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필요 없는 외국계 기업?
*일본은 오늘까지 3연휴(경로의 날)입니다. 학기도 중반을 향해가면서 이런저런 조사하고 써야할 게 늘어나 글의 간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대한 짬을 내 글을 업데이트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요즘 단풍이 절정인 때라, 단풍 명소 교토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라고 하더군요. 아침 와이드쇼(시사 해설 프로그램)에서는 외국인의 관광지 비매너를 방송에서 자주 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도 나중에 하나 써보겠습니다.
한국에서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사람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영어실력은 네이티브급에, 몇년간 해외에서 산 경험이 있는, 거기에 집안까지 빼놓을 것 없는', 이런 이미지 아닐까. 개인적으로 2년여간 증권 시장을 취재하면서 실제로 본 글로벌 금융사(메릴린치, JP모건 등)의 한국 법인 내지 지점 사람들은 그런 이미지에 부합했다. 한국어보다 영어가 자연스럽거나, 기본적으로 영미권 유수 대학의 MBA 내지는 상경계 전공 석박사 학위를 갖추고 있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애플, 구글)
게다가 국내 외국계 금융사는 인원수도 많지 않아 정말 선택받은 사람만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이 하는 일도, 일반 사람이 범접할 수 없는 국내외 대기업의 큰 규모 M&A라든지 주식 발행 등, 뭔가 듣기만 해도 '선망의 대상'이 될 것 같은 것들이 많았다(그랬기 때문에 크고 작은 잡음이 발생했지만). 물론, 연봉도 우리의 상상을 넘어설 것이다.
그 결과, 대체로 외국계 기업, 특히 금융사나 컨설팅사는 공채 시스템보다는 경력자나 능력자(?)를 중도에 데려오는 일이 많다고 들었다. 잘 나가는 사람이 더 잘 나가는, 그런 조직이 한국내 외국계 기업인 셈이다.
아래는 부산시 홈페이지(잡코리아 자료 제공)에서 퍼온 사진이다. 2010년 자료인데 지금 상황은 이보다 더 악화됐으면 됐지, 나아지지는 않았다고 생각된다.
일본도 마찬가지일까.
지난번 적은 '일본 취업의 몇 가지 사실①'을 돌이켜보자. 당시 취업설명회에 참가한 기업 목록을 보다보면,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모건스탠리, 필립모리스재팬, P&G 재팬이 그들이다. 이들 기업은 한국에서도 이름 높은 외국계 기업이다. 일본에서는 '외자계(外資系)'기업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콧대 높은' 외국계기업이 일본에선 집단 채용 설명회에 참가한다는 사실이 우선 특이하다(이 글에서는 편의상 외국계 기업으로 통일해 적는다).
그럼 채용 과정은 어떨까. 개인적으로 알게 된 유학생 A씨의 얘기를 먼저 해보자. A씨는 2013년 일본 출장 때 많은 도움을 준 친구로, 일본 최고 명문대 학부를 졸업했다. 당시 A씨는 외국계 금융사 한 곳에 채용이 확정돼 널널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4학년생이었다.
일단 일본에서 외국계 기업은 채용이 일반 대기업보다 반년 가량 빠르다. 이른 봄쯤 채용을 시작하는데, 이 때 중요하게 작용하는 건 인턴 경험이라고 한다. 해당 회사에서 인턴을 해서 인정 받았다면 공채의 많은 단계를 건너 뛰게 해주는 '인사부의 전화'를 받는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당신이 일하는 걸 보니까, 굉장히 적응도 잘하고, 능력도 있어보이는데 대졸 채용에 꼭 지원해달라."
아마 한국 같으면 별로 좋지 못한 소리를 들을 만한 채용과정이지만 일본에선 오히려 자랑이다. 그 회사에서 인정받았다는 증거이므로. 특히 인턴 과정 중에 대학교 선배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어필하는 게 중요하다고도 한다. 어찌보면 한국보다 더 지독한 연줄 사회의 면이라고도 하겠다. (다만 이런 문화는 외국계나 일본계나 마찬가지라 외국계만의 특색은 아닐 수 있다) 개인의 영어실력보다도 이런 노력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그 이유는 후술한다).
물론, 인턴을 하지 않았더라도 공채과정(면접 등)에서 능력을 발휘하면 채용되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일본에서도 외국계 기업의 대표주자는 컨설팅사(액센추어, 보스턴, 딜로이트토마츠 등)와 금융사다(물론, 구글이나 애플도 인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애플 채용 역시 국내 영업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다고 한다).
JP모건의 지난해 채용 공고를 한 번 보자(https://job.rikunabi.com/2016/company/employ/r755010026/).
채용 인원(採用予定数)은 20~30명이다. 채용과정은 여타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으로 등록하고, 서류(엔트리시트, 자기소개 등이 담김)를 제출한다. 그 사이에 설명회가 있고, 면접 등을 거쳐 내정을 받는다. 채용부문은 투자은행, 마켓(채권, 외환, 주식), 애셋 매니지먼트 등이다. 재밌는 건 채용 실적 대학을 적어뒀다는 점이다. 아래에 화면을 캡처했다.
