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간 데 모르고 달리는 혐한 비즈니스의 현실
한일관계가 악화하면 환호성을 올리는 업계가 있다. 일본 미디어 업계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하에 무궁무진한 소재를 끌어와서 한국을 깐다. 객관성이란 건 애초에 접어두고 있기 때문에 제목이나 내용들은 한결같이 과격하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학식이 높거나 진정한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극우인 경우도 다수다.
TV나 인터넷 매체의 '한국팔이'는 최근 많은 언론에서 다루고 있기에 여기선 잡지 얘기를 간단히 해볼까 한다.
'독서 천국'이라고 일컬어졌던 일본이지만 최근엔 잡지시장이 급전직하 중이다. 더 이상 일본 전철 안에서 책을 보는 사람은 대세가 아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건 한국과 다를 바 없다.
아래 그래프는 일본 잡지 시장이 시간이 흐를수록 크게 축소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책 시장이 이를 커버할 정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기에 순수하게 후퇴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다 보니 원래부터 세분화돼 있던 잡지 시장은 '팔리는 쪽'으로 가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 남성/정치계 잡지는 한국/중국 때리기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어느 정도 책과 친하면서 한국/중국을 아니꼽게 여기는 중년 이상 남성들이 많이 보기 때문이다. 관련 출판 시장은 이들의 구미를 고려해 더 자극적이고 눈길을 끄는 타이틀을 단다.
이 가운데는 애초부터 그랬던 계열이 있고 최근에 적극적으로 참전하는 계열도 있다.
전자는 산케이신문 계열이 내는 '세이론(正論)'과 '월간 하나다(HANADA)' 'WILL' 'SAPIO' 등이 있다. 여기에 '제군!(諸君!)'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2009년 폐간됐다.
'제군!'을 내던 곳은 문예춘추(文藝春秋) 출판사로 여기서는 '월간 문예춘추'와 '주간문춘'을 발행한다. '월간 문예춘추'는 원래 아쿠타가와 상 작품을 싣고 비교적 신사적인 노선을 걸어왔지만 최근 편집장이 바뀐 뒤로 '우경화'가 심해졌다.
이 잡지들의 최신호 목차가 그야말로 '가관'이라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네임드 극우'들의 중복 투고와 신진 극우, 여기에 영합하는 한국인들도 참전하고 있다. 정신건강에 안 좋으니 관심 없는 분들은 안 보셔도 무방하다.
먼저 '세이론'이다.
맨 오른쪽 타이틀은 '병근(병의 뿌리)은 문재인, 반일의 본질을 폭로한다'로 네임드 극우 니시오카 츠토무(西岡力)가 글을 실었다. 왼쪽 가장 위 타이틀은 '반일종족주의 필자를 직격'이라는 제목으로 아마도 이영훈 씨 인터뷰를 실은 모양이다.
그밖에 산케이신문 기자인 아비루 루이라든지 유명 작가 도요타 아리츠네(나름 지한파라고 한다) 등등이 '사대주의 주제에 거만하다' '일본에 대한 증오 결국 본성 드러내' '한국은 이미 적국 일본은 '다시 지지 않는다'' '민폐 행위도 '반일'로 영웅 기분'과 같은 내용으로 투고하고 있다. 민폐 행위 운운 기사는 현 산케이 서울지국장이 썼다.
그 밑에는 '새로운 역사교과서' 운동으로 유명한 극우 원로 니시오 칸지(西尾幹二)가 '트럼프를 고립시키지 말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다. 과거 일본 우익잡지는 미국에 대해 비판적이었는데 일방적으로 아베 세력을 추종하다 보니 최근엔 미국 우호 노선으로 바뀐 듯하다. 한마디로 줏대가 없다.
다음은 '하나다'다. 여기에도 니시오카 츠토무(西岡力)가 '한국 편을 드는 반일 일본인'이라는 제목으로 투고했다. 최근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아베 정권 획책꾼 세코 히로시게가 네임드 극우 사쿠라이 요시코와 인터뷰한 기사도 실렸다. 그밖에 무례 발언의 사토 마사히사도 얼굴을 내놓고 홍보하고 있다. 정권 내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수준 잡지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일이다.
