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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Mar 17. 2019

중립 지키는 최후의 보루, 일본 라디오 방송

TV/인터넷 매체와 다른 내용 내보내는 프로그램들

이런저런 일로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반한/혐한 보도가 계속 쏟아지다 이제야 다소나마 진정된 느낌이다. 


방송, 인터넷 미디어, 우파계 신문('진보'로 불리는 아사히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등등 도저히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팩트에 근거한 내용이라면 준엄한 비판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미디어 확인하는 게 고통일 정도였으니.


가장 황당하면서도 일본 내 SNS 파급력이 컸던 기사는 아래 내용이다.


'박영남'이라는 서울주재 '저널리스트'가 쓴 기사로 한국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커지고 있다고 적고 있다. 기사의 출고일은 지난 2월 18일. 내용을 간단히 살펴보자. 기사의 황당함은 곧바로 드러난다.


日韓の対立があらゆる方面でエスカレートする中、韓国内では公共機関に対し、日本製品の購買を禁じる法案まで登場した。最近、ソウル市議会で発議された『日本戦犯企業との随意契約締結制限に対する条例案』がそれだ。 


한일대립이 여러 방면에서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에서는 공공기관에 대한 일본제품 구매를 금지하는 법안마저 등장했다.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발의된 '일본전범기업과 수의계약체결 제한에 대한 조례안'이 그것이다.


(법안과 조례는 명확히 다른데 첫 단락부터 둘을 혼동해 쓰고 있다)

光復節(日本の終戦記念日で韓国の独立記念日)を目前にした昨年の8月9日、ソウル市議会の洪聖龍(ホン・ソンリョン)議員(共に民主党)は、ソウル市と各区役所などの傘下機関および、ソウル市教育庁や公立学校などに日本製品の使用状況に対する調査を要請した。


광복절을 목전에 둔 작년 8월 9일 서울시의회 홍성룡의원은 서울시와 각 구청 등 산하기관 및 서울시 교육청, 공립학교 등에 일본제품 사용상황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이번 한일갈등과 시기적으로 관계 없는 8월 9일 내용이 등장한다. 이 지점만 봐도 이 기사가 클릭수를 위한 어뷰징용임을 알 수 있다)


(중략)


ソウル市など各機関は、洪議員の要求に応じ、直ちに調査に入った。韓国の日刊紙『朝鮮日報』の2017年9月21日のインターネット版記事によると、この調査過程で「市議のパワハラ」「行政力の浪費」などの声が現場のあちこちで起こった。一部の区役所では物品調査のために徹夜勤務を続ける羽目になったケースもあったという。

서울시 각 기관은 홍의원 요구에 응해 바로 조사에 들어갔다. 한국 일간지 '조선일보'의 2017년 9월 21일 인터넷판 기사에 따르면 이 조사과정에서 '시의원의 갑질' '행정력 낭비' 등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부 구청에서는 물품조사를 위해 철야근무를 하게 되는 일도 있다고 한다.


(갑자기 2017년이 등장한다. 아마도 착오로 보이는데 여태껏 수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떨어지고 인과관계도 옅은 여러 비슷한 사실을 묶어서 마치 한국에서 일본에 '반격'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박영남이라는 분 이름은 처음 듣는데, 검색해보니 대체로 일본에서 팔릴만한 기사를 작성하는 듯하고 쓰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된 것으로 보인다(한국서 반일법제정 움직임 등등). 대체로 이런 류의 기사들이 일본 포털(야후재팬)에 걸리고 일본 네티즌들이 거기에 부회뇌동하는 일이 요 몇달간 반복돼왔다.


일본제품 불매운동 기사는 트위터 등등에서 급속히 확산되면서 일본 내 혐한 세력에 좋은 소재꺼리가 돼갔다. 실체 없는 불매운동에 너나할 것 없이 대응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극단적 얘기도 쏟아졌다. 앞서도 적었지만 이건 교묘한 왜곡보도다. 일부러 자극적인 사실을 짜깁기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뉴스위크 일본판'이 '한국 팩트체크'라는 이름으로 비교적 중립적인 특집을 내놓았다. 아래 사진이 해당 특집 표지다. 


요는 "일본인들이 생각하는 만큼, 한국은 더이상 일본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일본 까는 걸로 지지율버는 것도 더이상 의미가 없다는 내용도. 오죽했으면 이런 특집까지 나왔나 싶지만, 이미 퍼질대로 퍼진 편견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으리라 본다.