교토대학, 게이오기주쿠대학, 국제기독교대학(ICU), 조치대학, 소카대학(일본의 대형 종교집단 창가학회 재단), 츠쿠바대학, 도쿄공업대학, 도쿄대학, 히토츠바시대학 및 전국의 국공사립대학(원), 해외대학(원)으로 돼있다. 이른바 일본의 명문대는 모두 망라해놨다. 이렇게 적어놓은 건 '이 아래급 대학 지원자들은 엄두를 내지 마시오'라는 효과도 어느 정도는 노렸다고 보인다.
또한, 서두에 적었던 영어는 어떨까? 영어에 관해서는 JP모건 채용 홈페이지에 이렇게 적혀있다. (http://careers.jpmorgan.com/careers/programs/investment-banking-fulltime-analyst)
(해석) 배속지의 업무내용에 따라 요구되는 레벨이 다릅니다. 채용부문에 따라서는, 국내외의 동료나 고객과의 전화, 메일, 미팅 등에서 영어를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레벨에 관계없이 영어력을 높일 의욕을 가진 분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내정단계부터 수강할 수 있는 영어 연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항상 개인 레벨에서 노력할 것이 요구됩니다. 또한, 올바른 일본어를 쓸 수 있는 일은 영어력 이상으로 중요합니다.
풀어서 얘기하면, 지금은 영어를 못하든 잘하든 관계 없다. 대신 JP모건 재팬에 들어오려면 영어를 배우려는 자세를 갖춰야 하고, 우리는 프로그램을 준비해뒀으니 그에 맞춰 노력해달라. 그렇지만, 올바른 일본어도 못 쓰는 사람을 받고 싶지 않다. 가 되겠다.
한국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지 않은가. 이런 일은 크게 두 가지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첫째, 한국보다 훨씬 저변이 넓은 기업 시장이 있겠다. 기업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 내 외국계 금융사들은 글로벌 능력보다는 일본 기업에 대한 영업이 더 중요하다(외국계 컨설팅사도 이점에서는 동일하다).특히 중소, 중견기업층이 넓다는 사실이 중요하겠다.
둘째는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일본 대학생들이 영어에 좀처럼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영어를 못해도 들어갈 수 있는 일본 내수용 기업이나 상사 등은 많다. 한국은 영어가 필수이지만, 일본 대학생들에게 영어는 해야는 하지만, 플러스 알파지 기본은 아니다. 그러다보니, 외국계 기업마저 위와 같은 글을 적어놓은 것이다.
다양한 직군을 합하면 1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채용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액센추어도 잠깐 살펴보자. 액센추어는 신입직원의 급여를 당당하게 공개하는 점이 눈에 띈다(https://job.rikunabi.com/2016/company/employ/r357800016/)
직종에 따라 다르나, '컨설턴트직'의 경우 '전략컨설턴트직'은 첫해 연봉이 550만9000엔(기준연봉+수당)이고, '테크놀로지,비즈니스컨설턴트'는 430만엔(기준연봉)이다. 그 밑에 적힌 것은 엔지니어직이다. 수당에 대해서는, 초과근무수당, 주택수당, 근무수당, 출장수당, 자격취득보조 등이 있다고 한다. 한국 기업의 홈페이지나 채용공고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문구가 아닌가 싶다. 복리 후생과 관련한 내용은 액센추어 대졸 채용 홈페이지에 보다 자세히 적혀 있다.(https://www.accenture.com/jp-ja/Careers/students-graduates)
근무지는 수도권이거나, 삿포로라고 한다. 근무시간은 플렉스타임제로 표준 시간은 9시~18시다(다만 일본에서도 컨설턴트는 야근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휴일휴가는 완전 주2휴일로, 공휴일, 연말연시, 연차유급휴가(첫년도는 12일을 나눠 부여), 상병휴가, 결혼,출산, 경조사휴가, 봉사활동 휴가 등이 있다고 한다. 보험은 위와 같다.
교육제도에 대해선, '입사후 신입사원에 대한 실무연수, 그밖의 업무분야별, 업계별 연수 커리큘럼이 다수 있고, 커리어패스에 대응해 선택할 수 있다. 해외 몇 군데에 있는 트레이닝 센터에서 전세계 사무소의 사원과 함께 연수 받을 기회가 있다.' 복리 후생도 써놔는데, 종업원주식구입플랜, 재형저축제도, 퇴직연금제도, 각종법인회원및계약시설, 호텔, 각종 클럽활동, 산업의에 따른 건강상담실, 카운셀링지원제도 등이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컨설팅 사에 대한 인기는 최상위권이라, 일은 엄청 많지만 개인을 키울 수 있는 기회로 여기는 분위기다. 같은 대학원의 한 학년 위 학생(학부는 교토의 리츠메이칸)이 올해 액센추어에서 내정을 받았는데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걸 봤다. 참고로, 해당 학생의 영어수준은 한국으로 치면 명함을 내밀긴 힘들다.
너무 길어져서 일단은 여기까지 쓰겠다. 영어가 그닥 중요하지 않은 외국계기업, 아마도 전세계에서 일본 외에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 내 한국인 유학생들도 적지 않게 문을 두드리고, 개중에 합격하는 숫자도 적지 않다(일단 영어가 일본애들보다 된다는 점도 작용하는 듯 싶다).
다만, 일본 내 외국계 기업의 비즈니스 중심은 어디까지나 국내다. 뉴욕이나 런던에서 활약할 글로벌 인재가 될 기회도 물론 있겠지만, 포커스의 중심은 철저히 일본에 맞춰져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