흥미로운 건 한국인도 두 명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반일로 한국은 멸망한다'는 제목으로 투고한 낙성대 연구소 이우연 씨와 수감돼있는 변희재 씨의 '옥중수기 문재인 정치범수용소에서의 고발'이다. 언론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기에 투고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겠다.
월간 '윌'이다.
가운데 'NO한국-절연 선언'이라는 커다란 표제 아래 다양한 기사들이 등장한다. 위에 세이론에 투고했던 아비루 루이는 '아사히는 왜 독재국가를 감싸는 걸까'라는 제목으로 중복 투고를 했고, 한국인 유튜버 WWUK는 '진짜 반일이라면 "한국 죽어버려"랄까, 문재인은'라는 글을 실었다. 또한 '한국의 양식(良識), 이우연 씨 인터뷰'도 실렸다.
이 잡지는 위의 하나다를 만든 사람이 최근까지 편집장을 했다. 기본적으로 자매지라 봐도 무방할 듯싶다. 뭐 대략 이런 내용들로 한국 팔이 장사를 신나게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래는'윌'의 별책이라 하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최근에 극우한테 어필하면서 반쯤 상태가 안 좋아진 월간지 문예춘추 9월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큰 타이틀로는 '수출관리 앞에 놓인 미일동맹 vs 통일조선'이라는 전운이 감도는 제목을 달았다. 한국이 통일돼서 미일과 전쟁한다는 얘긴데 상식 있는 잡지라면 달지 않을 타이틀이다. 사쿠라이 요시코는 여기에도 글('위안부 '속죄'가 한국에 이용됐다')을 실었다. 산케이 서울지국장을 지낸 쿠로다씨는 '일한기본조약을 짓밟는 '역사의 한''이라는 기고를 보냈다.
흥미로운 건 진보지로 알려진 아사히신문 기자 마키노 요시히로(牧野愛博)도 투고자에 이름을 올렸다는 대목이다. 제목은 '문재인 "히키코모리 대통령"의 위험한 전략'이라고 돼 있다. 아마도 내용은 제목만큼 과격하진 않을 텐데, 여하튼 아사히 기자가 보수 논단에 기고하는 것 자체가 흔한 일은 아니다.
필자는 2016년 이후 아사히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그런데 그때부터 한국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으로 기사를 쓰는 기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마키노다. 박근혜 탄핵 국면 때는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멸시를, 2017년엔 문재인 정권의 북한에 대한 구애(?)에 대해 덮어놓고 비판했던 당사자다. 아사히가 변한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실제로 이 때문에 구독을 끊었다는 사람도 여럿 봤다).
다만 마키노 자체는 한국에서만 특파원을 거의 10년 가까이했다. 일종의 지한파라고도 하겠지만 '지한파=한국을 좋아함'은 아님을 알 필요가 있겠다. 필자부터도 나름 지일파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을 덮어놓고 좋아하지 않는다.
작년에 청와대가 오보라고 항의하며 아사히신문 출입정지를 얘기한 적이 있는데 당시 관련 기사를 쓴 것도 마키노다.
이처럼 한일관계가 나빠지면서 '물들어올 때 노 젓자'는 매체들이 TV, 신문, 책, 인터넷을 할 것 없이 범람하고 있다. 절반 이상은 뉴스라고 할 가치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으로 접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만족시켜주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일본 방송에서는 아베 정권에 대한 문제점보다 한국 조국 문제라든지, 여론 동향이 국내 뉴스보다 먼저 나온다. 한마디로 갈 데까지 간 셈이다.
개인적으로 일본 지상파에서 평일/주말 오전 내내 내보내는 뉴스 형식 쓰레기 프로 '와이드쇼'에 관한 논문을 하나 써서 내놓은 게 있는데, 결과에 따라 정리해서 올려볼 생각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