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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Jul 31. 2019

강제징용판결과 북일국교정상화

'한반도 평화' 요인 외에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 이슈

일본이 최근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를 취하는 데 대해, 한반도 문제가 크게 관여됐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대체적인 논조는 한반도 평화 조성 과정서 소외된 아베가 큰 위기감을 느끼고, 존재감 확보를 위해 움직인다는 데 맞춰져 있다.





필자도 이와 같은 생각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실제 판에 끼지 못하고 뒤늦게 이런저런 조치를 취하지만 한국의 협조도 얻지 못하는 상황에 조바심 내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하겠다. 게다가 아베 본인이 주장해온 것과 전개되는 상황이 다른 데 대한 분노 폭발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에 한 가지 측면을 더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바로 '2002년 북일정상화교섭'과 관련된 지점이다.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정권은 전후 첫 북일정상회담에 나선다. 


정상회담 교섭 막판까지 미국은 물론, 관방부장관으로 측근이었던 아베에게도 관련 내용은 전해지지 않았다. 철저히 비밀에 부친 교섭으로 고이즈미와 담당자 등 수명에게만 내용이 전달돼있었다. 미리 알려져서 회담 자체가 깨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사실을 안 아베는 회담 자체에 반대하고 나선다. 90년대 후반 의혹이 제기된 납치문제에 대해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있던 터였다. 아마도 고이즈미 역시 이를 잘 알고 아베가 판을 깰 걸 우려해 숨겼으리라 본다. 


다만 실제 정상회담 전까지 북한이 납치문제를 인정할지 여부는 확실치 않았다. 고이즈미는 납치문제 해결이 국교 정상화 전제조건이라고 강조하고 있었지만 향후 전개는 불투명했다. 북일정상회담은 한마디로 모험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정상회담 석상에서야 김정일은 납치된 일본인이 있었고 5명은 살아있지만 8명은 죽었다고 밝힌다. 납치문제가 있었다는 것에 더해 사망자가 적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고이즈미 일행(여기에는 아베도 포함된다)은 향후 대응을 생각했다. 


이때 아베는 "그냥 정상회담을 깨고 돌아가자"라고 주장한다. 일본의 심상찮은 반응을 감지한 김정일은 이례적으로 사과하고 진상조사,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지시한다. 일본도 그 정도 수준에서 받아들이고 '북일평양선언'에 서명한다.


김정일과 만난 고이즈미, 아베(2002년 9월 17일)


북일평양선언을 보면 굉장히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2번 항목이다(전문은 아래에서 확인 가능하다). 





일본 측은 과거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조선 인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통절한 반성과 마음속으로부터의 사죄의 뜻을 표명했다. 


쌍방은 일본 측이 조선 측에 대하여 국교 정상화 후 쌍방이 적절하다고 간주하는 기간에 걸쳐 무상자금 협력, 저이자 장기차관 제공 및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 등의 경제협력을 실시하며 또한 민간 경제 활동을 지원하는 견지에서 일본 국제협력은행 등에 의한 융자, 신용대부 등이 실시되는 것이 이 선언의 정신에 부합된다는 기본 인식 밑에 국교 정상화 회담에서 경제협력의 구체적인 규모와 내용을 성실히 협의하기로 했다. 


쌍방은 국교 정상화를 실현하는 데 있어 1945년 8월 15일 이전에 발생한 과거사에 기초한 두 나라 및 두 나라 인민의 모든 재산 및 청구권을 서로 포기하는 기본원칙에 따라 국교 정상화 회담에서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협의키로 했다. 


쌍방은 재일조선인들의 지위 문제와 문화재 문제에 대해 국교 정상화 회담에서 성실히 협의하기로 했다.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이지 않은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에서 한국이 받아들인 바람에 지금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조항의 복제판이다. 


국교정상화과정에 있어서 '과거사 관련 재산/청구권 포기 조항'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로 위에는 식민지의 불법성에 기반한 배상금이 아니라 '경제협력/민간경제활동'이라는 자금 지원이 행해지도록 돼있다. 한마디로 식민지 문제는 차치해두고 일단 돈을 좀 많이 달라는 인식이 그대로 반영돼 있었다. 


