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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Dec 08. 2017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은 누굴 위한 걸까

아베 정권의 경제+안보구상에 대해서

올들어 아베 신조와 도널드 트럼프가 부쩍 입을 맞추는 구호가 하나 있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自由で開かれたインド太平洋, A Free And Open 'Indo-Pacific)이란 말이다. 이 주장은 아베가 강조하던 것을 트럼프가 받아안으면서 새로운 슬로건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인도 태평양 지역을 묶어, 지역 공동체로서 번영해가자는 구상을 담았다. 주로 포함되는 국가는 일본과 미국, 인도, 호주 등이다. 지난해 아베는 아프리카를 방문한 자리에서 동일한 구상 안에 아프리카를 포함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일본은 아프리카 국가 개발을 명목으로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를 1993년부터 주도해오고 있다. 일본의 경제적 문제 등으로 지지부진하던 회의는 지난해 겨우 6회를 맞았다. 2008년 이후 안 열리던 것이, 아베 정부가 다시 들어선 뒤에 2차례나 열렸다.


지난해 아베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한다.


세계에 안정, 번영을 가져오는 것은 자유롭고 열린 2개의 대양, 2개 대륙의 결합이 낳는 위대한 약동 외에 없습니다. 일본은 태평양과 인도양,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교류를 힘, 위압과 관계 없이, 자유와 법의 지배, 시장 경제를 중시하는 장으로 키워, 풍요롭게 할 책임을 집니다. 두 대륙을 잇는 바다를 평화롭고 규칙이 지배하는 바다로 만들기 위해, 아프리카의 모든 분들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일본의 바람입니다. 대양을 건너는 바람은 우리들의 눈을 미래에 향하게 합니다

世界に安定,繁栄を与えるのは,自由で開かれた2つの大洋,2つの大陸の結合が生む,偉大な躍動にほかなりません。日本は,太平洋とインド洋,アジアとアフリカの交わりを,力や威圧と無縁で,自由と,法の支配,市場経済を重んじる場として育て,豊かにする責任をにないます。両大陸をつなぐ海を,平和な,ルールの支配する海とするため,アフリカの皆さまと一緒に働きたい。それが日本の願いです。大洋を渡る風は,わたしたちの目を未来に向けます。


이 연설이 노리는 바는 분명하다. 아프리카에서 자유와 법의 지배를 중하게 여기지 않는, 힘, 위압으로 대표되는 세력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중국이다. 그 뒤에 '평화롭고 룰이 지배하는 바다'라는 말은 중국이, 남중국해 관련한 국제해양재판소 판결을 무시한 걸 간접적으로 지적한 내용이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벌이는 각종 활동이 법을 무시했다는 판결이 지난해 나왔다.


최근 사드 문제에서 보듯 중국이 민주사회 논리로 움직이지 않고, 아프리카에서도 약탈적 행태(일부러 현지인들을 고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최근 중국인에게 직접 들었다)를 벌이고 있다는 점에선 비판 받을 점이 적지 않다. 다만, 그런 주장을 일본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아베가 한다는 점은 되새길만한 부분이다.


연설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래는 국제해양재판소 판결 요지.


구상과 관련해 일본은 인도와 관계에 최근 부쩍 힘을 쏟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게 원전 등 전력 인프라 협력이다. 그런데 원전 수출은 인도가 핵보유국이라는 점에서 이런저런 뒷말을 낳았는데, 그냥저냥 넘어가는 분위기다. 인도가 (과거 전쟁을 할 정도로) 중국과 관계가 안 좋은 점도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트럼프도 동시에 인도를 ASEAN에 넣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미 이같은 움직임은 미국 내에서도 2010년대 들어 가속화 된듯하다.


추가로 일본 우익 인사들이 인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도쿄전범재판 당시의 판사였던 인도출신 라바비노드 팔(Radhabinod Pal)이라는 인물 때문이다. 도쿄재판은 전쟁을 일으킨 고위 관료와 군인들을 처벌하기 위해 세워졌지만, 팔 판사는 처음부터 그들의 '무죄'를 강하게 주장했다. 


A급 전범으로 스가모 형무소에 갇혀 있던 아베의 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훗날 팔 판사 훈장수여를 주도하기도 한다. 그 덕에 우익 교과서에 중요 인물로 실리고, 현재에도 야스쿠니 신사에 판사를 기리는 비가 놓여져 있다. 아래 기사는 팔 판사의 실상에 대해 잘 정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같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주장이 나온 시기가 얼마 안됐다고 생각했다. 어떤 페북 인사는 "미국이 오래전부터 내세운 것"이라는 설명도 하고 있었다. 


