보를 해서 지금 얻을 수 있는 게 뭔지도 불명확한 마당에 무리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원래 성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위축효과라는 것은 있다고 본다.
그 근거로 도의원 후보로 세운 사람들의 성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아래 사진의 5번은 '아베정권 운영을 평가하는가', 6번은 '2020년 개헌에 찬성하는가'로, 아베 정권에 대한 평가를 묻는 부분이다.
위에 인물은 '그다지 평가하지 않는다' '반대'를 표명하고 있고, 아래 인물은 '무답'으로 표시돼있다. 이 당 다른 후보들을 보면 대체로 무답이 많았는데(이 역시 기회주의적 자세라 하겠다), 그럼에도 명확히 아베 정권을 따라가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즉, 아베가 보여온 강경극우 행보는 일단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이 크다. 아베 정권이 어떤 식으로 반격을 가해올지는 알 수 없지만,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하는 한국입장에서는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본다. 당장 코이케가 수상으로 올라서는 것도 아니고, 아베로서도 발판을 만들기 위해선 결국 다소 좌향좌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자극해 지지를 끌어모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패배가 워낙 커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일본 정치의 장기적 변화는 시계제로에 들어간 셈이다.
정치적 대표성이 부족한 일본 정당 구조에 균열이 생길 가능성은 희박해보이지만, 정치란 앞일은 모르는 법이다. 일본의 참여의식이 낮다고 비난만 할 게 아니라, 관심있게, 그리고 자세하게 지켜볼 필요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