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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Apr 16. 2019

일본서 '후쿠시마산' 공포는 얼마나 사라졌을까

내가 싫은 걸 남에게 판다?

근래 있은 WTO 후쿠시마 산물 금지 인정 판결은 아베 정권의 무리한 '지진 부흥' 홍보가 무리였음을 새삼 실감케 한다. 자국 내에서도 여전히 불신이 남아 있는 수산물을 해외에 강요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 일본 내 슈퍼에서 수산물 코너를 돌아보면 후쿠시마 근해는 보이지 않고, 그나마 가까운 이와테(岩手)나 치바(千葉)산도 그다지 잘 팔리는 느낌이 아니다. 늦은 시간에 가보면 이 지역 수산물들에는 '할인 스티커'가 늘 붙여져 있다. 필자도 수산물은 되도록이면 규슈산이나 북일본것을 산다(한국과 바다가 공유되는 지역).


일본 슈퍼의 할인 스티커(https://girlschannel.net/topics/1577019/)


농산물은 드문드문 후쿠시마산이 보이기도 한다. 오이라든지 복숭아가 대표적이다. 가격이 이상하리만치 싸서 보면 거의 다 후쿠시마산이다. 정부 보조금 영향으로 낮은 가격에 판다고 하는데, 그만큼 불신이 여전하단 걸 반영하는 게 아닐까 싶다.


과거 주요 쌀 산지였던 후쿠시마 쌀은 아예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디론가 출하가 되는 건 사실이다.


아래 표를 보면 알 수 있다. 표 하단의 '23(平成23年=2011년)'라고 쓰여있는 부분이 원전사고가 있었던 해로, 파란선 그래프는 '수확량', 막대그래프는 '경작 면적'이다. 여전히 2016년 기준으로 전국 7위 규모라고 하니까, 적잖게 유통이 되는 건 사실로 보인다. 이에 대해선 뒤에 적기로 한다.


(자세한 출하 관련 자료는 여기서 확인 가능)

https://www.pref.fukushima.lg.jp/sec/36035b/inasaku-gaiyou-sakutukejyoukyou.html


지난해 12월 기사에서는 후쿠시마산 쌀로 쿠키를 만들어서 판매한다는 내용도 있다. 후쿠시마산 음식=재해 부흥이라는 기이한 여론이 자리 잡고 말았다.



일본에서는 이같이 잘못된(?) 입소문으로 제품이 팔리지 않는 걸 '풍평피해(風評被害)'라 하는데, 후쿠시마산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는 먹거리 안전 문제에 대한 도쿄전력과 정부의 한심한 대응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조치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단순히 '입소문' 때문에 후쿠시마산을 안 먹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배경에는 불신이 있다.




오늘은 후쿠시마산 공포가 여전한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일본 내 체인점의 식자재 공급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려드릴까 한다. "한국사람이 그렇게 일본에 많이 와서 먹는데 WTO 판결은 모순 아니냐"라고 조롱하는 한 혐한 한국인 트위터도 봤는데, 그렇다면 일본 사람들은 이제 전혀 신경을 안 쓰게 된 걸까.


실상을 살짝 들여다본다.


첫번째 업체는 도시락 대형 체인 '홋토못토(ほっともっと)'와 밥집 '야요이켄(やよい軒)'을 운영하는 '프레나스(プレナス)'라는 곳이다. 여기는 쌀 산지를 공개하고 있다. 아래 그림이다.


쌀 주요 산지(https://www.plenus.co.jp/brand/rice/farming.html#introduction)


후쿠시마 가까운 지역인 미야기(宮城), 치바(千葉) 등등은 보이지만 그 사이에 있는 후쿠시마현은 공백으로 돼있다. 적어도 후쿠시마산 쌀을 대놓고 홍보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무의식적인 공포의 반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른 식자재도 후쿠시마산은 없는 듯싶다.


