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잇는 폐점과 군대식 기업문화의 말로
최근엔 일본을 방문하는 여행객 자체가 줄어들어 의미가 없겠지만, 한때 '이키나리 스테이크(いきなりステーキ)'는 한국 관광객의 필수코스였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질좋은 스테이크를 썰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요즘 대세인 '가성비'에 딱 맞는 체인점이라고 하겠다.
아래는 네이버 블로그 검색 결과다.
적지 않은 분들이 이키나리 스테이크의 장점을 거론하고 있다. 이키나리 스테이크는 일본 내에서도 인기가 크게 늘어나 곳곳에 점포수가 생겼다. 주요 도심은 물론 역세권에는 대부분 들어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가성비(コスパ)로 입소문을 탔다. 2013년 첫 점포가 문을 연 뒤 몇년 새 크게 성장해갔다.
이키나리 스테이크의 이름 자체가 '갑자기(いきなり)'인 만큼, 스테이크가 문득 생각날 때 방문할 수 있다는 걸 컨셉으로 삼았다. 자리는 서서 먹거나 아주 불편한 의자가 놓여있기 때문에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과는 차이가 크다. 오로지 '스테이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놓은 게 특징이다. '일본적인 실용성'이라고도 하겠다.
다만 불편한 자리와는 달리 '뭔가 전문적으로 보이는 직원'이 흰 옷을 입고 직접 고기를 썰어준다. 눈 앞에서 계량기에 무게도 재준다. 당연히 맛도 싸구려(?)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좋다. 고기는 대부분이 미국산이지만.
아래는 이키나리 스테이크 홈페이지에 실린 '오더 컷' 순서를 정리한 사진이다. 손님이 고기를 고르고 양을 정해서 주문하면 투명한 주방에서 바로 조리해준다.
아래는 이키나리 스테이크 메뉴다. 그램수에 따라 가격이 다른 시스템이지만 아주 싼 건 1000엔대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여기에 밥을 더하거나 다른 사이드 메뉴를 추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키나리 스테이크는 야심차게 스테이크 본고장 미국에도 진출한다. 아래는 미국 뉴욕에 점포를 열 당시 사진이다. 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했던 4번 타자 마츠이 히데키가 점포 홍보에 참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트위터와 같은 SNS에서 하나둘 이상조짐을 전하는 소식이 눈에 띄었다. 아래는 미국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지난해 2월 기사다. 미국에서 7점포가 폐점했다는 내용이다. 이는 미국내 전체 점포 60%에 달한다고.
처음에는 미국문화와 안 맞아서 그러겠거니 생각했다. 미국처럼 여유있게 스테이크를 써는 문화와 일본처럼 정말 맛만 괜찮으면 모든 게 OK라는 문화와는 다를 테니까. 물론 야심차게 한 미국진출은 결국 실패로 결론났다고 봐도 될 듯 싶었다.
그러다 동네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지역 내 이키나리 스테이크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실렸다. 지날 때마다 손님이 꽤 있는 곳이어서 다소 놀라웠다. 결국 지난 13일에 이름 그대로 '갑작스레' 문을 닫고 말았다.
이키나리 스테이크에 관해 떠돌던 다른 내용 하나는 기업 문화에 관한 트위터 짤방들이었다. 직접 보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다. 조례를 어떤 식으로 하는지 보여주는 방송 일부분을 캡처한 사진이다.
이런 식으로 조례때마다 사장이 주요 사원과 임원을 일렬로 세우고 번호를 붙이게 한다고 한다. 게다가 번호 붙이는 게 늦으면 지정을 해서 다시 시킨다고.
방송에서는 '재밌다'는 식으로 전했는데, 아마도 실제 분위기는 더욱더 살벌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군대문화가 만연해있던 것이다. 아래 유튜브에서 일부를 볼 수 있다. SNS에서는 전형적인 '블랙기업'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지난해 갑작스레 실적이 악화되자 그 원인을 두고 사장의 지나친 권위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사장인 이치노세 쿠니오(一瀬邦夫)는 호텔 요리사 출신으로 이전엔 '페퍼런치'라는 유사한 스테이크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사장의 지나친 자기 확신이 성공 가도를 멈췄다는 얘기다.
