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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Oct 02. 2016

혐한(嫌韓) 식당 논란을 보며

일본내 혐한 풍조를 돌이켜보며

오늘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 오사카의 한 스시집이 논란이 되고 있는 걸 알게 됐다. 오사카 이치바즈시(시장스시, 市場寿司)에서 점원(이타마에, 板前)이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을 노려 초밥에 와사비를 왕창 넣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아파(APA) 호텔의 극우성향에 대해 글(日, 호텔에도 극우가 있다?)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이젠 혐한 식당까지 등장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글들을 좀 검색해보니 한, 두사람이 겪은 게 아니란 사실도 알게 됐다. 몇개 링크해본다.


정리해보면

- 오사카 번화가인 난바에 위치한 해당 음식점에서 특정 점원(1~2명?)이 일부러 초밥에 와사비를 잔뜩 넣었다.

- 일본어 못하는 걸 악용해서 항의도 못 본 척 넘어가고, 오히려 조롱하는 모습을 보였다.

- 한국인을 조롱하는 '총'이라는 말을 썼다.(한국에서라면 '쪽바리'라든가 '왜놈'같은 뉘앙스)

- 심지어 대놓고 욕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기까지 했다.


등등. 명백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실제 와사비가 잔뜩 들어간 초밥 사진도 적지않게 올라왔다. 일본에 사는 필자도 종종 초밥을 먹으러가나 사진과 같은 양의 와사비가 들어간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결국 실수 아니면 의도라는 얘기. 하지만 정황으로보면 의도(그것도 악의)가 다분해보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외국인에게 반감을 가진 점원이 황당한 일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면 가게가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생각됐다. 실제 일본에서 평가는 어떤지 궁금해 해당 업체가 등록된 최대 맛집(구르메) 사이트 타베로그를 참조해봤다.


시장스시 난바점 평점. 출처:타베로그


평점은 3.5로, 5점만점에 3.5면 높지 않다고 얘기할지도 모르겠으나, 1주일에 4~5번은 사용하는 유저로서 말하면, 굉장히 높은 축에 속한다. 4를 넘어가는 곳은 전국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고 3.5 이상은 한 동네에서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다.(지금 필자가 살고 있는 동네에도 3.5를 찍는 곳은 거의 없다)


현지인들의 리뷰는 어떨까.


대체로 좋은 평가가 많았다. '서민의 편', '큰 재료(네타라고 한다)를 가성비 좋게 제공한다', '난바에서 본격적으로 먹을 수 있는 곳'. 다만 시기적으로 작년까지 리뷰에 좋은 평가가 집중돼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리뷰가 하나 있었다.


올해 1월에 올라온 글로, 별점 2.5로 혹평을 한 사람이 "3년만에 기억나서 오랜만에 찾아왔다. 음식이 하나하나 나오는데 마치 그릇을 던지듯이 내놨다. 주문하려고 말해도 영 반응이 시원찮고... 원래 이랬던가? 옆에 아내도 있고 해서 40분만에 돌아갔다. 실망한채로. 뭐 싸니깐 어쩔수없지만..."이렇게 적혀있었다.


글 쓴 사람은 오사카 인근 나라에 사는 50대 남성이었다. 해당 내용은 아래에 링크한다.


잘은 모르겠으나 일본인에게도 뭔가 태도가 급격히 나빠진 듯한 인상도 받는다.


여튼, 상대가 일본인이든 외국인이든 장사는 서로 존중하면서 해야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손님이든, 가게든 서로 어느 선의 예의는 지켜야 하는 것이다.


상도의를 지키는 일본에서는 비교적 드문 일이나, 외국인 대상으로는 저런 차별적 태도도 없다고 할 수 없다. 공항 입국관리대에서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태도와 일본어를 하는 외국인에 대한 태도의 차이를 직접 목격한 일도 있다.


(반말로 지시하다가, 일본어 되는 사람이 오자 나름 깎듯이 대하는... 아마 한국도 더하면 더하지 다르지 않을 듯 싶긴 하지만)



혐한은 이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단어가 됐다. 말그래도 한국과 관련된 것을 혐오한다는 의미다.


일본만화 혐한류가 일본에서 상당히 많이 팔렸고, 최근에는 '헤이트 스피치(증오 선동)'으로 유명한 '재특회(재일조선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들의 모임)'도 널리 알려져있다.


한국말로 술집에서 얘기했다는 이유로 술취한 아저씨에게 모욕적 언사를 겪었다는 유학생 얘기도 직접 들었다. 한바탕 욕 먹고 있던 그들에게 가까이 있던 다른 일본인이 위로해줬다고 하던데, 실제 (어느정도의) 일상에서의 혐한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읽은 책 가운데서 재미난(?) 대목이 있어 간단히 인용해본다. 책 이름은 '증오의 광고(憎悪の広告)'다. 90년대 이후 우익성향 주간지의 신문 광고를 하나하나 분석해 극우의 사상적 흐름을 논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초기에는 그나마 합리적이던 주간지의 주장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극단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증오 분위기에 편승해, 한국, 중국, 북한을 무분별하게 깎아내리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같은 주간지의 광고는 신문뿐만 아니라, 지하철, 서점 등에서도 접할 수 있다. 극우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과 관계없이, 이들의 주장이 한층 증폭돼 각인되는 셈이다.


