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의 논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일본 AV 업계
한국사회 인식 가운데 '일본서는 AV(성인 비디오, Adult Video) 배우가 그 나름대로 직업의식을 갖고 일하며 사회에서 위상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게 있다. 매년 엄청나게 많은 양의 작품(?)과 배우가 등장하기 때문에 생긴 인식이지 싶다. 일본이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성진국'이라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
실제 일본 번화가에는 대놓고 성인 용품과 AV를 파는 가게들이 있다. 출입할 때 눈치보는 사람들도 그렇게 많아보이진 않는다. 겉모습으론 번듯한 산업의 하나라 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다. 적어도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매장 내에는, AV 판매 순위가 걸려있거나, '인기 배우'가 직접 고객들을 상대로 사인 이벤트를 여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 일본 내 위상과 사람들의 인식은 어떨까? 정말로 배우가 되기 위한 발판으로 AV 업계에 진출해 인기를 끌고 큰 돈을 만지게 되는 걸까?
지난해 3월 일본의 NGO '휴먼 라이츠 나우'에서 일본 AV 배우의 현실에 대해 종합적인 보고서를 내 큰 화제를 불렀다. 제목은 '포르노, 어덜트비디오 산업이 낳는 여성, 소녀에 대한 인권침해 조사보고서'다. 아래 주소에서 개략을 살펴볼 수 있다.
일본 내 AV 시장 규모는 대략 4000억~5000억엔 가량 된다고 한다. 연간 2만 타이틀이 판매되고, 그 중에는 윤리심사(일본 AV는 업계 단체를 중심으로 한 자율심사제도)조차 거치지 않은 것들도 적지 않다고. 출연 경로는 수많은 '프로덕션(기획사)'이 배우들을 채용해 파견하는 구조로 돼있다.
일단 AV업계 진출에 대해서는 당연히도(?) 업자에게 속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예컨대 "모델이 되지 않을래?"라고 길거리 스카우트(캐스팅)된 뒤, AV 출연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계약을 맺자마자 "계약이니까 일을 거절할 수 없다", "일을 그만두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 "부모에게 알린다"와 같이 협박당하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채무를 걸어서 못 빠져나가게 하는 전통적 수법도 빈번히 사용되고 있었다.
구체적인 피해사례는 아래 표와 같다. 보고서 일부를 그대로 옮긴다.
왼쪽 위 상담 건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피해가 늘었다기보다는 상담창구가 알려진 효과가 더 컸으리라 본다. 2016년에는 98건으로 더욱 증가했다.
그 밑표의 상담 내용에 대해선,
맨 위부터 'AV 출연강요' 13건, 'AV 위약금' 12건, 'AV 속아서 출연'(구체적으로는 거절하는 게 불가능해 출연, 들었던 얘기와 다름), 'AV 출연을 그만두고 싶다'(계약후나 촬영후에 이후의 촬영을 거절하고 싶다), '과거 (출연한 )AV를 삭제하고 싶다'(지인에게 출연이 알려진 이후 무서워져 지우고 싶다, 누군가에게 과거 AV 출연이 알려지는 게 두럽다, 남성이 게이 비디오에 출연후 알려지는 게 두렵다) 등등이 있다.
AV출연 자체가 다른 사람과 상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사례는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보고서는 개인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적시해 어떤 식으로 피해를 당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위법적 위약금 청구로 출연을 강요당한 케이스'를 보자. 조금 길다.
고교생이었던 A는 번화가에서 X사 스카우트에게 "그라비아 모델"(수영복 등을 입고 찍는 비디오로, AV와 같은 성인비디오는 아님)"로서 채용됐다. A는 탤런트에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제안을 받아들여, 지시대로 계약서에 서명했다. A는 계약서를 받지 못했다.
A에게 주어진 일은 '착에로着エロ'라 불리는 노출이 많은 복장을 하고 하는 촬영이었다. A가 상상하고 있던 그라비아모델 일과 달랐기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다. X사는 이미 일이 정해져버렸기 때문에, 그만두고 싶다면 위약금 100만엔을 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A는 위약금을 준비하는 게 불가능해, 결국 출연을 하고 말았다
X사는 A에게 착에로는 탤런트가 되기 위한 선정활동이니 보수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는 주위 여성들도 같은 조건으로 일하고 있어 특별히 의문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다
A가 20살이 되자 X사는 "다음일은 AV"라고 알렸다. A는 출연하고 싶지 않아, 몇번이나 그만두고 싶다고 간청했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거부하면 100만엔 이상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해, 어쩔 수 없이 AV출연을 하게 됐다.
