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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Nov 24. 2017

역이용된 일본 신문의 '수상 동정란'

권력 감시의 상징처럼 여겨진 수상 동정란의 후퇴

일본신문 정치면에는 눈에 띄는 코너(欄)가 하나 있다. 수상의 일거수일투족을 전하는 '수상 동정란'이다. 


주요 신문에는 바로 전날 수상이 누구와 만나고 저녁을 먹었으며, 어디에서 쉬었는지 자세히 적혀있다. 한국에서 박근혜 정부때 '사라진 7시간' 얘기가 횡행했을 때 일본 민주주의의 훌륭한 사례(?)로 종종 거론되곤 했다. 한국도 배워야 한다는 말도 눈에 띄었다.


다만, 이건 일본 내각부(관저라고 칭한다)에서 알아서 뿌리는 게 아니다. 신문사 기자들이 직접 하나하나 취재해서 확인한 내용을 싣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뭔가 낯선 사람이 찾아오면 하나하나 왜 왔는지, 누굴 만나러 왔는지 묻는다고 한다.


수상이 집무를 보는 내각 관저에는 기자실이 있고, 실제 수상 집무실과도 멀지 않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 다소 개혁(?)이 있어 기자들의 취재가 다소 어려워졌다고는 하나(信田智人『官邸外交』참고), 그럼에도 한국 청와대보다는 나은 듯 싶다. 매일 정부 대변인격인 관방장관(官房長官)이 브리핑을 한다.


일본에서 특정분야 담당기자들은 '반키샤(番記者, 우리로 치면 출입기자)'라고 불린다. 내각 관저에도 언론사마다 반키샤가 다수 있다. 수상 동정과 관련해서는 막내급 기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버티고 서있는(한국 업계 은어로는 '뻗치기'라고 한다) 게 일상이라고.


이런 담당 기자들에게 '프렌들리' 했던 대표적인 인물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다. 


고이즈미는 매일 하루 두번씩 기자들에게 직접 브리핑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내 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언론을 활용해 고비를 돌파했다는 게 정설로 실제 지지율 관리에 큰 힘을 발휘했다. 아래는 고이즈미 기자와 반키샤들의 회견 영상이다.


5분 43초부터 재미난 광경이 나온다. 


대표로 서있는 여기자가 


"총리에게 반키샤 모두가 작은 생일 선물을 준비해서... 약간 이른 선물이긴 한데요. 메세지가 들어간 카드와 꽃다발입니다. 생일 축하드립니다"라는 말을 건넨다.


그러자 기자 일동이 박수를 보낸다. 


이때 고이즈미가  "여성의 색기(色気)도 좋지만, 이 꽃 색조(色気)도 좋네"라는 위험한 말을 남기고 웃으며 떠난다(일본어 色気에는 색조라는 뜻과 야릇한 색기라는 뜻이 동시에 있음).


한국에서도 박근혜가 대통령 당선됐을 때, 포옹을 안긴 기자가 있던 걸 기억한다. 그걸 생각하면 이정도는 애교라고 해도 될는지.



아래는 수상동정란의 실례다. 11월 22일자 아사히신문(朝日新聞) 정치면에 실린 것이다.



오전 8시 1분, 관저에 출근해, 2분에 보도각사와 인터뷰를 했다. 6분에는 노가미 관방부장관과 만났고, 25분에는 각료회의를 열었다. 56분에는 국회로 가, 1분 뒤 참의원 의장 응접실에 있다가 본회의장에 들어갔다. 등등 시시콜콜한 내용이 적혀있다. 


매일 이런 식으로 수상이 감시당하면 정치가 정말 투명해질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여태까지는 그래왔던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문제는 이번 아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양상이 다소 달라진 데서 벌어지고 있다.


논란이 된 수상 동정 사례를 한 번 보자.


왼쪽이 아사히, 오른쪽이 요미우리. 출처: http://www.asyura2.com/17/senkyo230/msg/638.html

왼쪽은 정부에 비판적인 아사히신문, 오른쪽은 유착설까지 나오는 요미우리신문의 수상동정이다. 지난해 8월 11일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오후 일정에 있다. 「漁」라고 써있는 뒤에, 아사히는 '加計孝太郎学校法人加計学園理事長、秘書官らと食事'(카케 코타로 학교법인 카케학원 이사장, 비서관 등과 식사)라고 돼있는 데 반해, 요미우리에는 '秘書官らと食事'(비서관 등과 식사)라고만 돼있다. 카케학원에 대해서는 아래 기사를 참고하시면 된다. 


한마디로 아베와 카케 코타로는 친구로, 학교법인의 수의학부 신설에 특혜를 준 게 아니냐는 논란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왜인지 요미우리신문에선 같이 식사한 사람의 이름이 빠진 것이다.

이 외에도 요미우리신문과 회식을 한 일이, 정작 요미우리신문 수상 동정란에는 실리지 않은 일도 있었다. 어차피 다른 신문에는 실리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의미는 없다 하겠으나, 요미우리만 보는 독자(인터넷마저 안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는 이런 일을 모르고 지나가게 된다.


한 블로거는 언론사별로 어디가 수상과 가장 밥을 많이 먹었는지를 조사했다.

기간은 올해 5월 이전 1년간으로, 가장 많은 곳은 8번 밥을 같이 먹은 요미우리신문이었다. 


2위는 3회를 기록한, 후지테레비(산케이계열), 닛폰테레비(요미우리계열), 그리고 마이니치신문이었다. 가장 왼쪽으로 알려진 도쿄신문과는 아예 한 번도 먹지 않았고, 아베 비판 선봉장인 아사히와는 2번 먹은 것으로 기록됐다. 


다만 이 가운데는 단독으로 먹은 게 아니라 언론사 합동으로 먹은 것도 있는 듯해, 질적으로는 정치부장이나 편집위원과 따로 보는 일이 많았던 요미우리와 차이가 있다. 


점차 지지율이 떨어지며 몰려있던 지난 5월 29일에는 도쿄 아카사카의 이자카야에서 요미우리신문 다나카 편집위원, 마에기 정치부장, 이이즈카 국제부장과 회식을 하기도 했다.


출처: https://twitter.com/i/web/status/869363315796918272

그나마 수상동정란이 있어서 이런 사실이 확인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신문에 일정이 실리든 말든 당당히 "배째라"는 식으로 나가면, 사실 보는 입장에서 속수무책인 점도 있겠다 싶다. 그게 현재 일본 정치의 현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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