재미났던 대목은 '혐한'이란 용어의 특징이다.


왜 '반한'도 아니고 '혐한'일까.


저자들은 기본적으로 혐한이라는 용어에 "한국은 원래 격이 한층 낮은 나라라는 의식이 있다"고 지적한다. 우파론자들은, 격이 낮은 한국이 '기어오르는 데' 참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반한'이 아니라 기껏해야 '혐한'의식으로 상대해주지"라는 생각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책의 해당 부분과 구성


하지만, 북한과 중국은 실제 일본에 있어 '위협'이기 때문에 혐오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이들은 꼬집는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중국은 센가쿠 열도 갈등 등... 자칫 잘못 건드리면 일본에 실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존재들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에서 한국과 같은 반북 데모가 눈에 띄지 않는 건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 것이, 일본 헤이트스피치 시위대는 반중, 반북을 외치지 않는다. 혐한 내지는 혐자이니치(재일동포)다. 결국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는 만만한 상대를 골라 적극적으로 괴롭히는 모습에 다름 아니다.



혐한 행동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 둘째는 정치적인 이유다. 물론 둘은 상당히 섞여있다. 앞서의 주간지 같은 경우는 경제적인 이유(주목을 끌고 팔기 위해)에 정치적 선정성이 가미됐다고 볼 수 있겠다. 정치적인 이유는 혐한 어필로 보수 지지층을 끌어모으겠다는 심산이다. 올해 7월 도쿄 참의원 선거 포스터를 하나 보자.


중한으로부터 일본을 지킨다! 한국에서 입국금지된 스즈키 노부유키

전형적인 '혐한팔이' 포스터다.


해당 후보자는 유신정당신풍이라는 곳의 후보로 출마한 스즈키 노부유키라는 사람이다. 문구를 하나하나 보자면 "중한(中韓)으로부터 일본을 지킨다." "핵무장실현, 범죄외국인추방, 한일국교단절, 헤이트스피치법 반대", "한국에서 입국금지된 스즈키 노부유키" 등 당당하게 주장을 펴고 있다.


결과는 4만2858표(0.4%)를 받아 당당히 낙선했다. 그럼에도 도쿄도에 최소한 해당 표만큼 동조하는 사람은 있는 셈이다. 오사카에도 비슷한 비율로 있을 테고.


(개방적일 것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오사카 등 관서 지역은 뿌리깊은 외부자 차별이 있다. 부락민(근대이전 천민들이 지금도 차별받고 있음) 문제와 자이니치 문제는 오히려 관서가 훨씬 뿌리깊다. 이것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올려보겠다)


다른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재특회 사쿠라이 마코토는 도쿄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더 높은 투표율을 받았다. 11만4171표나 득표했으니 또한 그만큼의 재특회 지지자가 있다고도 하겠다. (미국처럼 대선에 나올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라 할 수도...)


여전히 일본 사회 전체로 봤을 때는 소수라 하나, 혐오세력이 일정 세력과 발언권을 유지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일본에서 비관적인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다. 올해초 헤이트스피치를 규제하는 법이 이례적으로 무척 간단히 일본 국회를 통과했다. 도쿄 올림픽이 목전이라 그대로 방치해뒀다가는 안되겠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했으리라 본다. (한국에서도 1988년 올림픽이 없었다면 민주화가 쉽지 않았을 것이란 가정이 있는 것과 유사하달까)


처벌 조항은 없지만 민족 등을 이유로 해서 혐오발언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실제 카와사키에서 열릴 뻔했던 헤이트스피치 데모를 법원이 해당 법을 이유로 막은 일도 있다.


다만, 최근 한국의 모습을 보면 우리도 반성해야 할 점은 반성해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조선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타 발언이나 외국인 폄하 발언을 이제 심심치 않게 접한다.


최근 벌어진 제주도의 중국인 범죄를 보면 필자도 분노가 치솟지만, 무분별하게 무비자를 허용한 당국에도 책임은 적지 않다. 또한 그 때문에 모든 중국인을 싸잡아 비하하면 헤이트 스피치를 벌이는 일본인과 하등 다를 게 없게 된다.


지금은 '연트럴 파크'로도 불리는 연남동에 몇년전 서대문구 차원의 차이나 타운 조성 계획이 수립된 적이 있다. 결국 이는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반대로 무산됐다. 집값이 떨어진다거나, 슬럼화된다는 등의 주장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반대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길거리에 걸려 있던 현수막들을 보면서 우리(한국인)가 당했던 차별을 되갚는 지경이 됐구나 하고 한숨이 나왔다. 그걸 보는 재한화교들의 심정은 어떠할지도(심지어 딱히 범죄를 저질러온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무조건적인 배타, 차별이 아니라 점진적인 접촉, 대화가 편견을 넘어서는 방편이 아닐까.


일개 외국인으로 한때 식민국이었던 나라에 살다보니, 필자도 작은 것에 민감해지곤 한다. 그들에겐 별 생각 없는, 오히려 친근감을 의도한 "한국과 일본은 한 때 한 나라였다"와 같은 발언을 들을때면 한심하단 생각에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우리 감수성도 좀 더 상대에게 예민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오사카의 작은 식당 문제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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