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 Apr 21. 2018

프랑스 특파원의 '일본 정치 한탄'②

르 몽드지 기자가 본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 전개와 일본 민주주의

지난 글에 이어 '르몽드' 도쿄 특파원 필립 메스멜이 본 일본 정치의 문제점을 옮겨본다. 이 인터뷰는 일본 대형 출판사 슈에이사(集英社)의 인터넷 기사로 지난 5일 실린 것이다. 



Q 얼마전 국회에선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寿) 전 재무성 이재국장이 증인으로 소환됐습니다. '공문서 조작'에 대해 놀랐었는지요?


A 솔직히 말하면 놀랍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데 대해 놀랐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라 사안이 크게 움직였지만 저는 이 문제에 관해 지금까지 봐온 모든 것이 '일본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모든 레벨에서 심각한 병에 걸려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Q '모든 레벨에서' 라면?


 A  정부도 관료도, 국회도 사법도 미디어도, 그리고 국민도. 정부와 관료에 관해 모리토모 문제는 아베 수상이 이끄는 정부와 재무성이라는 행정기관, 관료조직의 왜곡된 관계에서 나타난 문제입니다. 이 과정에서 재무성이 공문서를 조작했다는,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행위가 밝혀졌습니다. 근대 민주주의국가에서 공문서의 신뢰성은 '행정의 신뢰성'을 뿌리부터 떠받치는 말 그대로 '근간'입니다. 관청이 조직적으로 조작하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행정의 신뢰 그 자체를 훼손하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국회입니다. 재무성이 조작했다는 허위 문서로 국회가 속았음에도, 국회는 이 문제를 철저하게 따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당인 자민당, 공명당은 물론, 야당도 더 매섭고 끈질기게 정부나 재무성의 책임을 추궁해야 합니다.


세번째 사법입니다. 일련의 사태에 대해 '사법의 독립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작년 7월에 보조금 사기 용의로 체포된 카고이케(籠池) 부부(오사카 모리토모 학원 이사장으로 구속상태)는 국유지 매각 문제로 기소조차 안 된 채로 9개월이나 구속된 채, 아들과도 면회가 제한되는 이상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마치 정부에 불리한 증언을 할 것 같은 인물을 사법이 '인질'로 잡고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조작 사실이 밝혀지고 재무성이 인정했음에도, 사가와씨를 포함해 연루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이 아직도 자유의 몸인 채로 있는 것은 믿을 수 없습니다. 


(필자 주: 한국인인 필자도 굉장히 이상하게 여기는 부분이었다. 일본에서는 한국이 지나친 '사법 감정주의'로 문제만 있으면 정치인이고 관료고 잡아 넣는다고 깎아내리는데, 최소한 프랑스에서도 문제 관료를 방치하는 게 당연한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Q 검찰은 현재 임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듯 한데요...


A  민주주의, 관료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대사건이 일어났는데 부정행위를 한 사람이 여전히 '방치'돼 있는 건 이상하지 않나요? 이 상황에선 증거인멸 우려가 있거니와 다른 관계자와 입을 맞출 수도 있습니다. 재무성내에선 이 문제와 관련해 자살자까지 나왔습니다. 증인의 신병을 보호한다는 의미에서도 검찰이 강제 수사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더 얘기하자면, '제4의 권력'이라 할 미디어도 이 문제를 철저하게 추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조작을 최초에 알린 아사히나 마이니치, 도쿄신문 등은 상당히 열심히 보도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신문도 적지 않습니다. TV도 더 많은 기회에 이 문제를 다뤄, 토론 방송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국민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가장 큰 목소리로 분노와 의문을 표해야 하는데, 집회에 모이는 건 겨우 수천명. 이것이 이웃나라 한국이라면 전국에서 백만명 가까운 국민이 분노의 목소리를 높여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심한 문제가 일어나도 일본인에게는 권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눈에 보이는 행동으로 표출하는 걸 '좋다고 여기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 듯이 느껴집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한사람, 한사람의 국민이 '주권자'로서 자각을 갖고, 스스로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 많고, 관심이 있어도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발신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위기다"라고 말해도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사람이 많고, 고령화로 일본사회전체가 보수적으로 된 듯합니다.


