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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Apr 07. 2018

프랑스 특파원의 '일본 정치 한탄'①

일련의 사태로 드러난 일본 정치, 민주주의의 문제점들

이른바 사학 스캔들로 아베 수상과 자민당이 점차 궁지에 몰리고 있다.


최근 드러난 사학 스캔들은 큰 틀에서 두 개다. 하나는 오사카 내 학교 부지를 무리하게 싸게 넘겼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에히메(愛媛)현서 새로 문을 연 수의학부에 특혜 허가를 내줬다는 것이다. 두 사립 재단은 각각 다른 곳이지만 공통점은 이사장이 아베 부부, 극우인사들과 개인적인 인연을 맺고 있다는 데 있다.


첫번째 사안은 꺼질만 하면 다양한 문제가 의혹으로 떠오르고 있고, 두번째 사안은 현 시점에는 완전히 가라앉은 상황이다. 결국 이달초 수의학부는 정상적으로 학생을 받고 문제 없이 개교했다. 의혹이 해결됐다기보다는 어영부영 넘어가서 현 시점까지 온 느낌이 강하다.


여기에 근래에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일본 정부 내 보고 체계나 문서 관리 문제가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정권에 타격이 가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누구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검찰이나 수사 당국은 미적대는 모습이다.


지난달 아베 정부 지지율이 큰 폭으로 떨어진 계기는 첫번째 오사카 사립학교 문제다. 지난해 2월 일본 내 예산을 책임지는 재무성(과거에는 대장성大蔵省라고 해서 굉장히 강한 권한을 휘둘러왔다)이 오사카 사립학교 부지 매각 사안 관련해 문서를 만들었는데 문서 내용이 국회 답변 전후로 크게 달라져 있었다.


단순한 내용 수정 수준이 아니라, 정치인 이름과 관련된 극우단체(닛폰회의, 아베도 관련이 있으며 사립재단 이사장은 이 단체 오사카 지역 간부였다) 언급이 통째로 사라졌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에서는 친 아베 성향인 곳은 '바꿔쓰기(書き換え)', 반 아베 성향인 곳은 '조작(改ざん)'이란 식으로 표현이 나뉘기도 했다. 현재는 후자로 정리가 되는 분위기다.


첫 보도는 아사히신문이 했다.


큰 파문이 벌어졌고, 조작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재무성 오사카 지역 직원은 이 일과 관련해 목숨을 끊었다. 3월 27일 재무성에서 문서조작의 선봉에 섰다는 의혹이 있는 사가와 노부히사 이재국장이 증인으로 국회 답변대에 섰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많이 보아온 대로 "검찰 수사 중이라 답변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다 내려갔다.


결국 일본 정치에 큰 일이 벌어질 거 같았지만, 별다른 파문이 번지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 블로그에서도 몇 번 지적한 바 있는 대로 민주주의 퇴행이 그만큼 심각한 수준이라 하겠다. 국회 앞에 모이는 일본인들은 적고 그나마도 원래 시위에 자주 나오는 고령층이 대다수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 대한 의문과 황당함은 필자만 느낀 게 아닌 듯 싶다. 프랑스의 보수지 '르 피가로'와 중도 진보지 '르 몽드' 일본 특파원이 정치 상황에 대한 소감을 각각 다른 잡지에 밝혔다. 상당히 공감되는 내용이 많아 여기에 옮겨본다.


우선, 일본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르 피가로 특파원(레지스 아르노)의 지적이다.


보수지라고는 해도 프랑스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용은 상당히 급진적(?)인 측면이 있다. 이 내용이 실린 '토요케이자이(東洋経済)'는 일본의 주요 경제 주간지 가운데 하나다.

'외국인이 본 일본 민주주의는 절멸 직전'


전반에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모리토모학원 문제가 얼마나 큰 관심을 못 받는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일본 정치인이 거의 50세 이상 남성에 영어를 못한다. 외국 주요 인물과도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국제적 레이더에 포착되는 일이 없다. 정치인이 다투는 일 대부분이 개인적인 것이고 지적(知的)인 게 아니다. 일본 국회는 마치 양로원 같다'고 혹평하고 있다. (어쩌면 한국 정치상황과도 맞닿은 부분)


다음 지적은 일본 정치의 고유의 문제점과 관련된 내용이다.


