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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Feb 07. 2017

편의점 알바생 울린 '만들어진 전통'

 '에호마키' 판매 강요하는 일본 편의점 실태

일본에는 이런 저런 관습과 전통이 많다. '이 날에는 반드시 이걸 해야해'라는 의식이 한국보다 강하다고 느낀다.


1월을 예로 들면, 연말에는 반드시 'NHK 홍백가합전(紅白歌合戦)'을 봐야 하고, 신년에는 '하코네 역전(箱根駅伝)'을 봐야 한다는 식이다.


홍백가합전은 한국에도 이미 많이 알려졌으리라 보는데, 다양한 가수들이 팀을 나눠 출전하는 가요대전이다. 누가 그해 홍백가합전에 참가할지가 매년 초미의 관심사다. 지난해에는 해체를 발표한 아이돌 'SMAP'가 출전할지가 이슈였는데, 결국 출전하지 않았다.



하코네 역전은 그리 알려져있지 않다. 대학 육상선수들이 도쿄에서 온천도시로 유명한 하코네까지 릴레이로 달리는 경기다. 연초에 시작되는데, 가는 길과 오는 길 이틀에 걸쳐 이뤄진다. 1920년부터 시작된 100여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경기다.


니혼테레비(NTV)가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오전 오후 내내(약 8시간) 하코네 역전을 중계한다. 일본사람들은 대학 육상선수들이 힘내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용기를 얻는다'고 한다.


하코네역전 공식 사이트 사진. 한겨울임에도 반팔 반바지를 입고 뛴다. 출처: http://www.hakone-ekiden.jp/


최근의 홍백전 시청률은 1부 35.1%, 2부 40.2%로 일본의 인구를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하코네 역전은 27.2%(도쿄~하코네), 28.4%(하코네~도쿄)를 기록했다.


어느 쪽도 상당한 시청률이라 할 수 있다. 반드시 본다라는 건 맞지 않겠지만, 그래도 봐야 한다는 의식이 있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또 한국의 복날처럼 일본에는 '土用の丑の日(どようのうしのひ, 12간지와 관련된 날)'이라는 날이 있어, 이날에는 장어를 먹는다.


그러다 최근 갑작스레 부상한 '전통'이 하나 있다. 입춘 전날(절분, 節分, 올해는 2월 3일) 먹는 '에호마키(恵方巻)'라는 김밥류 음식이다. 이전까지 입춘 즈음에는 대두(콩)을 뿌리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과 상관없이 에호마키가 부상한 것이다.


아래는 절분을 맞아 에호마키를 광고하는 전단지다. 겉모습으로 봤을 때는 김밥과 그리 다르지 않은데, 차이는 밥이 초밥처럼 식초간이 돼있다는 점이다.


에호마키를 홍보하는 슈퍼마켓들


내용물에 따라 가격도 달라지는데, 참치가 들어가면 비싸지거나 하는 식이다. 비싼 건 한 줄에 1000엔이 넘어가니 김밥처럼 쉽게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슈퍼나 편의점에서는 일찌감치 예약주문을 받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에호마키를 먹는 게 '전통'이라 부르기엔 '뜬 기간'이 얼마 안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출연자가 "한 3~4년 전부터 갑작스럽게 먹기 시작한 느낌이 있는데"라 발언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일본 위키피디아를 참고해 에호마키의 역사를 알아봤다.

유래로는 과거 절분에 오사카 지방에서 비슷한 음식을 먹었던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전국적으로 퍼진 관습은 아니었다고.


 '에호마키'라는 이름이 정착된 건 1998년 세븐일레븐(편의점)이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부터라고. 그 이전까지는 풍습과 마찬가지로 음식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고 한다.


한 식품회사 조사에 따르면, 2002년 전국 인지도가 53%였으나 2006년엔 92.5%로 뛰었다. 2006년실제로 먹었다고 답한 사람은 54.9%. 절분에 콩을 뿌리는 비율보다 에호마키를 먹는 비율이 증가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에호마키는 매상이 떨어지는 1월후반~2월초 판매이벤트를 위해, 편의점이 중심이 돼 시작됐다고 한다. 실제로, 이 시기가 되면 일본의 편의점에는 에호마키 출시를 알리는 포스터가 대대적으로 붙는다. 위 전단지에서 보듯, 일반 슈퍼마켓에까지 판촉활동이 벌어질 정도로 나름대로 '성공한 마케팅'이다.


전통처럼 포장돼있으나 실상은, '발렌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처럼 상업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인 셈이다. 김 등에 싸는 '마키'라는 음식 자체가 뭔가 전통적인 이미지가 있기도 한 걸 노렸으리라고 본다.


아래는 세븐일레븐에서 올해 이벤트를 시작했을 때 사진이다.


에호마키 이벤트. 출처: http://www.sej.co.jp/products/ehomaki/

이처럼 전통을 되살리는 의도는 물론 좋다고 볼 수 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다. (물론, '전통이 좋은 것'이라는 명제 자체에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의외의 일에서 벌어졌다. 아래 기사다.


제목은 '에호마키로 비명 가혹한 판매량 할당에 괴로워하는 실태'다. 기사 전체 내용을 옮겨본다.


