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가 안겨준 기분좋은 충격
과거 취업준비할 때는 일부러 이런저런 영화를 챙겨보곤 했다. 글 쓰는 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강했고, 한 편으로는 보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기 때문이다.
애용했던 게 영화 정보를 모아놓은 IMDB(https://www.imdb.com/)란 사이트다. 여기 top 200 가운데 위에서부터 하나씩 봤다. 명작 영화의 특징은 획기적인 부분도 부분이지만 일단 대체로 재밌었다. 대부가 그랬고, 스파게티 웨스턴(세르지오 레오네의 서부극)이 그랬다.
특히 기억에 남는 영화가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픽션' (Pulp Fiction)'이었다.
영화 자체는 폭력적인 내용이 적지 않고 그야말로 B급정서로 가득했다. 인상 깊었던 건 시간을 뒤엎은 구성이었다. 만약 이걸 시간순대로 봤다면, 개인적으로는 '그냥 그런 영화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방식 자체가 탁월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B급 정서를 선호하는 취향이 영향을 줬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IMDB 9위에 올라있다.
'어느 가족'에 이어 일본 영화 소개글을 바로 써 올리는 건 그만큼 무릎을 탁 칠정도로 감탄했기 때문이다.
B급 정서의 좀비 영화를 가장한 영화적 구성이, 어쩌면 상투적일 수 있는 스토리를 완전히 감탄사로 바꿔놓은 영화였다. 한국에서도 지난주 개봉한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カメラを止めるな!)' 얘기다. 예술성이라고 하기 까지는 애매하지만, 대중성과 아이디어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영화란 생각이 들었다.
일본서 이 영화는 나날이 역주행 신화를 쓰고 있다. 당초 2~3개 관에서만 개봉했던 영화가 SNS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당초 제작비 3000만~4000만으로 만들었던 영화가 지금까지 100억원 가까이 벌어들였다고 한다.
아래는 출연 배우가 올린 사진이다. 오사카 우메다의 한 극장에서 몇 백석이나 되는 자리가 가득 찼다. 작은 일본 영화가 이처럼 흥행 신화를 쓰는 일은 매우 드물다는데, SNS를 통한 입소문 효과가 그만큼 대단한듯 싶다. 물론, 영화 자체가 가진 힘도 세다.
실제 영화에는 유명한 배우는커녕, 몇 년간 연기를 안하던 사람이 나온다던가, 단순히 '엔딩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는 이유로 참여한 대학생도 있었다. 제작비를 보면 사실 납득이 가는 지점이다. 영화 배경으로 나오는 폐건물이나 스튜디오 등등도 장소 섭외비를 아마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가지는 장점 자체가 구성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설명하진 않겠다.
다만 처음에 시작되는 조악한 좀비영화는 뒤에 이어질 진짜 영화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다. 숭숭 뚫려있는 영상의 구멍과 어색한 상황 등등에 대해서도 영화는 뒤에 친절하면서 자연스럽게 설명해준다. 이 지점이 작위적이지 않았다는 게 감탄 포인트였다. 오히려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로 적절히 요리했다.
감독 자체가 좀비 영화 팬으로, 조악한 좀비 영화 자체도 클리셰를 비꼬는 장치였다고. 개인적으로는 초반의 조악한 부분도 나름 흥미롭게 봤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없이 본다면 무의미한 슬래셔 무비가 이어지는 데 충격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실제로 초반부에 '이게 뭐야' 하고 나가버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데, 꼭 인내해주시길.
다른 한편으로 영화는 '팀으로서 영화를 만드는 어려움, 갈등'을 다루고 있다. 전형적인 갈등 요소라 할 수 있는 말 안 듣는 팀원들과 외부의 압력이 영화를 이끌어가지만, 어색하지 않다. 실제로는 영화 외에 모든 협동 작업이라는 것도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전에서는 작업 과정에 구멍이 숭숭 뚫려도 어찌어찌 막으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식으로.
이런저런 설명을 제쳐두고서라도 영화는 무척이나 재미있다.
전반부의 30분 이후부터는 웃기 싫어도 웃을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최소 10곳 이상은 있다. 영화관을 나서면서는 기분좋은 충격과 아이디어에 감탄하면서 감독이 꾸준히 이런 영화를 만들어줬으면 하는 맘도 들었다. 최근 일본영화의 상황을 보면 쉽지는 않겠지만.
실제 이 영화 자체도 아이디어를 살리지 못하는 일본 영화계를 조롱하는 내용이 적지 않게 나온다. 이 부분도 관전 포인트. 주인공격인 여자 배우는 실제로 그라비아 아이돌이라고 한다. 영화 내에서 감독에게 하는 얄미운 대사는 실제로 감독이 겪은 경험이라고.
한국에서도 많은 분들이 봤으면 하는 바람에 추상적이나마 몇 줄 적어봤다. 배우들의 트위터를 봐도 한국 관객들의 반응이나 상영에 거는 기대가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