'일본 정치인은 이데올로기로 겨루는 일이 없다. 정권교체에 따라 갑작스레 정책이 바뀌는 일도 없다. 가령 아베 수상이 바뀌어, 이시바 시게루(자민당 내 유력 정치인)가 수상이 돼도 뭐가 바뀔까. 분명히 말해 없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몇 안되는 보도가 일본의 안 좋은 이미지를 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외적으로 '법의 지배'가 관철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자랑해왔지만, 모리토모 스캔들은 일본의 관료가 문서를 조작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처벌으로부터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 솔직히 공감되는 내용이다. 일본 정치에서 사상과 이데올로기는 실종된 지 오래다. 냉전 후 사회당이 몰락한 뒤 이는 하나의 구조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일본 민주당과 자민당의 차이는, '반자민당인지, 친자민당'인지 외에는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경제정책의 차이도, 이념의 차이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니 야당을 찍을 유인이 없는 것이다. 물론, 이는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민주주의와 국민의 정치성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에는 한국 정치 얘기도 나오므로 원문을 그대로 옮겨보겠다.


- (공무원의) 이같은 행위가 처벌되지 않으면 이제 정부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프랑스에서 관료가 모리토모 문제와 같은 수법으로 공문서를 조작했다고 하면 해고돼 형무소에 보내질 것이다. 처벌은 신속하고 가차없을 것"이라고, 프랑스의 고위 외교관은 말한다.


조작 관여 관료의 자살이라는 중대한 사태가 일어나면, 그 시점에 나라를 이끄는 정권의 붕괴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어느쪽도 일본에선 일어나지 않았다. 아소 타로 재무상과 아베 수상은 이대로 권력을 유지할 거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 정치를 보도하는 외국 언론인에게 있어서, 모리토모 스캔들은 결국 사소한 케이스에 지나지 않는다. 관여된 금액도 그다지 크지 않거니와, 관계된 인물 가운데 사적으로 이익을 취한 인물도 없는 듯하다.


그러나 스캔들 그 자체 보다 나쁜 건, 정부와 관료가 스캔들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은폐보다 더 나쁜 건 은폐에 대한 국민의 반응이다. 다른 나라에서 보면 모리토모 문제로 인해 일본 사회가 얼마만큼 정치에 무관심한지가 드러나게 된다.


"지금 정부가 이 사건을 넘어갈 수 있다면 일본의 민주주의는 거기서 끝"이라고 일본에 사는 베테랑 외국인 로비스트는 한탄한다. 정부는 실제로 넘어갈지도 모른다. 모리토모 스캔들과 관련해 수상 관저와 국회주변에 소규모 데모가 일어났을 뿐이다. 집회에 일부러 참여해 분노를 표현하려는 사람 숫자는 많아도 겨우 수천명이다.


수많은 뉴스 동영상에 찍힌 사람들을 보면 데모 참가자보다 경찰 숫자가 많다. 직장에서의 대화도 일본인은 스캔들 전체에 대한 혐오감을 품기보다 오히려 무관심한 듯 보인다.


일본 상황은 2016년과 2017년 데모에 의해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데 성공한 한국과 심각하게 대조적이다. 북동아시아 외국 특파원은 모두 한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활기 있는지, 그리고 일본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무기력해졌는지 깨달았다.


예를 들면 작년 한국 데모를 담당한 '레제코(Les Échos, 프랑스의 주요경제지)' 일본 특파원 얀 르소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놀라운 것은 모리토모 문제에 대한 일본 여론의 결집력이 대단히 낮다는 점이다. 물론 항의 행동의 형태는 나라에 따라 제각각이지만 난 작년 겨울 한국에서 매주 100만명이 영하 15도의 추위도 꺼리지 않고 모여, 박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는 것을 눈으로 직접 봤다. 박 대통령이 아베 수상보다 무거운 형사처분 대상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 차이는 경이적이다"


20세기 초반 민주주의의 길을 연 인구 1억 2000만명의 나라 일본은, 이젠 휴면상태다. 한편, 민주주의를 발견한 지 겨우 30년된 한국은 집회 활동 권리를, 모든 힘을 다해 지키고 있다. 이 상황을 일본인은 걱정하는 게 좋을 것이다.


미국의 도날드 트럼트 대통령,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세계에는 차례차례 '강한' 리더가 나타나고 있다. 강한 리더가 의미하는 건 약한 민중이다. 멕시코에서 활동한 농민출신 혁명가 에미리아노 사파타의 반생을 그린 '혁명아 사파타'에선, 말론 브랜도가 연기한 사파타가 이렇게 말한다. "강한 민중만이 불변의 강력함이다" 일본인도 이 정신을 떠올려, 정치적 무관심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물론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했다고 안주해선 안될 테지만, 일본 전반에 퍼져있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과격하다. 감정에 휩쓸린다"와 같은 혐오감이 '글로벌한 관점'은 아니라는 걸 이 기사는 지적하고 있다. 일본 지식층들 사이에서 이 기사는 빠르게 퍼져갔다. 필자가 느끼는 바도 거의 이 기사의 맥락과 같다.


글이 길어진 관계로 르몽드지 특파원 인터뷰는 다음글에 이어서 적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아베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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