야요이켄보다 약간 건강식 느낌을 강조하는 체인점 '오오토야(大戸屋)'는 어떨까.


비교적 구체적으로 적고 있는데, 대놓고 후쿠시마산(福島産)으로 써놓은 건 보이지 않는다. 생선(お魚)에 대해서는 북유럽, 미국, 북해도, 뉴질랜드 산에 이어 한국산도 보인다. 특히 도미류에 대해서는 국산이라고 하고 혹시나 했는지 괄호 안에 나가사키 산이라고 써놨다. 후쿠시마 인근 생선은 아예 없다.



다만 쌀을 '국산 쌀(国産米)'이라고 뭉뚱그려놓은 것이 약간 미심쩍다. 오오토야쌀은 후쿠시마산이라는 인터넷 글(점포에서 물어봤더니 그렇게 답했더라)도 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여하튼 대놓고 '후쿠시마산'이라고 밝힌 식자재는 현시점에 없다.


다음은 나가사키 짬뽕 체인 '링거헛(リンガーハット)'이다. 여기도 비교적 상세하게 원산지를 밝히고 있다.



이렇게 많은 식품 가운데 역시나 대놓고 후쿠시마산을 밝히는 식자재는 전혀 없다. 쌀은 이바라키산, 돗토리 산, 북해도산을 쓴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분식점 위치에 있는 덮밥집들은 어떨까. 덮밥 3대 체인인 요시노야(吉野家), 스키야(すき家), 마츠야(松屋) 등등은 후쿠시마산을 쓴다는 의혹(?)이 많은 곳들이다. 가격도 싸고 양도 많다는 점에서다.


아래는 요시노야 메뉴 식자재 소개다. 고기류는 주로 해외에서 수입해서 쓰고 있다. 양파와 배추는 당당하게 중국산과 국산을 섞어 쓴다고 해놨다.


다만, 쌀에 대해서는 적지 않고 밑을 보라고 하며 이렇게 적혀있다. '쌀에 대해서는 '국산쌀' '국산, 미국산 혼합쌀' '국산, 호주산 혼합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세는 종업원에게 여쭤보세요' 후쿠시마산 쌀 사용 의혹이 짙으나 여기도 대놓고는 홍보하지 않고 있다. 중국산이 후쿠시마산보다 적어도 인식면에서는 위에 있는 상황이다.


요시노야 정보


다음은 스키야(すき家) 정보다. 흥미롭게도 쌀에는 국산이라 써놓고, 밑에 방사능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링크를 따라가 보면 방사능 검사를 철저히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후쿠시마산을 쓴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방사능 검사를 강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https://www.sukiya.jp/about/safety.html


다른 체인인 마츠야도 쌀이 '국산'으로만 표시된 것은 대동소이하다.


결론적으로 후쿠시마산 쌀 출하량이 저렇게 많음에도 받아 쓰고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외식 업체는 대놓고 홍보하지 못하고 있다. 소비가 줄 우려가 없고서야 굳이 감출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본서 후쿠시마산을 배척하는 건 하나의 터부가 되면서, 언론이나 일반인들은 드러내 놓고 비판하지 않는다. '풍평피해'라는 말처럼 재해 입은 농민들에게 입소문으로 추가 피해를 끼친다는 인식이 정착해버렸기 때문이다. 일본의 기이한 터부 문화가 안 좋은 쪽으로 작용하는 하나의 예라 하겠다.


지진이 있은 지 꽤 지났음에도 음식점에서 후쿠시마산을 강조할 수 없다는 점을 보면 당분간 후쿠시마산은 터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생각해보면, 일본 정부가 WTO 제소를 통해 인기도 없는 자국 식품을 무리하게 한국에 강요하려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만약 WTO 제소가 받아들여졌으면 해외뿐만 아니라 자국에도 홍보 효과가 있었으리라. 물론, 그런 조치가 나왔다고 해서 지금의 국내외 불신이 완전히 사라졌을까. 도저히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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