일본 외무성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는 '새로운(新たな)'이라는 명확한 수식어를 넣고 있다. 아마도 구상은 있었을지언정 정식으로 제창된 건 오래되지 않은 듯싶다. 노란색 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은 제외돼있고, 중국은 미묘하게 포함돼있다. 대만은 포함돼있다.


일단은 인프라 등 경제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제기한 '일대일로(一帯一路)' 구상에 대응하기 위한 성격이 지적되는 것도 그래서다.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전략 출처: 일본 외무성

그러다 한 논문에서 흥미로운 구절을 발견했다. 리처드 사뮤엘스(Richard Samuels)라는 미국 MIT의 일본 전문가가 쓴 「Kidnapping Politics in East Asia」라는 논문의 한 부분이다.


This mutual distrust was reflected in a new regional security architecture first proposed by Prime Minister Abe in 2007. His much ballyhooed "arc of freedom and prosperity," promoted to unite the capitalist democracies in the region (presumably to balance a rising China), included Australia, India, and the United States, but pointedly left out South Korea.


이 같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상호 불신은 2007년 아베가 제시한 새로운 지역 안보 구상에 반영됐다. 아베가 떠들썩하게 제시한 '자유와 번영의 호(自由と繁栄の弧, arc of freedom and prosperity)(호는 활 모양의 도형)', 즉 지역내 시장민주주의 국가 통합을 촉진하는 구상으로 여기에는, 호주 , 인도, 미국이 포함돼있지만, 명시적으로 한국은 빠져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균형). 


아래 주소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다. 이미 진작에 아베는 인도와 태평양, 동남아를 묶는 구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명시적으로 한국과 중국이 제외된 것도 분명했다.


https://www.cambridge.org/core/services/aop-cambridge-core/content/view/0F29D06EAC471A0A2186B7CF2A9F4039/S1598240800003660a.pdf/kidnapping-politics-in-east-asia.pdf


아래는 2006년 아소 타로 외무상(후에 총리, 현 재무 부총리)이 연설 한 내용과 관련해 첨부된 그림이다. 


명확하게 중국과 한국은 빠져있다. 당시 수상은 물론 아베 신조였다. 직전 정부였던 고이즈미는 명확한 가치 외교를 표방하지 않았다. 애초 미국 추종과 2002년 이후엔 납치 외교에 묶여있어 큰 이념을 내걸지 않았다(혹은 못했다). 


자유와 번영의 호 형성 출처: 일본 외무성

정리하면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은 아베의 오랜 구상이며, 그 내용은 경제 지원을 중심으로 나아가 군사적 역할 확대까지 꾀하는 데 있다. 물론 그 핵심은 반일국(反日国)인 중국과 한국을 견제하겠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보통국가화(군대를 가진 국가)'의 한 수단(한미일 동맹의 가능성)으로 삼겠다는 구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베의 생각대로 일본이 중국과 맞설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다. 향후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중국에 버금가는 국가가 되기에 현재 일본은 벅차보인다. 


동남아는 중국 의존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물론, 그런 반사작용으로 일본이나 한국-신남방정책도 거기에 주목했을 듯싶다-에 관심 갖는 측면도 있겠지만), 군사적으로도 국내 재정을 무시하고 무작정 군비확장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일본 국민들이 복지 재정을 줄이고 군사 지출을 늘린다고 할 때 순순히 받아들일까. 계속 북한 위협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이건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도 일본은 당분간 미일동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모순은 미일동맹이 강화될수록 일본의 군사적 자주성은 뒤로 미루게 된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딜레마다. 아베와 같은 우익들은 미일동맹을 유지하면서 헌법을 개정하고, 군사적 헤게모니를 가져보려 하겠지만 그 때까지 중국이 기다려줄 가능성도 없다. 한마디로 아베의 구상은 실현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인도 태평양 지역을 경제적으로 묶기 위해 시도 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는 트럼프가 거부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미국을 제외한 국가만이라도 묶기 위해 일본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트럼프가 당선인 신분일 때, 아베가 달려간 것도 TPP 이탈을 막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지만 트럼프는 무시했다.


아베의 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미일동맹 의존도를 줄이는' 미일안보협정 개정을 추진했다가 시위대 수십만명을 거리로 불러냈다. 그 자신도 시위대 때문에 물러났다. 일본 우익은 전통적으로 미국 의존도를 줄일 필요성을 강조해왔다(극단적인 사례가 이시하라 신타로). 그래야 일본이 자주 국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미일동맹에서 빠져나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일본은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기시의 품속에서 시위대의 함성을 들었다는 어린 아베의 꿈은, 오히려 국내외 갈등을 더 자극하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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