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 Jul 10. 2019

아베정권의 괴벨스 세코 히로시게

아베의 신뢰가 두터운 세습정치인이자 홍보전문가

한일관계 악화와 관련해 양국 미디어 여론전도 확산되는 듯 싶다. 양측 언론반응이 천양지차인 게,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는 흥미롭기도 하고 우려스럽기도 하다. 양측 언어를 모두 이해하는 사람은 소수이기에, 소위 '확증편향'은 더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글에선 한국서 역할이 그닥 주목받지 못하는 인물이 있어 조금 구체적으로 다뤄볼까 한다. 한국에 대한 보복조치를 진두지휘하는 경제산업상(経済産業相=장관)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다.



세코 히로시게는 경력상 경제와는 크게 관련 없는 인물이다. 관료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업에서 경제 관련 역할을 맡은 것도 아니다(물론 가족에는 관련 부서 관료 출신이 있다). 


세코는 일본의 KT에 해당하는 NTT 홍보부서에 근무해왔다. 1986년에 입사해, 90년대는 홍보를 중심으로 마지막에는 본사 보도담당과장을 맡았다. 98년 참의원 의원이던 큰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숨지자 세습의 형식으로 와카야마현(和歌山県)에 출마해 당선됐다. 현재 20년넘게 의원을 하고 있고,  오는 21일 4선이 유력시된다(참의원 임기는 6년).




자민당은 집권당이었음에도 90년대까지 제대로 된 홍보전략이 거의 전무했다. 


중대선거구제에서 모든 유권자에게 어필할 필요가 적었고, 자기 지역구에서 일정 정도 표만 나오면 됐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참의원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도쿄같은 중대선거구(6명 선출)에서는 10% 안팎이라도 당선이 가능하다.


이같은 자민당 내 홍보전략을 바꾸게 된 게 2001년 이후 고이즈미 정권 때다. 


고이즈미 정권의 미디어/홍보전략은 '모든 국민에게 호소하되 알기 쉬운 말을 반복하는 식'으로 짜여졌는데, 이를 주로 입안한 건 참모인 이이지마 이사오(飯島勲)라는 사람이다. 이이지마는 의원은 하지 않고 주로 배후역할에 머물러있고, 현 아베정권에서도 자문역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어제 한국 방송에도 나오던데 흥미롭게 봤다).


하지만 이이지마도 체계적인 홍보 경험이 있는 건 아니었다. 여기에 위기관리와 전략성 등 이른바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최초로 활용한 게 바로 40대 참의원의원이었던 세코였다. 


세코의 종합적인 전략이 내각과 자민당 내에서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두 권의 책에 상세하게 적혀 있다. 


하나는 '프로페셔널 홍보전략(プロフェッショナル広報戦略)'(2005년)이고 다른 하나는 '자민당 개조 프로젝트 650일(自民党改造プロジェクト650日)'(2006)이다. 


이 두권은 세코의 전략이 어떻게 자민당 홍보 전략을 바꿨는지 상세하게 적고 있다. 


특히 고이즈미 정권 뿐만이 아니라, 후속 정권이었던 아베 내각때 세코가 왜 중용됐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아쉽게도 번역은 안된듯하니 일본어가 가능하신 분은 읽어봐도 나쁘지 않겠다.(다만 두 권 모두 아베 내각 출범전에 나왔가 때문에 아베와의 신뢰관계 정도가 파악가능하다)



NTT 홍보부에서 일한 세코는 매일 새벽부터 신문/잡지 스크랩을 하고 각 신문의 반응을 체크했다고 한다. 논조 분석도 철저히 해 보고했다고. 


특히 위기 상황에서 정보를 얼마나 공개할지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88년에 있던 리크루트 사건(미공개 주식이 정치가 관료에게 뿌려졌던 스캔들)과 관련해 당시 회장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일이 자신의 원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개인적 경험에 비춰볼 때 한국의 홍보하시는 분들도 이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은데 여튼 세코의 무용담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세코의 기본 전략은 '데이터'에 기반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 고이즈미 정권 관저 예산의 상당 부분을 홍보 전략에 쓰이도록 요청했다. 2003년과 2004년 선거에서 생각보다 결과가 신통치 않자 자민당은 당개혁 프로젝트에 홍보를 담게 되고 그 수장을 세코가 맡게 된다. 뿐만 아니라, 민간 PR 컨설턴트 업체를 고용해서 일반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안을 가져오게 한다. 이 역시 과거엔 없던 일이다.


심지어는 2000년대 들어서까지 자민당이 만드는 보도자료도 없던 상황이었다. 이 역시 개혁에 포함돼 기자들에게 뿌리는 보도자료를 하나하나 깔끔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실제 이같은 분석 전략들은 2005년 총선에서 자민당 압승의 결정적 근거가 된다. 


세코의 증언에 따르면, 2005년 총선때 TV는 전날 밤부터 아침까지 뉴스부터 와이드쇼(토크프로그램으로 뉴스보다 질이 낮다)를 모두 체크할 수 있게끔 업체에 문자화를 지시했다. 선거 포스터도 철저하게 전략에 기반했다. '알기 쉬운 메세지'  '명확한 쟁점화' '비전 제시'가 주요 키워드였다. 그렇게 나온 게 아래 자민당 공약집 표지다.