지난해에는 매출이 전년보다 35%나 떨어지는 달이 나왔는데, 이건 17개월 연속 수익이 후퇴한 결과기도 했다. 점포수는 500 곳을 넘었고 심지어 같은 이키나리 스테이크끼리 경쟁하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올해 40~50 점포를 줄이기로 결정한다. 지난해 실적은 적자로 돌아섰다.
그제자 아사히신문에는 사장의 코멘트가 하나 실린다. 나름대로 의미심장한 듯하여 옮겨본다.
출점기준에 대해 이치노세씨는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한 뒤에 "기세로 연간 200점포를 내지 않는 게 나았다. "안됩니다, 그렇게 점포를 내면요, 사장님"하고 다그쳐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상황은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되짚었다.
出店基準について、一瀬氏は「間違いだった」と認めた上で、「勢いで年間200店も出さなければよかった。『だめだよ、そんなに出しちゃあ、社長』といさめてくれる人がいたら、こんなにおかしいことにはなっていないね」と苦笑まじりに振り返る。
위와 같은 기업 문화속에서는 부하 직원 누구도 대놓고 사장에게 반기를 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성공에 취해 자기 확신이 강한 사장에게 직언을 했다간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기업 경영에서 '자기 확신'과 '과욕'은 종이 한장 차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나 할까.
지난해 12월에는 점포마다 '사장의 부탁'이 내걸렸다. 아래 사진인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사장으로부터의 부탁입니다. 종업원 모두가 웃는 얼굴로 맞이하겠습니다'라는 큰 글자가 있고,
'이키나리 스테이크는 일본 처음으로 저렴하면서도 고급인 소고기 스테이크를 가볍게 드실 수 있는 식문화를 발명해 번창해왔습니다. 지금은 급속한 점포확대로 언제 어디서나 이키나리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나 손님의 방문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가까이에 있는 점포를 닫게 됩니다. 종업원 일동은 밝고 힘차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게도 모든 분들의 희망에 응답해 거의 전 점포에서 앉을 수 있게 했습니다. 메뉴도 150, 200그램부터 주문할 수 있고 오더 컷도 가능합니다. 창업자 이치노세 쿠니오의 부탁입니다. 모든 분들의 방문을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라고 쓰여있다. 분발하겠다는 내용이지만 사장이 직접 쓴 글씨로 내걸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물론퍼포먼스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번달에는 뜬금없이 다른 내용의 종이가 붙었다. 여기에는 손님을 탓하는 내용이 들어있어서 다른 의미로 화제가 됐다.
'이치노세(사장)이 여러분께
지난해 12월 결의를 담은 부탁을 가게앞에 게시한 데 대해 TV나 SNS에서 다뤄져 그 큰 반향에 놀랐습니다. 제 생각과는 다른 비판적인 의견도 다수 받았습니다. 그런데 힘내라는 격려의 말씀도 많이 받아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이키나리 스테이크'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와일드 스테이크입니다만, 때때로 질기다는 질책을 받았습니다. 처음 오는 손님이 질긴 스테이크를 드실 때, 두번 다시 안 간다고 하는 듯한 악평이 가게를 의미없게 합니다.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가장 인기 있는 스테이크를 부드럽고 맛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노력해가겠습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밑줄 친 부분에 대해 '전혀 반성하고 있지 않다' '손님 탓을 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오히려 반성을 의미없게 하고 말았다.
이키나리 스테이크는 지방점포를 위주로 샐러드바를 강화하고 편한 자리도 늘려간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일본에 적지 않은 스테이크+샐러드바를 내세우는 다른 체인점포와의 차별점은 사라지게 된다. 결국 정체성을 포기하게 되는 셈이다.
사장이자 오너가 마인드를 완전히 바꾸지 않는 한, 이키나리 스테이크의 부활은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