개인적으로 신문을 제외한 일본 미디어의 가장 큰 특징은 '상업주의에 기반한 정치성'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상업주의가 먼저고 정치성은 그 뒤에 따라온다. '팔릴만한 내용'이면 방송, 인터넷미디어는 그게 어떤 정치성을 가졌는지 개의치 않고 대대적으로 쏟아낸다. 특히 한국, 북한, 중국 같이 외국은 명예훼손으로 걸릴 일도 없으니 아주 좋은 소재다. 


한국 미디어가 주로 '정치성에 기반한 상업주의'라면, 일본은 그 반대인 셈이다. 극우논조로 잘 알려진 산케이신문(産経新聞)이 최근 기자 채용을 못할 정도로 망가져가고 있는 것도 '혐한/반중/반북 시장'이 '레드오션'이 되고 있는 걸 반영하는 건 아닐까 싶다. 


아래 기사를 보면 산케이에서 신규 채용하는 기자가 올해 2명으로, 작년 40명의 20분의 1이라고 한다. 희망퇴직도 모집중이고, 5억엔가까운 적자를 기록했다고. 너도 나도 혐오시장에 뛰어드니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산케이가 이 지경이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나타났다고 하겠다.




이같은 풍조가 확산돼가는 가운데 그나마 중립을 꾸준히 지켜오는 미디어도 없지는 않다. 


바로 라디오다. 그 중에서도 TBS라디오 시사 프로 두 개가 감정론에 휩쓸리지 않고 한일관계를 다뤄왔다. 대표적인 프로는 평일 밤 10~12시 방송되는 오기우에 치키(荻上チキ)의 '세션 22'. 다른 하나는 낮에 하는 아라카와 쿄게(荒川強啓)의 '데이 캐치(デイ・キャッチ)'다.


(참고로 TV 가운데서는 일요일 아침 8시에 시작하는 TBS '선데이 모닝(サンデーモーニング)'가 객관적인 시사프로다. 스포츠 해설을 위해 나오는 장훈(張本勲) 선생의 해설이 유명하다)


오기우에의 방송은 일주일에 최소 2번이상, 아라카와 쿄케 방송은 가끔 듣고 있어, 오늘은 전자를 중심으로 소개할까 한다.





1981년생으로 젊은 시사평론가 오기우에와 난부 히로미(南部広美)라는 여성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전반은 주로 시사 문제를, 후반은 정해진 주제를 해설한다. 


후반 출연자는 대체로 객관적인 전문가(교수, 저널리스트, 의료인 등등)로, 최근 일본 미디어계에선 드물게 대체로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다. 전세계 이슈를 포괄하기 때문에 일본 국내문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최근 다뤄진 이슈는 다음과 같다.


'지진재해, 그리고 원전사고로부터 8년. 후쿠시마 현지 취재보고' (3/12)

'전인대 개막. 중국은 어디를 향하는가'(3/8)

'범죄백서 발간과 분석'(3/6)

'3/1 독립운동-100년전에 일어난 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현대의 의미는?'(3/1)

'북미정상회담 무대 베트남의 지금'(2/27)


(일본어 공부하시는 분들 계시다면, 유튜브에도 (아마도 불법으로?) 올라와 있는데 참고하시길 바란다)


예를 들어, 지난 삼일절 때는 일본에서 '여행주의'를 발령하는 등 난리를 피웠는데, 서대교라는 서울주재 재일교포 언론인이 출연해 "조심할 건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이 아니라 매운음식"이라는 농담으로 호들갑을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일본 정치인(주로 보수 정치인)이 국회에서 희한한 발언을 하면 그걸 모아서 정기적으로 '국회관전 황당한 플레이, 좋은 플레이(国会観戦・珍プレー好プレー)'를 방송하는데, 정치인을 시원하게 깐다. 일본에서 좀처럼 국회 발언 하나하나를 조명하는 시사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귀중한 프로그램이라 하겠다. 


다행인 점은 TBS가 라디오 청취율이 높고, 오기우에의 방송 역시 동시간대 가장 높은 청취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 물론, 파급력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나마 중심을 지켜주는 방송이 있다는 것 자체로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하겠다. 


다만, TBS 외에 일본 라디오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시사프로그램이 극히 드물다. 음악방송이나 연예인이 나와서 시끄럽게 잡담만 늘어놓는 방송이 대다수라, 팬이 아니거나 전후 맥락을 잘 모르면 솔직히 별로 재미가 없다. 시사프로가 범람(?)하는 한국과도 좋은 대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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