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 Jan 25. 2017

전후 일본의 질서의식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학여행 에티켓' 지적한 일본 총리와 장관


지난번 작성한 '일본인은 '원래부터' 질서정연했을까'에 대해 많은 분들이 관심을 표해주셔서, 실제 전후(45년 이후) 일본인의 질서와 매너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아사히신문> 1952년 5월 20일자에는 '여행의 에티켓'이라는 기사가 1면에 실려있다. 옛신문인 관계로 글씨가 희미하나, 몇 구절을 옮겨본다. 이 해에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발효(52년 4월)로 다시금 '독립국'이 된다. 45년부터 일본은 미군정에 의해 사실상 지배받고 있는 신세였다.


"요즘 조금 신경쓰이는 것은, 여행 에티켓이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한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독립국이 됐다고 해서, 배워야할 에티켓마저 원래대로 돌릴 필요는 조금도 없다.


이것은 얼마전 체험한 얘기인데, 승객으로 꽉찬 주오혼센 이등열차 맞은편 자리에 여성과 함께 탄 젊은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가 신발을 벗은 뒤 발을 뻗었는데, 여기까지는 그나마 괜찮았다. 그런데 양말까지 벗어서, 주위에 악취를 풍겼다. 누군가 주의를 주려 했으나 '열차에서 양말을 벗으면 안된다는' 규칙이 없어선지 실제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외국에선 집안을 제외하곤 양말만 신는일이 없다고 한다. 일본인은 서양식 문화에 익숙지 않으니 신발을 벗으려 한다. 거기까진 괜찮으나 열차의 안에서 양말마저 벗고 다리를 뻗는 건 문제다. 이런 걸 그대로 놔두면 차안의 예절은 한층 어지러워지기 십상이다."


'여행의 에티켓' (아사히신문)


무려 신문 1면에 이와 같은 기사가 실려있다. 당시까지 매너가 좋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서양과 비교해가며 매너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1950년대에는 '에티켓'과 관련한 기사가 꽤 눈에 띈다. 1953년 6월 6일 <아사히신문> 3면이다. '에티켓 수학여행판'이라는 제목에, 당시 요시다 시게루 수상의 발언이 실려있다.


"XX교육에 잔소리를 자주하는 요시다 수상이 5일 각료회의에서 "최근 수학여행에 나선 학생들이 열차안에서 종이 부스러기를 그냥 버리거나 하는 등 예의가 바르지 못한데 뭔가 예절 교육을 시킬 방법이 없는가?"하고 교육부장관(文部大臣)에게 물었다. 나라(奈良) 출신의 해당 장관도 "나라공원이 수학여행 학생들때문에 종이 쓰레기 천지로 고생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후 일본의 기틀을 닦은 요시다 시게루 총리


학생들의 예절 문제에 수상과 장관(문부대신)이 문답을 주고 받는 정도로 관심이 컸던 것이다. 이 일화를 소개한 신문은, 옆에 '좋은 예'라면서 '청소 도구도 지참해'라는 지방의 개선책을 소개하고 있다. '나쁜 예'로서는 여관의 물품을 그대로 갖고 가는 모습 등이 나와있다.


어찌보면 당시 상황이 심각함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겠으나, '에티켓 개선' 자체가 전후 독립국 일본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덤 셈이다. 전쟁 이전의 일본에서 벗어나는 게,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과제였다고나 할까. '야만'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50년대 <아사히신문>의 기사 제목을 훑어보면 '음악과 에티켓'(1954년 4월 19일)'야구장 에티켓'(1954년 7월 15일)'미술전시회의 에티켓'(1954년 9월 29일)'국제 교류의 에티켓'(1955년 6월 19일) 등등 다양한 분야의 에티켓이 강조되고 있다.


이 가운데 '투서의 에티켓'(1955년 12월 22일)이란 생소한 제목이 있어 살짝 인용해본다. 여기서의 투서는 우리로 치면 투고에 가까운 의미도 포함된 듯하다.


