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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Jul 05. 2019

일본 '관저정치'의 폐해와 무리한 돌진

반도체 분쟁은 정말로 전문가들의 치밀한 고뇌의 산물일까

한국 언론보도를 보면 단선적으로 '일본 정부는 이렇다'라는 얘기를 적지 않게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일본 정부는 예로부터 치밀하게 준비해오는 성향이 있고, 이번 반도체 분쟁에서도 그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관심 있게 읽은 기사 몇 개를 아래에 소개한다.





꼼꼼한 일본 정부이니 만큼 치밀하게 준비했을 것이고, 거기에 한국이 우왕좌왕한다는 '이미지'는 오랜 기간 뿌리깊게 자리잡았다. 실제로 그런 측면이 있고, 이번 분쟁에서 한국 정부가 초창기 잘 대응했는지에 의문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일본 측면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가 의도적으로 일본을 무시한다고 보이는 것도 분명히 있다. 게다가 상대방이 속좁은 아베이니 만큼, 트럼프에게 당한 수모를 누군가에게 풀어주고 싶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이같은 인식과 조금 다른 측면에서 일본 정부의 정책과정 변화를 지적해볼까 한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정부 내 제도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음에도 다뤄주는 언론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 자민당 독주 체제가 무너지고 다양한 연립 정권이 난립하던 시절, 일본 정치계의 목표는 '정치개혁'이었다. 제도를 바꾸고 혼란을 막자는 차원에서 다양한 제안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걸 두 개 꼽자면 하나는 총선을 중대선거구제에서 소선구제로 바꾸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총리관저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소선구제도 일본 정치판에 큰 변화를 낳았다고 생각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으면 다시 적어보도록 하겠다. 여기서는 총리관저 권한 강화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세력에게 정권을 빼앗긴 자민당은 1년 뒤 사회당과 연립을 거쳐 96년에 다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를 총리로 삼은 새 정권을 출범시킨다. 이 때 내건 정책이 이른바 '행정개혁안'이다. 보통 '橋本行革(하시모토 행정개혁, 교카쿠)'라 불린다.


핵심은 한국 청와대에 해당되는 관저(官邸)의 권한, 특히 인사권을 강화하고 관료가 정치인에게 종속되도록 한 데 있다. 간단히 말해 과거보다 총리 관저에 파견되는 공무원을 늘렸고 그들이 다시 소속 부처로 돌아가면 관저의 수족으로 일하게 했다.


예전에는 각 부처가 정치인들을 끼고(이들을 족의원族議員이라 한다, 건설, 보건, 농업 등 분야에 존재) 그들 나름의 정책과 이익을 위해 움직였다. 일본이 오랜 기간 '관료 우위 국가'라 불린 이유다. 유명한 말로 이를 '철의 삼각형(鉄の三角形)'이라고도 한다. 정치인+관료+이익집단이 정책을 결정해온 일본 모델을 말한다. 어찌보면 참여민주주의와는 반대되는 형태라 하겠다. 당연히 이 역시 개혁의 대상으로 꼽혔다.



하시모토 정권은 이를 타파하기 위해 관저에 권한을 집중하고 인사, 예산 등으로 부처를 통제하도록 했다. 기업으로 따지자면 자회사들이 따로 놀던 상황에 지주회사를 확실히 세우고 수직 계열화한 셈이다. 여기에서 역할을 하도록 한 조직이 이른바 '자문회의'다. 전문가 등을 모아서 부처들에 앞서 정책을 제시하는 조직이다.


하지만 하시모토 정권이나 그 뒤 오부치(小渕) 정권, 모리(森) 정권은 이 제도 개혁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자민당은 여전히 선거때마다 부침을 겪었다. 리더십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오부치는 미국에서 '식은 피자'라는 조롱을 받았고(하지만 제대로 일한 사실상 자민당 내 마지막 온건파 수상이기도 하다), 비밀회합에서 총리로 뽑힌 모리는 각종 실언과 실책으로 지지율이 한 자릿수 가까이 떨어진다.


이른바 '관저 정치'를 제대로 발휘한 건 고이즈미 정권이었다. 파벌에 의존하지 않고 자민당 총재(=수상)에 선출된 고이즈미는 모든 정책을 당이 아니라 관저 중심으로 결정했다.


과거 자민당에서 정한 정책은 내각을 스쳐지나가며 그대로 반영됐고(정무조사회라는 사전 심사 제도가 있었고 각 영역마다 정책부회가 있어서 앞서 언급한 족의원들이 관료들과 정책을 주도했다), 내각 대신(장관) 인사도 파벌 안배가 우선이었다. 