실제 정상회담을 위한 북일교섭에선, 북한의 납치문제 시인과 조사, 재발방지, 한일회담 수준의 과거사 정리, 경제협력 금액은 차후 산정과 같은 게 주로 논의됐다고 한다. 


북한은 당시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었다. 경제적으로는 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의 파탄난 경제상황이 이어지고 있었고, 군사안보적으로도 2002년 연초 연설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에 대한 공격도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당시 9/11 테러 직후 아프간 침공이 성공했던 터라 북한은 불안에 사로잡혀있었다. 심지어 '테러에 반대한다'는 성명도 내놨을 정도였다. 당연히 어떻게든 활로를 찾아야 했는데 그게 바로 일본이었다. 


고이즈미 입장에서도 북일정상회담을 통해 외교 업적을 남긴다는 점이 나쁘지 않았다. 미국의 강경기조를 인식하면서도 숨기면서 회담을 추진한 배경이었다. 실제 북일회담 발표로 지지율도 상당히 오른다.


결국 북한은 이례적으로 철저히 '을'의 입장이었기에 '한일기본조약' 수준의 내용을 받아 문 것이다. 만약 이 당시 일본이 국교정상화를 해주고, 북한이 청구권 포기 + 경제협력자금을 받아들였으면, 아마 지금 일본은 북한 문제에서 소외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납치문제가 처음 만천하에 공개되고 나서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이 제기됐다. 북한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에 대해서도 그동안의 무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실제 70~80년대 납치문제가 빈발했음에도 일본 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건 사실이기도 했다.


이 같은 여론의 비난을 정치적 자산으로 바꾼 게 바로 고이즈미 정권 내 황태자로 떠오른 아베다. 


트럼프에게 납치 피해자 가족을 소개하는 아베. (출처: https://www.rachi.go.jp/jp/archives/2017/1106menkai.html)


아베는 납치문제에 대해 강경한 대응을 앞장서 주장하며 고이즈미 정권에 대한 비판을 지지로 바꾸는 데 힘쓴다. 아베의 신념과도 맞닿아있는 문제였고 정권 차원에서도 아베는 얼굴마담으로 밀어줬다. 북일정상회담 이전까지 아베는 그다지 주목받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납치문제는 아베를 밀어 올린 간판 정책이 된다.


납치문제가 강조되고 북핵문제가 고조되면서 평양선언 내용은 모두 휴짓조각이 된다. 


북한이 몰릴 대로 몰려서 받아들인 '한일기본조약 수준'의 합의조차 없던 일이 돼버린 셈이다. 일본이 경제지원을 하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납치문제를 빌미로 강경한 제재에 나선다. 일본의 해당 단독 제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당시 북한 제재로 주목을 받은 아베는 한국에도 한번 써보자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아베의 사고방식이 그런 수준이기도 하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2018년. 


한국에서 나온 강제징용 판결은 일본이 북한에 지불해야 할 비용을 크게 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일기본조약 수준'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던 북일정상화 앞날에도 (일본 입장에서) 더욱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번 판결로 한일기본조약에 어떤 하자가 있는지 북한도 인식하게 됐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번 강제징용판결은 '임금미지급' 관련해 나온 내용이 아니다. 강제징용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게 주된 쟁점이었고 그게 인정된 것이다. 개인청구권과 별도로 위자료에 대해서는 한일기본조약에서 논의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소멸하지 않았고 따라서 해당 기업이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같은 상황을 돌이켜보면 아베 정권이 과도하게 반응하는 건 한반도 평화에 끼지 못했다는 이유 외에, 북일교섭에 미칠 영향을 생각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김정은과 조건 없이 만나겠다"라고 호언장담하는 아베에게도 당연히 굉장히 신경 쓰이는 안건이리라. 


아베는 2002년 북일평양선언을 휴짓조각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누구보다 당시 회담의 의미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002년의 호기'를 정치적 이유로 걷어차버린 그에게 이제야 '외상 청구서'가 날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일문제를 떠나 강제징용 판결은 향후 북일교섭에도 영향을 끼칠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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