3日の節分を前に、コンビニエンスストアなどでは「恵方(えほう)巻」の販売が始まっていますが、ツイッターには、販売のノルマを課されたというアルバイトの学生の書き込みが相次いでいます。NHKの取材に対して、ある女子高校生は「50本売るよう指示され、20本は家族に買ってもらうしかない」と訴えるなど、過酷なノルマに苦しむ実態が浮かび上がっています。


3일 절분을 앞두고 편의점 등에서 '에호마키' 판매가 시작되고 있습니다만, 아르바이트 학생들이 트위터에서 잇따라 판매 할당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NHK 취재에 대해 한 여고생은 "50줄 팔라고 지시받아, 20줄은 가족에게 팔 수밖에 없다"고 호소하는 등 가혹한 할당량에 괴로워하는 실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恵方巻」は節分に食べると縁起がよいとされる巻き寿司で、コンビニエンスストアでも予約を受け付けるなど、販売競争は年々激しさを増しています。こうした中、ツイッターではコンビニエンスストアでアルバイトして働く学生が、店から販売する数のノルマを課されたという書き込みが相次いでいます。


에호마키는 절분에 먹으면 길하다고 여겨지는 스시말이(巻き寿司)로 편의점에서도 예약을 받는 등, 판매경쟁이 매해 격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트위터에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이 가게로부터 판매량을 할당받았다는 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NHKが取材した女子高校生は、「店長から50本売るよう指示され、友人にお願いしてなんとか30本は売ることができました。友人には悪いなと思っています。残りの20本は家族に買ってもらうしかありません」と話していました。


NHK가 취재한 여고생은 "점장에게 50줄 팔라고 지시받아서 친구에게 부탁해 어떻게 30줄은 팔 수 있었어요.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20줄은 가족에게 팔 수 밖에 없어요."라고 얘기했습니다.

また、別の女子高校生は「店全体で700本売ることが決まり、自分も20本売るよう『ノルマ』を課されました。コンビニでは、夏はウナギ、秋はおでん、冬はクリスマスケーキやおせちと、販売ノルマが課され、一年中苦しいです。こういう売り方はおかしいと思いますが、店長に冷たくされるのも嫌ですし、アルバイトを続けるためにはしかたがないです」と話していました。


또, 다른 여고생은 "가게 전체에서 700줄 파는 게 정해져, 저는 20줄을 팔도록 할당량을 부과받았습니다. 편의점에선, 여름은 장어, 가을은 오뎅, 겨울은 크리스마스 케이크나 신년 음식(おせち)에 할당량이 주어져, 1년 내내 괴롭습니다. 이런 판매방식은 이상한 것 같지만, 점장에게 냉대받는 게 싫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기 위해서도 방법이 없어요."라고 얘기했습니다.

一方、コンビニ大手のフランチャイズ店を経営するオーナーによりますと、恵方巻のシーズンを前に、本部の社員から「販売目標」が示され、この店では、毎年数百本仕入れているということです。


한편, 편의점 대기업 프랜차이즈점을 경영하는 오너에 따르면, 에호마키 시즌을 앞두고, 본부 사원에게 '판매목표'가 제시돼, 이 가게에선 매년 수백 줄을 납품받고 있다고 합니다.

オーナーは「毎年、恵方巻の時期になるとどれだけ売れ残るかと胃に穴が開きそうです。本部にとっては加盟店に仕入れさせたら全部利益になりますが、私たちにとっては本部は絶対で消化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従業員に割り振って達成しようという店もあります」と話しています。


오너는 "매년 에호마키 시기가 되면, 팔다 남은 게 얼마나 될까 위에 구멍이 뚤릴 정도입니다. 본부로서는 가맹점에 납품시키면 전부 이익이 되지만, 저희들에게 있어서 본부는 절대적인 존재라, 어떻게든 (판매량을) 소화해야 합니다. 종업원에게 할당해 달성하려는 가게도 있습니다."고 얘기했습니다.

コンビニ大手の各社は、「各店舗は本部とフランチャイズ契約を結んでいるものの自主的に営業しているため、本部が店舗にノルマを課したりアルバイトに買い取りを強制することはない。また、アルバイトに無理な負担を強いないよう店舗に対して指導している」とコメントしています。


편의점 대기업 각사는 "각 점포는 본부와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고 있긴 하지만 자주적으로 영업하고 있기 때문에, 본부가 점포에 할당량을 부과하거나 아르바이트에게 매입을 강제하는 일은 없다. 또, 아르바이트에게 무리한 부담을 강요하지 않도록 점포를 지도하고 있다"고 코멘트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유사한 '본부-가맹점 갑을 관계'가 에호마키 판매에서 명확히 드러난 것이다. 만들어진 전통을 강요하고, 판촉을 위해 종업원들이 동원되는 게 현실인 셈이다. 게다가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풍습을 가장해 각종 음식판매 강요도 이뤄지고 있었다.


최근에는 세븐일레븐의 한 점포가 감기로 결근한 여학생에게 "벌금(9350엔)을 매기겠다"고 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시급이 높은 걸 제외하면 근무강도는 한국과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지.


아래 마이니치신문 사설은 이같은 실태를 따끔하게 지적하고 있다. 일부분만 옮겨본다.

暮らしに不可欠なコンビニは、便利な機能が増えたことも重なり、「働く場」として見ると、どんどん過酷になっている。ビジネスとしての持続性を保つため、本部の主導で基本的な戦略を考え直す時期である。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편의점은, 편리한 기능이 늘어난 것과 함께 '일하는 곳'으로서 보면 급속히 가혹해지고 있다. 비지니스로서 지속성을 지켜내기 위해, 본부 주도로 기본적 전략을 다시 생각해야 할 시기다.



개인적 체감이지만, 편의점 알바생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혹은 유학생)도 상당히 많다. 모르긴 몰라도, 가혹한 노동조건에 더해 외국인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을 수 있다.


최근 일본에서 '노동' 자체가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만큼 편의점 노동도 이슈가 되고 있다. 더 극심한 조건에 있을 한국 알바생들 입장에서도 참고가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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