하지만 고이즈미는 이 같은 '관행'을 모두 무시하고 관저 중심으로 국내/대외 정책을 짰다. 이 시기 외교정책을 표현하는 게 '관저 외교'란 말이다. 자민당을 거치지 않고 관저가 야당과 직접 교섭하는가 하면,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몽땅 공천을 주지 않고 해당 지역구에 '자객'들을 꽂아넣었다.


그러다보니 이익정치에 매몰된 자민당 의원들이나 관료들이라면 각종 파장을 우려해 과거라면 하지 않았을 정책들이 속속 등장했다. 소수 이익이 아니라 '고이즈미 정권'의 지지율이 더욱 중요해지게 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무리수가 등장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책을 '단기적인 관점'에서 보게 됐다는 점이다. 몇 십년 한 분야를 다루는 관료나 사실상 평생직업인 자민당 의원(20-30년 의원하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 수상을 그만둔 뒤에도 계속 의원으로 남은 사람도 많다)은 정책 효과를 장기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2-3년하고 그만둘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이즈미 정권 때는 업계나 특정 분야 이익보다 정권의 안위가 더 중요해졌고, 사실상 승자독식제도인 소선거구제하에서 이같은 경향은 한층 강해진다. 경제적 효과가 불분명한 우정민영화(우체국)가 그랬고, 외무성을 사실상 무시하고 진행했던 북일정상회담이 그랬다. 둘다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았지만 결국 두 안건 모두 성공했는지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당시 고이즈미 정권의 황태자였던 현총리 아베는 이를 곁에서 하나하나 배웠으리라.


고이즈미 정권 뒤 성립한 1차 아베정권과 그 뒤 막장스러운 단기 퇴진 총리, 민주당 정부를 거치며 정치적 불안정성이 다시 일본을 엄습했다. 관저 권한 강화라는 제도는 고이즈미를 마지막으로 효율적으로 운용 되지 않았다. 수상 지지율이 어느 정도 버텨줘야 하는데 유지조차 쉽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등장한 게 제 2차 아베 내각이다. 


고이즈미 때의 성공 모델과 자신의 실패경험(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하고 물러났다)을 반추한 아베가 선택한 건 경제성과를 보인 뒤 관저 권한을 더욱 강화하는 길이었다. 강화의 핵심은 관료 인사권을 완전히 틀어쥐고 예산에 있어서도 주도권을 쥐는 일이었다. 


과거에 비교적 중립적으로 정해지던 자리에 아베 정권과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하나둘 심어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일본은행 총재 쿠로다 하루히코(黒田東彦)를 다소 무리하게 내정한 일이다. 쿠로다는 아베노믹스에 계속 보조를 맞추면서 대량으로 돈 푸는 일을 맡고 있다.


관저에서 일하는 자들을 관방(정치인도 있고 관료도 있다)이라 하는데, 이들의 정원은 2001년 186명이었다. 이게 2017년에는 10배 가까운 1100여명으로 급증했다. 인원이 많아지면서 내각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권력기관화했고, 모든 정책을 틀어쥐게 됐다. 당연히 권한의 최상층부에는 수상이 있다. 이전보다 훨씬 수상의 의중(?)이 반영되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여기에 2014년 중요한 관청이 하나 생긴다. 


내각인사국(内閣人事局)이다. 이 내각인사국을 처음 맡은 건 측근 중의 측근 이나다 토모미(稲田朋美、후에 방위대신을 하다가 자위대 선거 개입 발언으로 퇴진)였다. 이게 생기면서 주요 부처 인사를 관저가 완전히 장악하게 됐다. 과거엔 부처 인사에 비교적 자율성이 있었지만 이제 수상 의향으로 자를 사람을 쉽게 내칠 수 있게 됐다. 관료 우위였던 일본 사회가 질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앵무새처럼 '치밀한 일본론'이 반복되고 있지만, 정치 우위 구조가 되면서 관저를 견제할 수 있는 한 축이 무너졌다. 의회는 의원 내각제(다수당이 여당이자 내각)이기 때문에 당연히 관저를 견제할 유인이 적다. 게다가 자민당 내 파벌 구조도 더 이상 내부 경쟁을 벌이지 않는다(이는 소선거구제 때문이라는 게 다수설). 정책 운신의 폭은 넓어지겠지만 그만큼 강압적인 추진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추가로, 한국에서 일본의 관방장관(官房長官)은 일개 대변인 정도로 묘사되는 일도 있는 듯싶은데, 관방장관은 이같은 관저 전체를 수상과 함께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다. 청와대 대변인+비서실장+정책실장 정도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당연히 지금 있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역시 실세 중의 실세라 보면 된다. 성향은 아베와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사립학원 문제(모리토모/카케학원)라든지 각종 통계조작 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나왔음에도 관료들은 숨죽이고 그저 사실 은폐에 동원될 수밖에 없게 됐다. 잘못해서 찍히면 안위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눈치보기가 이른바 유행어('忖度손타쿠')가 될 정도였다.


