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덜 짜증내며 살고 싶다
일본에 장기 체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올해 3월 왔다). 그전 10여차례에 걸쳐 일본에 여행과 출장을 왔지만, 역시 직접 살아보는 것과는 다름을 절감한다. 지금까지 결론은 불편한 것보다는 편한 게 많다는 것이다. '외국인'이라는 입장은 별도로 하면, 그럭저럭 지낼만 하다는 생각이다.
지난 추석과 10월말~11월초 한국을 두 차례 다녀왔다. 예전에도 느꼈지만, 더더욱 절절히 다가오는 건, 한국은 '일상적 스트레스'의 정도가 몹시 높다는 점이다. 일상적 스트레스는 업무나 집안일 등을 제외한, 평소 아주 사소한 데서 받는 스트레스, 다른 말로는 평소 유발되는 '짜증'이다. 특히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일이 많다는 게 특징이다.
대중 교통을 간단히 생각해보자. 한국에서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크게 세 가지다. 버스와 택시, 지하철이다.
서울시의 경우, 2004년 버스 중앙차로와 준공영제 이후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버스를 타는 건 어느 정도 난폭운전을 감안해야 하는 일이다. 여전히 불친절한 기사들도 꽤 있다(승객이 질문을 하면 무척이나 성의 없게 대답하는 기사를 이번에도 몇 차례 봤다). 경기도 버스는 난폭운전은 기본에, 가끔 정신이 이상한 건 아닌가 생각들게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기사들의 처우나 배차 강요 등의 문제가 있는 걸 모르는 바 아니나, 보는 입장에서 유쾌할 리 없는 일이다(어려운 처지를 화로 푸는 경향, 짜증을 내면 남이 이해해줄 것이란 경향이 한국사회엔 어느 샌가 상식이 되고 있다. 사회구조적 문제일텐데, 이것에 대해서도 나중에 구체적으로 한 번 써보겠다).
택시는 말할 것도 없다. 개인적으로 택시탈 일이 많은 직업이었음에도 어지간해서는 타지 않았다. 성격이 이상한 택시기사를 너무나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심지어 10분 가는 길인데 종교 얘기를 늘어놓으며 강요하는 양반도 있었다). 좋은 기사분이 1이라면 그렇지 않은 기사가 10은 됐다. '내 돈내고 택시타는데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무척 많이 했다.
지하철은 셋 중엔 그나마 괜찮으나, 모르는 사람과의 불쾌한 경험을 종종하게 된다. 줄이 뻔히 있는데 밀치고 타는 사람, 지하철에서 술먹고 소리지르는 사람 등등.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해도, 이런 일을 겪으면 기분을 망치는 건 마찬가지다.
대중 교통이 아니라 직접 운전을 하면 더 놀라운 경험을 많이 한다. 집이 베드타운이라, 강변북로를 자주 이용했는데 정말 저렇게까지 운전해야 하나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1차선에서 4차선으로 급작스러운 차선변경을 하거나, 뻔히 진입구에 줄 서 있는 걸 알면서도 다른 차들을 앞질러 앞에서 끼어든다. 물론, 깜빡이를 켜지 않는 건 기본이다.
이런 스트레스가 일본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애초에 이런 일이 없도록 서로 주의를 한다고 할까. 자기가 공공장소에서 드러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사소한 트러블이 생기는 일은 적다. 일본인들 사이에선 남이 배려하기에 앞서 자기도 배려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이게 불편할 수도 있겠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면 안돼(人に「迷惑」をかけてはいけない)'가 일본 사회 규범의 기본이다.
시내버스는 지나치리만큼 친절하고 난폭운전을 않는다. 대신 한국처럼 늦게까지 버스가 없고, 중단거리 노선이 대부분이다. 택시는 대체로 나이든 분들이 많고 마찬가지로 느린 대신, 가격은 2~3배 비싸다. 전철, 지하철 내에선 특별히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남과 부딪힐 일(물론, 치한의 가능성은 별도로 하고)이 적다.
다만, 이같은 배려가 우리가 생각하는 더 큰 차원의 사회의식으로는 이어지지 않을때도 많다. 예를 들면, 소수자 배려라든지 외국인 문제가 그렇다. 익히 알듯히 혐한 시위나 외국인 혐오 발언이 길거리에서 버젓이 벌어지는 게 또한 일본의 한 모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동조하지는 않을지언정, 나서서 적극적으로 제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혐한시위에 적극적으로 맞서는(다소 과격한 방법을 써서) 집단도 '똑같은 사람들'이란 평가가 나올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주의 성향이 비교적 강한 사람은 일본 사회가 잘 맞을지 모르나, 뭔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하고 싶은 사람은 차라리 한국이 나을 듯 싶다. 난 스스로를 개인주의자라고 여기기 때문에 일본 사회에서 큰 어려움 없이 지금까지 왔으나, 가끔 답답할 때가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서 받은 일상적 짜증을 생각하면 정신 건강은 지금이 한결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