'우정민영화'라는 명확한 이슈를 제시하고, 그것이 개혁의 핵심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래는 투표당일에 내보낸 신문광고용 포스터다. 


나는, 묻고 싶다.

우정민영화에 찬성인가, 반대인가.
개혁의 전진인가, 후퇴인가.

개혁을 멈추지말라.
자민당


이처럼 세코의 홍보 전략이 세련돼 보이고 실제 성과도 있자, 내각과 자민당에서 당시 중책을 맡던 아베의 눈에 들었던 것 같다. 세코는 아베와 자주 논의했음을 전하고 있다. 


2006년 아베 정권이 성립하자 총리보좌관으로 발탁되고 국내외 미디어 관련한 일도 적극 지원한다. 아베가 내세운 '아름다운 나라(美しい国)' 프로젝트에는 총 책임자를 맡기도 한다. 하지만 1차 아베 정권 이후 별다른 활약이 없었고 무엇보다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 때문에 세코가 나설 일도 많지 않았다. 


참고로 세코는 아베 부류와 같은 '골수 우익'이라기보다 '전략가'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아베 부류와 우익적 의견은 같이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실제 성향이 그런지는 의문이다 (특히 아베가 대놓고 반대한 선택적 부부별성제-현재는 결혼하면 성을 바꿔야 함-에 찬성한 일도 있다).


그리고 다시 2012년, 아베정권이 들어서자 정무직 관방부장관으로 관저에 재입성한다. 당연히 미디어전략을 맡았다. 2016년 6월 22일, 일본 역대 최장수 관방부장관으로 이름을 올린다. 같은 해 8월에는 처음으로 경제산업상(=장관)에 임명돼 입각한다. 일본 산업정책을 관장하는 요직인 만큼, 아베 정권의 보이지 않는 측근 중의 측근 가운데 한 명인 셈이다.


2017년에는 세코의 언론관을 알 수 있는 사건이 하나 벌어진다. 


일본에는 한국의 출입처제도와 비슷한(오히려 더 철저하고 엄격한) '기자 클럽(記者クラブ)'이라는 제도가 있다. 해당 관청 기자 클럽에 속한 기자만이 취재 자료와 접근이 가능한 폐쇄적 시스템이다. 


세코는 2017년 들어 경제산업성 내 '정보관리강화'를 목적으로 청사내 모든 집무실 문을 전자장치로 잠그는 조치를 취한다. 미일정상회담 앞두고 일부 자료가 샜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취한 조치였다. 과거에는 기자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출입했다고 한다.


기자클럽 소속 기자들이 철회를 요구했지만 결국 강행됐고 현재에도 이 방침은 변함 없어 보인다. 기자클럽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높지 않고, 오히려 비판적인 목소리도 많았던 만큼 여론도 자신의 편이라 여기지 않았을지. 결국 경제산업성 기자 클럽 기자들은 세코의 강압 조치에 순응하고 말았다고 봐도 되겠다.


아마도 세코는 올해 참의원 선거 대책도 고민했으리라 본다. 경제산업성 이슈와는 별개로 아베나 관저 인사와도 꾸준히 홍보 전략을 상의했을 가능성도 크다.


올해는 6년만의 본인 선거도 걸려 있는 중요한 해다. 아베 정권 내에서 러시아나 북한 등 외교적 성과로 내세울만한 것은 모두 무산됐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트럼프를 중심으로 불만이 나오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딱히 호재로 삼을 만한 이슈는 없다. 최소한 선거 악영향 나올 이슈를 막든지, 새로운 이슈를 찾아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번 보복조치가 아닐까 생각된다. 


(여기서의 '새로운 이슈'의 의미는 보복조치를 단기간에 준비했다는 게 아니다. 준비는 아마도 꽤 오래전부터 했을 것이다. 다만 그걸 언제 터뜨릴지가 이른바 '홍보전략'과 관계되는 부분이다. 한국에 문제가 있었다면 좀 더 일찍 터뜨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고, 선거 뒤 실제 징용공 판결로 집행이 이뤄질 때 해도 된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이번 보복조치의 선봉에 선 관청이 경제산업성이다. 


세코는 본인이 직접 트위터에 보복조치의 논리를 올리고, 이후부터는 쭉 선거 운동 관련한 트윗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외무성이나 방위성 등 기타 관청과 협조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오는데, 세코 정도의 경험과 지위라면 아마도 그게 더 '전략적으로' 좋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아베 정권 내에서 보도의 자유 순위가 추락하고, 어용보도가 넘쳐나는 데는 '홍보 전문가' 세코의 책임도 결코 적지 않다고 본다. 과거 NTT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베 정권을 보위하고 보도의 자유를 제약하더라도 미디어를 통해 지지율 관리하는 게 자신의 사명이 됐으리라. 이번 보복조치가 순수한 것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