아주 최근에 벌어진 황당한 사건 하나가 이같은 관저 지배의 폐해를 잘 보여주고 있는 듯 싶어 간략히 전해본다.


일본 금융청은 개인 자산형성과 관련, 노후에 한사람당 2000만엔(2억원 가량)이 부족하니 연금 외에도 적극 투자에 나설 것을 권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사실 내용이라는 건 그다지 크게 새로울 것 없었다. 한국에서도 각종 금융사가 발간하는 것과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문제가 이상한 곳으로 튀었다. 정식으로 보고서가 나오기 전인 지난달, 이를 발견한 야당과 언론이 "국민연금으로 충분하다면서 2000만엔 부족하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공격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비판을 할만한 지점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딱히 반박을 못할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연금만으로 생활 못하는 건 상식아닌가.


제 1차 아베정부는 연금 기록이 대량으로 없어진 이른바 '사라진 연금 문제'로 큰 곤욕을 치렀고 이 때문에 선거에서 대패한 트라우마가 있다. 이번에도 동일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참의원선거가 있었다. 


여기서부터 아베 정권의 대응이 상식을 벗어났다. 


금융청을 맡고 있는 아소 타로 재무상이 보고서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관료들을 질타했다. 여기에 당초 보고서와 비슷한 내용을 언급하던 스가 관방장관도 가세해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지지율을 우려한 나머지 묵묵히 제 할 일 하던 관료들 때리기에 나선 것이다.


지난 2일에는 보고서 정리를 담당한 금융청 국장이 퇴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다시 한번 논란이 됐다. 명목은 '정년퇴직'이었지만 실제 정년 연장해서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로 보아 관저의 압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해당 국장은 국회에서 "논의를 서포트하는 사무역할로 배려가 부족한 대응을 했다"고 사죄한 바 있다. 


지금 관료사회는 완전히 아베 정권에 종속돼있고 장기적인 정책을 치밀하게 입안하기보다는 이런 식의 단기적인 대응에 내몰리고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건 다음과 같은 얘기다.


이번 반도체 분쟁의 발단은 아베 개인 혹은 그를 둘러싼 집단이 갖고 있는 불만이 정책화 한 것이다. 분명 관료라는 전문가 집단이 관여한 건 사실이지만, 그 지시와 동기는 아베 정권의 단기적이고 감정적인 데서 비롯됐다. 


지금 일본 관저의 정책구조는 어느때보다 '윗사람의 의향'이 잘 반영되는 식으로 짜여져있다. 이 지점을 놓치고 과거와 동일한 틀로 일본을 바라보면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된다. 다시 말해, 지금의 일본 정책결정 구조는 적지 않은 무리수가 동반되며 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처 내 '예스멘/우먼'을 양산하는 상황에 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런 조직의 가장 극단적 형태가 북한의 김정은 체제이리라).


한국 전문가 오쿠조노 히데키(奥薗秀樹) 선생의 분석이 그래도 개인적으로 현실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이 들어서 기사 일부를 인용해본다. 연합뉴스 기자가 해당 관저 변화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래 지적이 타당하지 싶다.


일본은 (총리)관저 주도의 외교를 하고 있고, 외무성은 아베 총리의 외교의 수단일 뿐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여서 청와대 주도의 외교를 하는데 일본에 대해 잘 아는 인재가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징용공 판결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레이더 문제는 아베의 시비걸기라 생각해 논의하지 않겠다)이 부족했던 건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베 정부 처럼 무리하게 외교 사안을 이용해 한국 때리기로 관료 사회를 휘어잡고 단기적인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모습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안타깝지만 당분간은 이 국면이 지속될 듯싶다. 현재 필자도 일본에 있는 만큼 피해가 여기까지 미치지 않기를 부디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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