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이도 준을 읽다
문득 이케이도 준(池井戸潤)이란 소설가를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자 적어볼까 한다.
이케이도 준을 단적으로 말하면 '경제미스테리 작가'다. 경제사건을 중심으로 주인공이 극복해가는 과정이 주를 이룬다. 이케이도 본인 역시 경제경영학으로 유명한 게이오기주쿠대학(慶應義塾大学) 출신으로, 몇년간 대형은행에서 일했다고 한다.
원래부터 일본 독자층에게 상당한 인지도를 갖고 있었지만,
최근 더욱 유명해진 계기는 일본 TBS 방송국 드라마 '한자와나오키(半沢直樹)'가 대성공을 거두면서다.
(2013년 7월 7일 - 2013년 9월 22일 방송)
한자와 나오키는 대형 은행원 한자와 나오키가 기업의 부실 대출과 은행 내부의 권력 암투(연줄에 따른) 등을 거치며 성장하는 드라마다. 사랑 얘기는 일절 나오지 않으며 시종 건조하게 한자와 나오키의 투쟁사(?)를 그려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정도를 걷는 은행원의 모습을 사카이 마사토(堺雅人)가 열연하면서 은행원의 이미지가 '정의의 사도'처럼 비치기도 했다.'배로 되갚아 주마(倍返しだ)'와 같은 대사는 2013년 일본 '올해의 유행어'에 선정되기도 했다.
마지막편 평균 시청률은 관동(도쿄) 42.2%, 관서(오사카, 교토) 45.5%를 기록했다. 관서에서는 역대 최고 시청률이다(관동은 2위). 한국에서도 최근 30% 시청률 넘기가 힘든 걸 감안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이 한자와 나오키의 원작이 이케이도 준의 '버블시기 입행한 우리들(オレたちバブル入行組)'시리즈다.
버블 시기(쇼와 말기, 1980년대 후반) 은행에 들어간 이들이 겪는 얘기를 경제 사건 중심으로 다뤘다.
마침 일본의 한 대형은행에서 야쿠자가 얽힌 대출 부정 사건이 발각되면서 한 번 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래는 책 주소다(일본 아마존).
한자와 나오키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오늘 적고자 하는 건 최근 새로이 드라마가 시작된 '시타마치 로켓(下町ロケット)'에 관해서다.
시타마치는 일본의 서민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다.
제목으로는 얼핏 의미가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주인공은 원래 연구소에서 로켓개발을 하던 천생 연구원.
로켓 발사 실패가 트라우마로 남는다.
애초 가업이던 제조공장을 이을 생각이 없다 부친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내키지 않지만 사장이 된다.
특허에 바탕을 둔 기계 엔진을 제조하는 중소기업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기업인과 달리 주인공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회사를 위한 기술 개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못 이룬 로켓 발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영마인드가 다소 부족한 그에게 대기업 거래처의 협박, 은행 대출 중단 등 우여곡절이 이어진다. 내부에서도 "직원을 생각한다면 연구개발을 줄이고 직원에 투자해야 한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그러다 대기업이 주인공 기업의 로켓 발사 특허기술을 아예 사려고 나선다.
하지만 주인공은 절대 기술을 넘길 수 없다고 버티며 교섭에 성공해, 대기업과 함께 로켓 개발에 나선다.
마지막엔 주인공이 타네가시마(일본의 로켓발사기지)에서 독자 로켓 발사에 성공한다는 해피 엔딩.
(드라마 소개는 아래 유튜브 주소 첨부. 아베 히로시가 주인공 역을 맡았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LLEyNPm6EwA
개인적으로는 '시타마치 로켓'에서 '일본 기업인, 직장인'들의 로망을 읽었다.
중소기업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며 기술을 개발한다는 일종의 현대판 장인정신.
이같은 소설이 백만부 넘게 팔리고, 대중소설의 대표적 상인 '나오키상'을 수상하는 걸 보면 일본 문화적 기반의 일면을 엿볼 수 있지 않을지. 일본의 과학분야 노벨상 연속 수상이 수긍가는 소설이랄까.
덧: 아쉽게도 저작권 문제로 한국에는 이케이도 준의 소설이 거의 번역되지 않았다. 애초 저작권을 사들인 출판사가 망했다는 얘기가 있던데, 그게 정리되서 다른 데서 판권을 사지 않고는 출판이 쉽지 않다고 한다.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 못지 않은 상업적, 문화적 힘이 있는 작가라 생각하기에 경제 미스테리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장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