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가는 일본의 공사구분
이번주초 일본 SNS를 뜨겁게 달군 사건 하나 소개할까 한다. 한국에서도 다뤄지긴 했는데, 사건의 전개과정에 극적인 면이 있어서 정리해본다.
일본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SNS는 트위터다.
한국에서는 예전 같지 못한 느낌이 드는 트위터지만 일본에서는 주요 지식인이나 정치인, 예능인 등등도 발신용으로 트위터를 쓴다. 그 덕에 한동안 트위터를 접었다가 몇 년 전부터 트위터를 다시 쓰고 있다. 익명인 관계로 계정을 공개하기는 곤란하지만.
실제 아래 트위터 통계(2019년 1월)를 보면 일본이 미국에 이어 2위를 점하고 있다. 3위 영국과는 격차가 큰 데 비해 1위 미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게 눈에 띈다.
트위터의 가장 큰 특징은 익명성인 듯싶다.
처음 등록할 때 전화번호 외에 개인정보를 묻지 않는다. 아이디나 주소 등등도 완전히 감출 수 있다. 게다가 아이디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만들 수 있다. 자아를 여러 개로 증식할 수 있는 셈이다. 대놓고 공공에 의견 내는 걸 꺼리는 일본 사회 분위기가, 익명성 높은 트위터 이용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겠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만 구가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트위터를 악용한 각종 범죄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2년전 트위터상에서 자살욕망 여성들을 유인해 살해한 사건이다. 20대 남자가 트위터에 '죽고 싶다'는 내용을 올린 계정에 접근해 "죽는 걸 도와주겠다"며 불러 십 수명을 살해했다. 당시 잠깐 트위터 규제 얘기가 나왔지만, 결국 아무런 변화도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트위터상에는 각종 혐한, 차별 발언을 쏟아내는 계정들도 가득하다.
당당히 얼굴을 까고 활동하는 이른바 '네임드 극우'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개인정보를 전혀 노출하지 않는 이들이다.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한국, 중국, 북한에 대해 '국가'에 한정짓지 않고, 민족성, 범죄, 정책 등등 모든 것을 폄하하고 비난한다. 그야말로 '가관'인 것들이 다수인데, 서로가 서로를 리트윗하면서 금세 확산되는 특징을 지녔다.
물론 이에 대항하는 움직임도 없지는 않다.
대표적인 게 '넷 우익 BAN 마츠리'라는 캠페인(?)으로, 일정 시기가 되면 차별에 반대하는 트위터 유저들이 일제히 차별 조장 계정을 신고해 정지시킨다. 주기적으로 이뤄지는데 그 결과도 서로 공유한다. 아래 해시태그다.
익명이었지만 이름이 상당히 알려진 혐한 트위터 계정에 'youbo(@kasaikun)'라는 인물이 있었다. 당연히 개인정보를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아래 계정 화면을 봐도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없다. 야구장 배경 화면에 후지산(?)으로 추정되는 얼굴 화면을 걸었다. 현재는 계정이 삭제됐다.
(알고 보니 카사이쿤이라는 건 나름 힌트였다)
youbo가 올린 대표적인 내용 몇 가지를 소개해보면 다음과 같다.
일본 민주당/사민당 내 귀화의원(즉 한국/조선에서 귀화했다는 주장) 명단. 당연히 근거는 없고 주장만 있다.
하토야마 민주당 내의 귀화의원 사진.
아래는 번역을 덧붙인다.
youbo@kasaikun
@c041207 もともと属国根性の卑怯な食糞民族!
日本には関係のない輩!
断交、無視が一番。
南北統一後は敵国確定なんだから、備えよう!
posted at 07:31:57
원래 속국근성의 비겁한 식분(대변)민족!
일본에 관계 없는 놈!
단교, 무시가 제일.
남북통일 후는 적국 확정이니까, 대비하자!
youbo@kasaikun
@lullymiura 食糞民族がこれ以上、来日することは、日本の社会不安の増大、特に治安の悪化に直結する。
反日教育を受けているんだから、そもそもくる必要ないんだから、ビザ要件は通常に戻すのが当然。
posted at 20:31:41
식분민족이 이 이상 일본에 오는 건, 일본의 사회불안 증대, 특히 치안 악화에 직결된다.
반일교육을 받고 있으니 애당초 올 필요 없으니까 비자 요건을 원래대로 돌리는 게 당연.
등등. 이 정도만 옮겨보겠다. 이런 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향유하던 youbo였으나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다음 트윗을 보자.
5년 전에 올렸던 트윗이 다른 유저에게 발각된 것이다.
'아침부터 비도 그치고, 근처의 시청 벚꽃은 개화! 바로 앞의 소철(상록수)과 투샷은 좀처럼 없는 일 아닌가? @ 토요나카시청'이라는 내용인데, 바로 뒤에 인스타그램 주소를 링크해놨다. 이를 따라가 보면, 다음과 같은 계정이 등장했다. 아이디는 물론 이름도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일본의 '네티즌 수사대'가 출동해, youbo가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국민연금사무소장 카사이 유키히사임을 밝혀냈다. 그러면서 줄줄이 프로필이 털리기 시작했다. 출신 고교부터 대학교, 이전까지의 근무 이력까지 전부.
아래는 사진과 이력이다. 북해도에서 대학까지 나오고, 위의 트위터에 있던 시절에는 토요나카 연금사무소장이었음도 확인된다.
익명성에 숨어서 신나게 떠들어대던 카사이는 차별 트위터들을 급하게 지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서 일본 언론에도 보도되기 시작했고, 특히 최근 김포공항에서 난동 부린 후생노동성 과장과 맞물려 일본 혐한 풍조를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결국 카사이는 다음과 같은 투고를 남기고 트위터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불과 4일 전 일이다.
제 개인적 발언에 의해 상처 받은 여러분들께 깊이 사과드립니다. 발언을 모두 삭제한 것과 함께 향후 두 번 다시 부적절한 발언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제가 한 헤이트 발언에 대해 오늘 회사에 보고했습니다. 그 뒤에 요츠야님(상사인 듯)를 만나 직접 사죄와 반성, 뉘우치고 이후 두 번 다시 헤이트 발언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습니다. 모든 분께 헤이트 발언에 대해 사죄드림과 함께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뜬금없는 '회사'라는 표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요츠야'라는 인물에 대한 사죄에 대해서도 비판의 반응이 적지 않았다. 물론 이 같은 사죄에도 이미 때는 늦었고, 사회문제가 되자 연금사무소장에서 경질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런 걸 보면 최근 일본 사회 내에 확산되는 혐한 풍조와 함께 익명성 뒤에 숨어 맘껏 떠는 것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물론, 한국사회에 이 같은 풍조가 없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도 강조하고자 한다. 혐한의 대상이니까 한국인이 '무조건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건 부디 그만뒀으면 좋겠다.
대표적인 게 범죄=조선족이라는 논리다.
강력 범죄가 일어나기만 하면 모두 조선족의 탓으로 돌린다든가, 추방해야 한다든가 하는 내용은 일본 넷우익의 그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런저런 근거를 대지만, 통계적으로는 입증되기 어려운 '개인적 혐오감'에 기반한 게 대부분이다. 일본 넷우익도 자기들 나름의 근거로 얘기하지만 대체로 주장의 근거는 개인적 혐오에 기반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최근의 한일갈등 속에서 이 같은 혐한 풍조가 확산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게다가 한국정부의 일본 대응은 여러모로 부족한데,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몇 자 적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