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 풍경의 한 단면
일본에 여행오는 사람들이 느끼는 게, 참 질서정연하다는 점이다. 줄을 잘 서고, 전철안은 대체로 쥐죽은 듯 조용하다. 사람들은 각자 들고 있는 책이나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다.
일본에 2년째 살고 있지만 필자 역시도 한국과 참 다르구나 하고 느끼는 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풍경이 '일본인 혹은 일본인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래부터 이렇게 질서정연하고, 공공장소에서 규칙을 잘 지키고 있던 걸까. 오랫동안 가져왔던 의문이었다.
그러다 <아사히신문>의 기사 하나를 발견하고는 '역시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구나'하고 깨닫게 됐다. 아래 기사다.
하라 세츠코(原節子)라는 일본 배우가 2년전 95세로 숨졌다. 숨질 당시 원고지 5매짜리 에세이를 남겼는데, 그 안에 45년 전쟁 이후 일본의 일상사가 담겨있었다. 정확하게는 46년의 기록이라고.
"매우 혼잡. 갓난아기의 울음과 욕, 분노의 소리"에 대한 에세이로 만원 전철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갓난아기가 큰 소리로 울자, 전철 안에서 "진짜 시끄럽네"라는 화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러자 갑자기 누군가가 "엄마입장이 돼봐라. 마음으로 울고 있다고!"라는 목소리로 일순 숙연해졌다고.
또 한 장면에서는, 좌석에 앉은 여자가 아이를 안고 선 엄마에게 "아이 안아드릴게요"하고 손을 뻗었다가, 한 신사가 "안아줄 친절이 있다면 자리를 양보하시지"라고 성내는 일도.
아래 기사에는 좀 더 '적나라한' 내용이 담겨있다.
'전차 좌석의 천을 나이프로 잘라내 신발을 닦는 젊은이, 젊은 여성의 매너에 대해 불만을 지적하는 남성' 등을 적은 뒤, 하라 세츠코 본인이 '일본인에게 정나미를 떼고 싶은(あいそうをつかしたい)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고 한탄하고 있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가 쓴 '문명화 과정'이라는 책이 있다. 여러가지가 적혀 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유럽인들이 고기를 포크와 나이프로 먹게 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단 내용이다.
결국 사회적 관습이나 풍경은 시간이 흐르면 일정 방향으로 변하게 마련인 셈이다. 일본도 마찬가지고, 아마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건 하나를 덤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일본에서 JR이 국철이던 시대에 '아게오 사건(上尾事件)'이라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진다. 1973년의 일이다.
당시 노사 투쟁이 격렬했던 일본에서 철도노조원들이 파업을 벌인다. 출근 시간에도 예외는 없었는데, 그덕에 3월 13일 도쿄 근교 사이타마 현(유명한 베드타운) 아게오역은 아침 7시께부터 엄청난 혼잡을 빚고 있었다. 역에서 기다리던 5000여명이 승차를 못할 정도였다.
어찌어찌 열차는 출발했지만 2역 후 '오미야역'에서 운행을 중지한다는 차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그러자 분노한 승객들이 운전실 유리를 깨고, 폭주하기 시작한다. 역 구내에도 쳐들어가 기물을 부수기 시작했다.
이후 승객들은 들어오는 열차에 돌을 던지고 역무원을 폭행하는 등 한층 과격해졌다. 한 역무원은 오미야역까지 억지로 걸어가게 했다.
2~3시간 정도 지난 뒤 사건은 수습됐지만 광경은 처참했다고 한다. 마침 일본사회가 학생운동으로 들끓던 시점이기도 한지라, 분노가 일거에 번진 것이다. 아래는 관련 영상이다. 이 글 제목에 넣은 사진은 사건후 역내 광경.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회현상에 '원래부터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체로 우리가 아는 지금 현재의 모습은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만들어진 것' 혹은 '이루어진 것'일 가능성이 크다. 개인적으로는 학문, 특히 인문과학, 사회과학은 물론, 언론의 고민도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