A는 제작사 Y사로 파견돼 촬영에 임했다. 대본은 전날 건네졌지만, 의견을 말할 여지는 없었다. A는 복수의 남성과의 관계를 강요당해 크게 상처받았다
A는 X에 대해 더이상 출연할 수 없다고 거절하려 했으나 X사는 Y사와 10편의 출연계약을 맺고 있어서, 앞으로 9편을 촬영해야 한다고 하며 위약금은 1000만엔 이라고 말했다.
A는 1000만엔을 도저히 준비할 수 없었지만, 더이상 AV에 출연하는 걸 견뎌낼 수 없었다. 비디오 판매와 다음 촬영이 다가오자, 죽고싶다고 생각해 지원단체에 연락했다. 결국 X는 A에 대해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다음은 '길거리 스카우트로 탤런트 전속계약을 했지만 AV 면접에 파견된 케이스'다.
E는 길거리에서 "연예계활동에 관심이 없나요"라는 말에 스카우트돼, X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계약서에는 AV에 관한 기재가 전혀 없었다. E는 X사가 마련한 고급 맨션에서 생활하며 X사 부담으로 헬스클럽에 다녔다. 미용성형도 했다. E는 일반적인 탤런트로서 데뷰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지시에 따라 생활했다.
약 1개월후, E는 X에게 Y사 면접에 가보라고 지시받았다. 가봤더니 AV 면접이었다. E는 "관계는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질문받자, 충격으로 "성적인 내용은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고 강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얘기를 전혀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강제로 옷이 벗겨저 상반신 사진을 촬영당했다.
E는 예상조차 하고 있지 않던 전개에 공포를 느껴, 면접이 끝나자마자, X사에 계약해제를 통보했다. E는 X사에게 계약을 해제할 거라면 위약금으로 맨션 월세와, 헬스 대금, 미용성형 대금 등을 전부 반환하라고 요구받았다. 내지 않을 거면 집과 학교에 사정을 설명하고 청구하곘다고 위협했다.
X사가 마련한 고급 맨션에 살던 E는 감금을 당한 끝에 AV출연을 우려해, 맨션을 빠져나와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지원단체와 변호사의 개입으로 계약해제를 할 수 있었다.
대략 이와 같은 구체적인 사례들이 보고서에 담겨있다. 성매매 등에 빠져드는 경우와 비슷한 루트로, AV의 세계에 강제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물론,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이같은 '갑을관계'를 악용한 피해 역시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AV 업계에 감독관청이 없고, 업소 단속과 관련된 법규정도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한다. 영상에 대한 저작권도 인정받지 못한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 대한 반론도 없지 않다. 아래 <아사히신문>에 다양한 3사람의 의견이 실렸다. 그 중 아오야마 카오루 고베 대학 교수(여성)의 말을 살짝 인용해본다.
"AV업계 전체가 악이라는 전제로 대책법을 만들어 단속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휴먼 라이츠 나우의 제안에는 찬성할 수 없다. 이런 전제로 단속을 강화하면 AV업계가 실제보다 무서운 곳이라는 오명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전후, 매춘방지법이 제정되던 때, 일하던 사람들이 타락한 사람들, 혹은 범죄예비군 대접을 받는다는 반대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거의 다뤄지지 않은 채 결국 매춘부에 대한 차별이 강해졌다"
즉, 산업을 더 투명하게 양성화해야지 무조건 규제만 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다. 아오야마 교수는 오히려 AV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낙인이 찍히면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무엇이 맞는지는 결국 주장의 영역이겠으나, 현 시점 AV산업계에서 '갑을의 논리'가 작동하고, 그 가운데서 인권침해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건 사실인 듯싶다.
주지하다시피 '성산업'에 대한 단속이 궁극적으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점을 생각해보면, 이와 같은 규제와 자율화의 논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성진국' 일본에서마저 이같은 어려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