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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Oct 15. 2019

예상보다 컸던 일본 태풍 피해, 이유는?

온통 '바람'에만 신경 쏠렸던 일본 열도와 미디어

지난 주말 일본 열도를 지나갔던 태풍 피해가 예상보다 큰 듯싶다. 


대략 50명 안팎이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고 한다. 몇 년째 일본에 있으면서 느끼는 건데 지진 외의 재난, 특히 수해와 그에 따른 피해에는 유독 취약한 것 같다. 거의 한 해도 빠지지 않고 참사가 이어지고 있고 올해도 어김없었다. 산사태와 수몰, 교통 두절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벌어진다.


특히 이번 태풍 피해는 솔직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상치 못한 곳들에서 발생했다. 곳곳에서 제방이 무너졌고 마을이 물에 잠겼다. 몇몇 곳은 쓰나미를 연상케 했다. 실제 2011년 쓰나미 피해가 컸던 곳에서도 적잖은 피해가 발생했다. 아래는 피해 장면들이다.


무너져버린 제방 (출처: https://www3.nhk.or.jp/news/html/20191014/k10012131271000.html)


물에 잠긴 신칸센. 최악의 경우 폐차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다. (출처: https://www.fukuishimbun.co.jp/articles/gallery/953010?ph=1)


후쿠시마에서는 제염을 위해 쌓아 둔 검은 비닐봉지가 물에 흘러내려갔다는 트위터 투고도 있었다.

왜 이렇게 피해가 커졌을까.


우선은 '기상 이변'의 영향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정도로 자연에 이상이 발생했고 이번에도 그러했다는 얘기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번 태풍은 발생 이후 경로나 규모 예측까지 특별히 문제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계속 경계하라는 방송도 반복됐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을까.


개인적으로는 지난 9월 지바현을 강타했던 태풍 15호 학습효과와 여기에 너무도 주의를 써버린 미디어의 선정주의가 겹쳐졌다고 생각한다. 9월 초 상륙했던 태풍 15호는 지바현에 수십만 가구를 정전시키고 교통을 두절시켰다. 


원인은 '강한 바람'이었다. 당시 바람에 대해서는 좀처럼 경계하는 움직임이 없었고 무방비로 그저 지나가려니 하다가 지바현이 쑥대밭이 됐다. 아래가 당시 지바현 모습이다. 

실제 필자도 집에서 느낀 바람의 강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태풍 상륙 자체도 새벽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다 보니 피해가 더 커졌다. 꼼꼼히 보도를 챙겼음에도 이 정도로 바람이 강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었다. 아마 다른 지역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지바 현지 피해 보도도 굉장히 늦어졌다.


그 결과 이번 태풍 19호 관련해서도 온통 이목이 쏠린 것은 '바람'이었다. 위에서 나온 사진처럼 지바현에서는 가옥 위에 모두 파란 천(블루시트)를 깔고 그 위에 무거운 것들을 잔뜩 올려놨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였다. 곳곳에서 전신주를 점검하고 정전을 막기 위한 조치들도 나왔다.


19호 태풍이 오기 전 일본 사람들이 뭐에 대비했는지 보여주는 영상과 기사들을 몇 가지 소개한다.


구독자수 260만 명의 아래 유튜버는 태풍 상륙전에 '이러저러한 걸 대비합시다'라는 영상을 올렸다. 

중심이 되는 건 역시나 "정전에 대비하자"는 얘기였다. 


치바현 정전은 '폭풍' 때문에 전신주가 쓰러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유튜버도 피난소 확인 외에 '건전지를 미리 사두자' '화장실 물을 준비하자' '유리창 파손 대책을 세우자'라고 말하며 후반부에는 직접 창문에 박스 붙이는 걸 보여준다. 폭우에 대한 얘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아래는 태풍이 오기 전 각지의 정전 리스크를 적어 놓은 지도다. 이 역시 비보다 바람을 상정한 대책이었다.


태풍 19호가 오기 전에는 줄곧 아래와 같은 보도만 나왔다. 최대 순간풍속이 엄청나게 빠르니 그에 대해 대책을 세우고 밖에 나가지 말란 얘기다. 지금 상황에서 보자면 바람의 영향만 지나치게 강조한 보도였다.


한국보다 미디어 영향을 쉽게, 그리고 급속하게 받는다고 느끼는 일본 사회이기에 이 같은 공포도 금세 전염됐다. 슈퍼에서 물건이 동난 것도 정전에 대비해서였는지, 대체로 전기 없이 먹을 수 있는 빵이라든지 컵라면 같은 종류가 비어있었다. 아래는 슈퍼에서 물품이 동난 모습.



다른 보도들도 대동소이하다. 


대체로 강풍 대책을 마련하라는 한편, 큰 비도 올 수 있다는 정도로 기사가 적혀있다. 


치바현이 크게 데이고 나서는 대부분의 보도가 '바람의 위험'을 주로 강조하고 있다. 실제 태풍 상륙 전날 길거리를 돌아봐도 대부분 가게가 유리창이 깨지지 않도록 뭔가 조치를 취하고 있었지, 비에 대한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보면 오히려 한국 언론 보도가 바람과 비로 인한 예상 피해를 비교적 동일하게 전하고 있는 느낌이다.




일본 언론은 지바현 피해만 생각한 나머지 오로지 바람에 집중하고 공포스러운 보도만 쏟아냈다. 하지만 정작 바람은 그다지 세지 않았다. 체감으로는 지난 15호 때보다 훨씬 약했던 것 같다. 오히려 넋 놓고 있던 장대비가 쏟아졌고 일본 각지는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언론에 대한 문제점이 다른 이유로 제기되고 있는 듯싶지만, 일본 언론은 이미 그런 수준을 지난 느낌이다. 당연히 지난번이나 이번 태풍 보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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