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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Jun 08. 2019

택시 승차거부와 쇼와시대 일본

매너는 시간에 따라 변하기 마련

현재 구독하고 있는 아사히신문(朝日新聞) 주말판 'be'는 가볍게 읽을만한 내용이 제법 많이 실려있다. 그중 한주도 빼놓지 않고 보는 코너가 있는데 4컷 만화 '사자에상(サザエさん)'과 시대상을 해설하는 기사다. 


사자에상은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져 '일본 국민 만화'라 불리는 작품이다. 


일본에서 나이를 가릴 것 없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현재도 매주 일요일 저녁 후지테레비(フジテレビ)에서 방송된다. 방송시간 때문에 '월요병'을 걱정하는 직장인을 가리켜 '사자에상 증후군'이라는 말도 있다. 위키피디아에 항목이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말이다. 


사자에상 등장인물. 가운데 여자 캐릭터가 사자에상이다.


일본에서 만화는 1946년, 애니메이션은 69년 시작됐으니 엄청난 역사를 자랑한다. 다만 한국에서는 방송이나 출판이 된 적 없는 것으로 안다. 만화를 봐도 일상의 잔잔한 얘기인 데다가, 일본 문화를 모르면 재미없을 가능성이 커서 수입이 안된 게 아닐까 싶다. 아래는 사자에상 증후군 소개 내용.



지난주 아사히신문 사자에상 해설 기사에 흥미로운 내용이 하나 실려 소개해볼까 한다. 69년 5월 사자에상 만화로 택시의 승차거부 문제를 다루고 있다.



출처: 아사히신문 2019년 6월 1일 자

한컷 한컷 번역해보면,


①"승차거부할 거야" / "안 할걸"


③(택시를 세우고) "이 세상이 싫어졌어. 아타미(熱海) 니시키가우라(錦ヶ浦)까지 가줄 수 있을지?"


④(돈을 건네며)"제대로 교섭했겠지?"/ "했고 말고"


두 사람이 택시의 승차거부 여부로 내기를 걸고, 처음 말 꺼낸 남성이 이겨 돈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니시키가우라'는 아래 사진에서 보듯 자살명소(?)라고 알려진 곳이다. 자살을 암시하는 대사에 택시기사가 안 태우고 간 것인데, 어쨌든 승차거부는 승차거부라 돈을 땄다는 결론. 


니시키가우라(錦ヶ浦) 경치. (https://www.ataminews.gr.jp/spot/132/)


기사가 주목한 내용은 당시의 '승차거부 문화'가 만화에까지 등장했다는 점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만화에 담겼다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60년대 일본에서 택시의 승차거부는 '일상다반사'로 심각한 사회문제였다고 한다. 


작품 게재 전날 아사히신문에는 '승차거부 단속의 악순환'이라는 제목으로 경찰의 단속 장면을 사진으로 보도했다고. 3일간 단속을 벌여서 41명을 서류송검(불구속기소의견 송치), 체포 1건, 현장 주의 205건에 이르렀다고 하니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같은 해 3월에는 승차거부하는 택시가, 쫓아가는 사람을 무시하고 내달려 해당 승객 오른쪽 발이 크게 다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 대학교수의 분석은 "승차거부의 가장 큰 원인은 공급 부족으로 당시 자가용도 보급 안된 상황에 택시 대수가 적은 게 영향 끼쳤다. 택시 회사나 운전사도 고압적이었다."


58년에는 도시를 질주하는 '카미가제(神風) 택시'도 등장했었다고 한다. 난폭하게 내달려서 다수 시민이 숨졌다고. 70년대 이후 자가용과 교통수단 발달로 승차거부 기사는 줄어갔다. 최소한 70년대 안팎까지는 승차거부가 일상적으로 일어났다고 해도 되겠다.


아래 마이니치신문 기사는 쇼와 42년(1967년) 오사카역 앞에서 대대적으로 벌어진 승차거부 단속 장면을 전하고 있다. 오사카부 직원들과 택시 협회가 합동으로 단속에 나섰다고 한다. 이처럼 행정력이 대거 동원될 정도로 사회의 관심을 끄는 일상의 문제였던 것이다.




예전 이 블로그에 쓴 두 개의 글(일본인은 '원래부터' 질서정연했을까 / 전후 일본의 질서의식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에서도 지적했듯 과거 일본의 사회상은 지금과 달랐던 것이다. 아래 사진처럼 열차 내 짐 싣는 곳에 아예 올라가서 자는 사람도 단속에 걸렸다고 하니.



현재 일본에서 목적지에 따른 승차거부나 난폭운전(물론 일본에서도 다른 운전자보다 택시가 난폭한 건 사실이나 한국 수준과는 비교가 안된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요금도 그만큼 비싼 게 사실이다. 체감적으로 한국보다 2-3배는 비싼 느낌이니.


한국에서 최근 택시를 둘러싸고 '대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중에서 승객들의 택시에 대한 볼멘소리가 택시기사들의 목소리를 압도하고 있는 것도 기본적인 서비스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필자도 한국서 택시를 탈 때 좋은 경험보다 불쾌했던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렇기에 '일본의 변화 사례'를 한국 당국자들이 참고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정책은 단순히 개개인의 의식개선이나 선의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실질적인 이익 / 불이익을 잘 고려해 택시의 서비스 문제와 처우 문제를 동일 선상에서 고민하는 정책을 세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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