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개헌이 그리 쉽게 될 수 있을까
참의원이 끝나고 바로 글을 쓸까 하다 아무래도 신문이나 각종 기사에 나오는 분석을 참고로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결과 대략 정당 움직임 중심으로 두 가지 포인트가 중요한 듯싶다. 공명당과 국민민주당을 항목별로 하나씩 알아보겠다.
1. 자민당/공명당 관계의 변화
이번 참의원 선거 직전까지 연립여당(자민당/공명당) 의석 수가 중의원(하원)/참의원 모두 3분의 2를 넘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더 있는데 지난번까지는 자민당 단독으로도 참의원 과반이었다는 점이다(중의원도 마찬가지).
한국도 국회선진화법이 생기기 전에는 과반만 먹으면 어지간한 법률은 통과시킬 수 있었다. 일본은 애초 국회선진화법 같은 게 없기 때문에 과반이 갖는 의미가 크다.
실제로 이전 참의원 선거 열린 2016년부터 최근까지는 자민당이 공명당을 끌고 가는 식으로 법안 통과가 가능했다. 대표적 법안이 카지노(IR) 시설 합법화 법안이었다. 공명당은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연립 여당 유지를 감안해 울며 겨자 먹기로 찬성해 강행 처리된 법안이다. 카지노는 오사카 유치를 희망하는 일본 유신회 관심 법안이기도 해서, 아베 정권이 공명당을 견제하고 유신회를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썼다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더 이상 자민당이 맘대로 법안 처리를 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참의원 단독 과반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위 표의 빨간색 네모칸 안이 정당별 의석수다.
전체 248석 가운데 자민당은 113석으로 과반에서 한참 모자라다. 공명당을 배제하고 무리하게 유신과 함께 하기도 쉽지 않다. 공명당 없이는 중의원에서 3분의 2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3분의 2는 단순히 헌법 개정뿐만 아니라 참의원에서 부결된 법안을 다시 가결시킬 수 있는 숫자이기도 하다.
공명당은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던 시절 모체 '창가학회(創価学会, 한국에는 SGI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있고 불교의 일종이다)'가 심하게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신자들이 헌법 9조 개정에 부정적이다. 동시에 당시 침략전쟁으로 피해를 받던 중국에도 동정적이다. 창가학회/공명당 거물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는 중일 국교정상화를 막후에서 도운 것으로 유명하다.
(솔직히 공명당은 한국과는 별 관계가 없다. 다만 한국에도 SGI 신자가 어느 정도 있는 것으로 알기 때문에 그분들이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진 않을까 싶다)
아사히신문에 재미난 기사가 하나 실렸어서 옮겨본다.
참의원 선거전 후보들에게 '친근감 느끼는 국가'에 대해 물었다.
공명당 대답이 흥미롭다. 당연히도(?) 90%가 미국을 고른 가운데 중국에 대해서도 8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한국은 33%에 그쳤다. 자민당은 미국이 93%, 영국 49%, 독일 37%, 프랑스 33%였다. 참고로 한국에 가장 친밀감을 느끼는 정당은 놀랍게도(?) 공산당이었다. 57%가 한국을 골랐고, 사민당도 40%였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공명당에서는 개헌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몸값이 올라간 만큼 예전보다 아베 정권을 제어할 가능성이 크다. 아베 역시도 공명당의 움직임을 의식하기 때문에 국민민주당을 끌어들여 견제하려고 하고 있다.
2. 국민민주당의 적극 개헌 자세는?
일본에는 현재 두 개의 민주당이 있다.
하나가 입헌민주당이고, 다른 하나가 국민민주당이다. 2017년까지 일본에는 민주당->민진당 계열이 야당 중심으로 직전까지 집권하기도 했었다. 96년 탄생한 민주당이 전신으로 다양한 세력들을 흡수해왔다.