""투서마담"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근래 투고가 활발해져 주부뿐만 아니라, 남성도, 아이도 신문에, 잡지에, 라디오에 부지런히 투서를 보내고 있다. 언론의 자유라는 입장에서 투서는 대단히 환영할 일이지만, 투서의 에티켓이 있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로 시작되는 내용은, 어떤 여학생이 선생을 모함하려는 목적으로 투서를 해 문제가 된 일을 지적하고 있다. 이 기사 역시 <아사히신문> 1면에 실려있다. 사회 다양한 분야의 에티켓 교육이 범람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1964년 도쿄에선 올림픽이 열린다. 그와 관련해 전국 각지에서 '에티켓 강습회'가 열린다는 기사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아래 기사는 도쿄 올림픽 당시 에티켓과 관련해, 경기장 매너 용품을, 일본 전래의 항상 지녀야할 일곱가지 물품(七つ道具)에 빗댔다.


"조직위원회가 특별히 고심하고 있는게 관람객의 예절. "당신의 매너가 올림픽을 성공시킨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으나,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거기에서 등장한 것이 "에티켓 봉투". 전 경기장 관객 한사람 한사람에게 "쓰레기나 빈 캔을 이 안에..."라며 나눠주는 비닐 봉투에 한 자동차 업체가 2백만개를 기부하겠다고 요청해 성사됐다. 19일 샘플도 도착해 연인원 2백만명으로 예상되는 관객에게 빠짐없이 나눠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봉투가 있어도 버릴 쓰레기통이 없으면 스탠드가 쓰레기장이 돼, 오히려 흉물이 된다. 조직위는 1000개의 쓰레기통을 조달하기로 했으나 2000개 폴리에스틸렌제 쓰레기통을 공짜로 빌려줄 약사가 나타나 안심. 가장 고생한 것은 담배 꽁초 처리문제였지만, 이것도 주머니에 들어가는 재떨이 백만개를 기부받았다.


그런데 흥분이 고조되는 장면에서 맥주 빈캔이나 자리깔개를 던지면 곤란하다. 조직위는 경기장내 매점에 주류를 팔지 않도록 했으나, 엄금이라는 수단은 쓰지 못해, 이점에 대해선 다소 걱정하는 듯하다. 자리깔개는 전부 고정식으로 통일했다. 그런데, 회사명이 들어간 자리깔개의 기부는 "가져가지 않으면 홍보효과가 없다"며 거절하는 곳이 속출. 어쨌든 빈틈없는 에티켓의 일곱가지 도구로 몸을 갖춘 채 올림픽 구경이 될 듯하다. 실제 효과는 어떨까?"



어찌보면 이와 같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지금 보는 일본인들의 예절과 매너가 생겨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오래된 관습'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전쟁 극복이라는 슬로건 아래, 국민적으로 캠페인이 일어나, 어느 순간 정착해있었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에티켓의 정착 과정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 들어 책을 알아보고 있다)


참고로, 지난해 논란이 된 사건 하나를 소개한다. 부모가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예절교육(「しつけ」)'을 이유로 홋카이도 산에 방치해 행방불명된 일이다.



당시 가족 4명은 공원을 방문했다. 거기서 문제의 아이가 작은 돌을 사람이나 차에 던지는 행위를 하자 아빠가 "나쁜 짓을 하면 이렇게 된다"며, 돌아가는 길에 아이를 차에서 내리게 했다. 5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5~10분 기다린 뒤 아이가 있던 장소로 가보니 아이가 산속으로 사라져있었다. 경찰에 신고하고 수색에 나섰으나 아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일본의 예절교육의 도를 지나친 엄격함(?)이 화제가 돼 서양 언론에서도 적지 않게 보도됐다. 다행히도 아이는 인근 자위대 숙소에서 발견돼 무사히 집에 돌아갔다. 아이의 아빠도 울면서 기자회견을 해 잘못했다고 하는 장면이 방송을 탔다.


이같은 모습은 전후 일본 교육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일본인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인식을 강화해주는 사례이기도 하고.


하지만, 결론적으로 '민폐 끼치지 않는 일본인'은 오랜 문화의 산물은 아닌 듯하다는 게 지금까지의 생각이다. 물론, 한국도 일본의 변화과정에서 배울 점은 분명히 배워야 한다는 건 말할 나위도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