정부도 관료도 국회도 사법도 미디어도 국민도, 일본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이 표면상으로는 제 각기 역할을 다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론 '민주주의라는 무대'에서 연기하고 있는 데 그치는 건 아닐까. 라고 비꼬고 싶을 정돕니다.


모리토모 문제에 한정된 것만은 아닙니다. 카케학원문제(수의학부 신설 특혜 문제), 마에카와(前川) 전 문부과학성 차관 강연에 정부가 개입한 문제(필자 주: 카케학원문제를 내부고발했으나 그 전에 낙하산 인사를 방치한 문제로 사임한 관료. 최근 나고야의 한 중학교에서 강연을 했으나, 문부과학성이 자민당 정치인 의뢰를 이유로, 강연 실시 이유나 목적, 마에카와에 대한 비방이 섞인 질문서를 보내 논란이 됐다), 그리고 남수단 파견(자위대를 위험지역인 남수단에 평화유지군PKO로 파견함)에 이어 이라크 파견에서 '없다고 한 게 나온' 자위대 일보 (일종의 일지日誌)문제에 있어서도 공통됐다고 생각합니다.


Q 일본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건 국민에게도 이유가 있다는... 그런데 사가와씨의 증인 소환을 본 인상은?


A 우선 느낀 것은, 사가와씨가 국회에 대한 경의敬意가 없다는 점입니다. 재무성 이재국이라는 과거 자신이 책임자로 근무한 조직이 공문서를 조작했다는 절대 있어선 안되는 행위를 조직적으로 행해, 조작된 문서로 '국민의 대표' 국회를 기만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가 책임자임을 분명히 인정했음에도, 사가와씨에게선 국회에 대한 경의를 전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이건 대단히 심각한, 용서받기 힘든 일이라고 봅니다.


증인심문에서 사가와씨는, 아베수상이나 아키에 여사, 재무대신의 '지시'를 명확히 부정했습니다. 그건 아마도 사실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표면상의 사실이라곤 해도 '진실'은 아닐 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공문서 조작과 같은 행위를 수상이나 재무대신이라는 요직에 있는 인물이 구체적,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걸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무언가 있었을까. 혹은 이른바 '손타쿠(忖度, 윗사람의 의중을 미리 헤아려서 행동하는 것)'로 재무성 관료가 정권의 의향을 알아차리고 공문서 조작에 손을 댔다는 양자간 관계성이 존재했던 걸까. 이같은 것이 '진실'에 관한 부분일 겁니다.


이 사건을 보고 제가 생각한 것은 17년전 2001년에 있던 NHK 다큐멘터리 'ETV2001' 내용에 자민당이 간섭한 것으로 여겨졌던 문제입니다. 종군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전시 성폭력'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왜인지 방영전에 자민당 정치가에게 확인받고, 당시 관방부장관이었던 아베(현 수상)씨가 NHK의 임원을 불러내 '사정을 들은' 뒤, 방송국 상층부의 지시로 방송 내용이 크게 재편집됐다는 사건입니다.


이 때도 아베씨는 재편집을 '지시'한 게 아니라 내용에 '의문'을 표한 것뿐이라며, 이른바 검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었습니다. 정부의 의향을 '손타쿠'해 NHK 상층부가 방송 내용 변경을 지시했다는 것이겠지요. 아마도 이번 재무성 공문서조작에서도 그것과 유사한 일이 일어난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령 구체적, 직접적인 지시가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 말씀드린 '진실'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에 있어서 중대한 데미지입니다.


일련의 사태가 보여주는 건 '일본 민주주의의 심각한 병' 그 자체입니다. 그것과 같은 것이 프랑스에서 일어난다면 틀림없이 정부는 날아가버릴 것이고, 당사자는 확실히 처벌될 겁니다. 그리고 국민은 권력을 향해 가장 큰 분노의 목소리를 높일 겁니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정말로 위기 상황에 있다는 걸, 많은 일본인은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

2002년 일본에 온 르몽드 일본특파원.


●フィリップ・メスメール

1972年生まれ、フランス・パリ出身。2002年に来日し、夕刊紙「ル・モンド」や雑誌「レクスプレス」の東京特派員として活動している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 특파원의 '일본 정치 한탄'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