특히 냉전시대 제1 야당이던 사회당 의원(주로 사회당 내 우파)도 다수가 민주당으로 흘러들어왔기 때문에 사실상 현재 사회당 명맥을 (부분적으로) 잇는 정당이라고도 하겠다. 민주당과 사회당의 당대당 통합은 하토야마 유키오가 반대해 개별입당으로 정리, 사회당 내 좌파는 현재 사민당에 남았다.
민주당이 보폭을 넓히고 집권당을 준비하면서 했던 게 젊고 학력 좋은 인재들을 모으는 일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교토대 나온 마츠시타 정경숙 출신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현재 국민민주당 대표 타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郎)도 도쿄대 법대 관료 출신이다.
이들의 특징은 외교/안보 문제에서 자민당 내 비둘기파보다 오른쪽에 있다는 점이다. 헌법개정에 긍정적이고 솔직히 자민당과 차이를 잘 모르겠는 이들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강경론을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전 민주당 중의원 의원 몇 명이 탈당해 자민당으로 가기도 했다.
2017년 구 민주당(당시 민진당)은 현재 도쿄도지사 코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를 끼고 희망의 당을 만들려 했다. 그때 '헌법개정'을 관문(踏み絵)으로 제시해서 찬성하지 않는 사람은 배제하겠다는 식으로 했는데, 여기서 반발해 나온 게 현재 입헌민주당 세력으로 민주당 좌파라 하겠다. 남은 게 마에하라 세이지 등 민주당 내 우파다.
이번 선거가 끝나고 타마키 유이치로는 바로 아베가 제시한 선거 논의에 대해 "난 다시 태어났다. 논의를 추진하겠다"라고 밝혀서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참의원에서 국민민주당(21석)이 자민당에 붙어버리면 실제 불가능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아베가 말하는 9조 개헌(자위대 인정)에 응하겠다는 건 아니고 내용을 검토해가자는 주장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봐야 할 지점이 있다.
하나는 지지자들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당내 의원들 반응이다. 아사히신문 출구조사를 보면 국민민주당에 투표한 사람들 가운데 30%가 개헌에 찬성하고 60% 이상이 반대하고 있다. 적어도 아베 개헌 논의에 응하면 지지자를 배반하는 것이 돼버린다. 이 지점을 어떻게 커버할지가 관건이다.
두 번째 당내 반응이다. 논의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다음과 같은 반응이 더 눈에 띈다.
국민민주당 츠무라 중의원 의원은 타마키 발언을 링크하면서 "오보이기를 빕니다"라고 밝혔고
「国民民主党は私党ではありません。党の綱領と基本政策について草案を作り公式のものとなっています。立憲主義を毀損するいかなる試みも認められません」
같은 당 하라구치 의원도 "국민민주당은 사당이 아닙니다"라며 트위터에 올렸다 대립이 확산되자 스스로 삭제했다.
결국 타마키도 "생각을 바꾼 게 아니고 철저히 정책 논쟁을 해가겠다"라고 다시 수습에 나섰다. 당분간 이어질 논쟁으로 보이지만 쉽게 당내 방침을 정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개헌론에 섣불리 응했다가는 다 같이 죽을 수도 있는 셈이다.
3분의 2가 붕괴됐음에도 아베가 헌법을 강조하고 나선 건 야당을 분열시키고 레임덕 지연을 위한 술책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4선을 할 수 있게 자민당 내 룰을 바꾸는 것도 여론조사에서는 '반대'가 과반을 넘었다.
이 같은 상황을 보면 이번 선거가 아베에게 결코 승리를 의미한다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일단 단기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기회가 되면 추가적으로 레이와 신센구미와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글도 하나 적을까 하는데,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어느 때보다 일본 선거에 관심이 커진 것 같습니다. 부족한 지식이지만 많이들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언제든 지적이나 문의 환영합니다(많은 분들께서 읽어주시는 데 반해 반응이 안 보이는 듯싶은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