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은 답하지 않았다'
블로그에 두어달 전 미나마타(미나마타에서 후쿠시마를 보다)에 대해 쓴 적이 있다. 현지에서 본 피해자들에 대한 얘기였다. 연구하는 주제와도 관련이 있는 터라 이런저런 책을 읽게 됐다. 대체로 피해자들 입장에서 서술한 내용들이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기업과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정부. 피해자들은 싸울 수밖에 없었고 문제가 해결되는 데는 몇 십년이 걸렸다. 미나마타병 환자들과 일본 정부가 그나마 화해할 수 있던 건 1995년. 병이 발견된 게 57년이니 거의 40년이 되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연구라는 지루한 과정을 계속하게 해주는 건 간혹 우연한 발견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와 미나마타병 환자의 관계를 알아가는 속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비교적 가벼운 미나마타병 환자들이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은 끊이지 않았다. 미나마타병으로 인정하고 정부가 여태까지 방관해온 책임을 지라는 요구였다. 1980년대 몇몇 법원에서는 정부에게 화해를 권고한다. 일본 정부는 응하지 않았다. 3심까지 간다는 자세를 굽히지 않고 화해 권고를 무시한다.
1990년 환경청 내에서 소송을 담당한 건 규슈 출신 야마노우치 토요노리(山内豊徳) 기획조정국장. 도쿄대 법대를 나온 전형적 엘리트였다. 그런 그가 같은 해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환경청 장관과 주요 인사들이 화해권고 이후 처음으로 미나마타 현지를 찾은 때였다.
야마노우치의 자살은 미나마타 소송 과정을 적은 책에 짧게 언급돼 있었다. 신문기사로 치자면 단신 취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죽음을 미화하는 건 아니나 예나 지금이나 기계적으로 일하는 '일본형 관료'에게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야마노우치의 삶에 관심을 가진 계기다.
일본 아마존서점을 검색해서 나온 건 딱 한 권.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가 쓴 '구름은 답하지 않았다(雲は答えなかった)'. 처음에는 '그 고레에다 히로카즈?'하고 의문을 가졌다. 고레에다가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인지 긴가민가했다. 검색 결과는 그가 직접 썼음을 알려줬다. 바로 주문.
책은 꽤 인기가 있었는지 몇 차례 판형을 바꿔 출판됐다. 내가 산 건 PHP문고에서 나온 2014년 문고판이다.
최초 출판은 1992년 '그러나... 복지가 끊기는 시대에(しかし…福祉切り捨ての時代に)'라는 이름이었다. 후지TV에서 방영된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기초로 해 논픽션 형식으로 고쳐 썼다고 한다. 당시 고레에다는 독립 프로듀서였다. 2001년에는 '관료는 왜 죽음을 선택한 걸까(官僚はなぜ死を選んだのか)'란 이름으로 재출간됐다. 2014년 문고판은 세번째 버전이다.
2014년판 첫페이지에서 고레에다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영화든 소설이든, 작가의 전부가 처녀작에 담겨져 있다는 건 자주 듣는 얘기다. 그 지적이 타당하다면 나에게 있어 그건 영화 데뷔작이 아니라, 이 '구름은 답하지 않았다'가 될 것이다
책은 야마노우치의 삶 전반을 다룬다.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전쟁에서 아버지는 전사했고, 어머니는 진작에 집을 나갔다. 야마노우치를 지탱해준 건 문학이었다. 시와 소설을 쓰고 좋아해 전업작가가 될 생각도 있었다. 고레에다는 그 문학작품을 곳곳에 인용해 삶을 재구성한다.
고레에다는 야마노우치가 동년배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 역시 도쿄대 출신)에게 열등감을 가진 일 등을 보여주며 문학적 욕심이 강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대학생 시절 등단에 실패한 야마노우치는 작가 대신 우수한 성적으로 엘리트 관료가 된다.
인생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문학적 관심은 복지와 장애인 같은 약자의 삶 개선으로 옮겨간다. 마침 고도성장으로 인한 폐해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야마노우치는 그걸 메우고 개선하는 걸 과제로 여겼다.
1990년 야마노우치가 마지막으로 배속된 환경청은 공해 방지를 위해 만들어졌을 터였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미나마타병 환자들의 피해를 앞장서 인정하지 않는 일이었다. 삶의 아이러니였다. 그 아이러니를 극복하지 못한 채 야마노우치는 생전 처음으로 무단 결근하고 집을 나간 뒤 돌아와 목숨을 끊는다.
고레에다는 2001년에 다시 묻는다.
야마노우치 토요노리라는 인간은 가해자였을까, 피해자였을까. 복지라는 이상주의가 경제우선의 현실주의에 압도돼가는 그 하강선의 시대를 야마노우치는 필사적으로 살아내려고 했다. 고급관료로서 하강에 서있었다는 책임에 관해선 역시나 가해자쪽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시대의 피해자였다고도 할 수 있을 듯싶다.
가해/피해의 문제에 누가 그리 쉽게 대답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이 책은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 같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를 전부 보진 못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의 그의 관심, 즉 가족, 복지, 그리고 결핍이 모두 담겨있다. 고레에다 스스로 밝히듯 이 책은 그의 처녀작이자 원점이다. 팬인 분들이 있다면 한 번쯤은 읽을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