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역사 자랑하던 프로그램의 수상한 종영
지난 글을 통해서 일본 라디오 방송 가운데 몇몇이 그나마 정부 비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고 적은 바 있다(중립 지키는 최후의 보루, 일본 라디오 방송).
TBS 라디오에서 방송되는 '아라카와 쿄케의 데이 캐치'와 '오기우에 치키의 세션 22'다. 별문제 없이 방송되고 있다고 생각됐는데, 아라카와 쿄케 방송이 이미 지난달 막을 내렸다고 한다. 구체적 내막을 알기는 어렵지만 보도된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볼까 한다.
아라카와 쿄케의 데이캐치는 1995년 4월 시작한 역사 있는 방송이다. 평일 하루도 빠짐없이 오후 3시 30분부터 5시 50분까지 장장 2시간 20분에 걸쳐 방송된다.
출연하는 패널은 대체로 비판적 지식인이나 저널리스트로, 좌파 성향을 어김없이 드러내는 아오키 오사무(青木理)나 사회학자 미야다이 신지(宮台真司) 등등도 자주 등장했다.
아오키 오사무의 책은 한국에도 몇 권 번역된 듯하다.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2656
http://www.yes24.com/24/AuthorFile/Author/22887
아라카와 쿄케 본인은 지역 방송국 아나운서로 출발해 라디오 DJ로 정착한 이력을 지녔다. 앞서 적었듯 정부나 각종 사회현상에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한일관계가 한창 험악할 때도 비교적 중립적으로 사안을 바라보려 할 정도였으니 지금의 일본 사회 '공기'와는 반대방향을 갔다고 할 수 있겠다.
주 청취층은 시간대가 시간대니 만큼 주부층이나 노령층이다. 한국과 달리 이들은 비교적 진보적 성향을 지니면서도 여론의 대세에 따라 쉽게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보인다. 고이즈미의 포퓰리즘 때 가장 크게 반응한 이들이기도 하다.
2년 전 4월 조사를 보면 아라카와 쿄케의 방송은 전체 라디오 가운데 공동 6위에 올라 있다. 평일 출퇴근 시간도 , 주말 방송도 아닌 상황에 이 정도 기록이면 상당한 인기임을 알 수 있다. 상업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아라카와 방송이 갑자기 끝난다는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당연히 청취자들로부터는 이유를 묻는 반응이 속출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방송관계자는 "내용은 충실했다고 할 수 있지만 프로그램으로서 큰 역할을 마무리할 시기가 왔다. 신연호(令和)를 앞두고 새로운 방송을 만들고 싶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설명에 청취자들이 납득할 리가 없다. 지난달 21일 있었던 방송의 한 장면이 상징적인 듯해 옮겨본다.
聴取率は良いのに、元号変更を持ち出して「大きな役割を終える時期」というのは、さっぱり意味がわからない。しかも、荒川自身も、番組終了については深く語っていない。
現に、21日の放送では「消えた留学生問題」の解説で電話出演した常見陽平が「リスナーからも声が来ててですね、消える『荒川強啓デイ・キャッチ!』、どうするんだってことですよね」「TBS(ラジオ)のみなさん、出演者のみなさん、説明責任あると思いますよ」と言及すると、荒川は「そうですよね」「ぼくも訊きたいところもたくさんあるんですけども」と返答。リスナーだけではなく、荒川も番組終了に納得していない様子を滲ませたのだ。
시청률이 좋음에도 연호 변경을 꺼내 들고 '큰 역할을 끝낼 시기가'라는 건, 전혀 의미를 알 수 없다. 게다가 아라카와 자신도 방송 종료에 대해선 속 깊은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
21일 방송에선 '사라진 유학생 문제(유학비자로 온 학생들이 수백 명 증발한 사건)' 해설로 전화 출연한 츠네미 요헤이가 "청취자 반응이 와서 말인데요, 사라지는 '아라카와 쿄케 데이 캐치', 어찌 된 거지라고들 하던데""TBS에 계신 여러분, 출연자 여러분, 설명 책임이 있어요"라고 언급하자 아라카와는 "그렇죠" "제가 묻고 싶은 것도 많은데요"라고 대답했다. 청취자뿐만 아니라 아라카와도 방송 종료에 납득 안 가는 모습을 비춘 것이다.
기사 후반에는 자세한 배경 설명도 적혀 있다.
'데이캐치'가 아베 정권에 비판적인 몇 안 되는 방송이었다는 점, 특히 아베가 강행하던 안보법제나 기지 문제 등을 적극적으로 다루며 비판한 것 등이 이유로 거론된다. 앞서 거론한 미야다이 신지는 넷우익들을 "인간쓰레기" 등등 험한 말로 비판한 것으로 유명해지기도 한 인물. 2015년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지브리)가 출연해 아베 정권을 비판한 일도 있었다고.
결국 이 방송이 끝나고 새로 런칭하는 프로는 정치색이 전혀 없는 버라이어티 잡담 형식이라고 한다.
정황 증거는 충분하지만 명확히 입증은 힘든 '일본판 블랙리스트'가 작동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 듯싶다. 아라카와 쿄케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오기우에의 방송은 과연 얼마나 갈지도 관심사항이다. 아마도 엄청난(?) 유형, 무형의 압력이 있지 않을지.
최근 국제 NGO '국경없는 기자회'에서는 2019년 보도의 자유 순위를 발표했다.
한국은 41위로 아시아 최상위(이 순위로 최상위라는 건 얼마나 아시아 상황이 참혹한지를 알게 해준다), 일본은 지난해와 동일한 67위를 기록했다. 제대로 된 보도의 자유가 지켜지고 있다고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심지어 일본은 박근혜 정부 시절 한국보다도 낮은 순위를 기록한 바 있다.
이토록 보도의 자유가 처참한 수준으로 떨어져 있는 일본임에도 위기의식은 옅다.
한국보다 심한 출입처 폐쇄구조(기자클럽), 각종 법안으로 정보 접근은 막히고 언론들의 '정부에 대해 알아서 기는(忖度)' 문화는 점차 만연해간다.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우익들은 각종 방법으로 자신들의 생각에 반대되는 이들을 공격한다.
아래 기사에 나왔듯 방송서 일본 비판했다는 이유로 우익들의 익명공격을 받는 이영채 교수 사례는 하나의 상징이라 하겠다.
그런데 웃긴 건 우익일수록 자신들의 발언이 비판받으면 '표현의 자유'를 외친다는 점이다. 증오 선동(헤이트 스피치) 역시 표현의 자유 운운하면서 권리를 주장한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표현의 자유는 자신들만의 전유물일 뿐이다.
일본이 한국을 최근 더더욱 의식하는 건 정치적으로 더 이상 자신들이 우위에 있지 않음도 하나의 원인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일본은 정치면에서 더 이상 한국(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에 귀감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오히려 반면교사인 측면이 적지 않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민주주의에 자만과 방심은 용납되지 않는다. 일본의 민주주의 뿌리가 약한 걸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