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 Feb 17. 2017

일본은 '영장 청구가 곧 구속'

한국 내 구속영장 논란을 보며

오늘 새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다. 구속영장이 재청구된 끝에 결국 발부됐다. 앞서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된 적잖은 피의자들이 구치소에 들어갔다.


좀 딱딱한 얘기지만 한국과 일본의 피의자 신병 구속 현황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자 한다.




경제신문 기자로 근무하면서 과거 2년간 사회부(법원+경찰 담당)에 있었다. 


이재용 부회장 영장 발부 여부 때문에, 법원 취재기자들이 새벽까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여 기다렸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법원 취재 기자들의 주된 일 중 하나는 영장실질심사 및 영장 여부를 체크하는 것이다(평소엔 재판 취재가 중심). 특히나 큰 사건이 벌어지면 더욱 정신이 없는데, 지금과 같이 '세기의 사건'이 벌어지는 때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물론 검찰 취재하는 기자들의 노고에 비하면 큰 일은 아니다).


사회부 초창기에 검찰 직원에게 들은 얘기가 있다. "사회부 취재를 하려면 최소한 형사소송법은 대충이라도 읽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 학부시절 법을 제대로 공부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과목 하나 들은 정도). 


저 말을 듣고 쉽게 읽을 수 있는 형사소송법 책을 하나 샀는데 그의 말대로 꽤 도움이 됐다. 체포는 뭔지, 구속은 뭔지, 기소는 뭔지 등등. 법조인이 보자면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기사를 쓰는 수준에서는 무리 없었다. 


참고로, 기자들 사이에서도 종종 틀리는 부분인데, 검찰단계에서는 영장을 '청구'한다고 하고, 경찰단계에서는 '신청'한다고 한다. 검찰은 법원에, 경찰은 검찰에 자료를 내기 때문이다. 


또, 체포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사전구속영장'이라고 한다. 큰 사건은 대체로 체포->구속보다는, 사전구속영장을 치는 일이 많다. 


구속영장 취재 관련해서 기억나는 게 몇 가지 있다. 


일단 영장실질심사 날짜와 시간, 담당판사가 기자들에게 전달된다. 당일이 되면 기자들이 피의자를 쪽문(뒷문)에 모여 기다린다. 대부분 피의자들은, 구치소가 눈앞에 까지 와 있어 마음이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멘트를 안 한다. 물론 기자들도 큰 발언을 기대하지 않는다. 


서울중앙지법에는 구속영장, 체포영장, 압수수색영장 등 영장만을 담당하는 '영장전담판사'가 3명 있다. 보통 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법리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고르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중앙지법으로 오는 사건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민감한 일이 많기 때문이다. 


보통 부장판사급 2명, 단독판사(단독재판부 판사) 1명으로 구성돼있다. 부장판사 2명은 영장전담판사 이후 보통 중앙지법 형사재판부로 옮겨간다. 


이들 판사들 사무실은 아무나 접근할 수 없다. 다른 일반 재판부는 취재 명목으로 방문하는 게 가능하지만 영장전담재판부는 접근을 차단한다. 큰 사건 외에도 판단해야 할 사건이 많아, 최대한 집중해야 하고 외부의 영향을 철저히 배제하기 위함이다. 


또 영장 하나에 판사들이 어떤 소릴 들을지 법원도 뻔히 알기 때문에 차단에 신경을 많이 쓴다. 보통 기각됐을 때 사회적 분란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름은 자주 접하지만 실제 기자들과 만날 일은 극히 드물다. 


과거엔 구속 영장 자체가 기자들에게 배부가 됐다고 한다(기소 단계에서는 공개 되는 일이 있다). 구속영장을 보면 어떤 혐의로 영장이 청구됐는지가 비교적 자세히 적혀있다. 그러나 피의자 인권의식이 높아지면서 이젠 배부되지 않는다. 


물론, 혐의 내용을 아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검찰 기자들은 그 나름대로 취재를 할 수 있을 테고, 법원 기자들은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법정(들어갈 수 없다) 문에 귀를 대고 듣는 것이다. 은어로 '귀대기'라고 한다. 


큰 사건은 역시나 법원 경위가 접근을 막지만, 가끔은 경위가 없을 때가 있었다. 게다가 검사가 큰 소리로 주장을 펼치면 밖으로 소리가 들린다. 보통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내용을 말할 때가 많아, 그거 자체가 기사가 되는 일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 기사만 보고 구속/기각을 예측하는, 심지어 비법조인이 그러한 발언을 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일반 재판에서도 검사와 피고인 양측 주장을 들어보면 모두 맞는 것 같을 때가 적지 않았다)


영장실질심사가 끝나면 해당 판사는 사무실로 돌아가 법리 검토에 들어간다. 어지간하게 큰 사건이 아니면 보통은 밤 12시 이내에 결과가 나왔다(신문사 기사 마감 시간이 있기에 대체로 이 시간 이내에 결과를 받아야 한다는 암묵적 룰도 있었다). 


법원으로부터 오는 문자 통보는 매우 건조하다. 혐의내용은 적혀있지 않고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구속 사유가 나열돼있다.  즉, '중거 인멸 염려''도망, 도망할 염려''범죄의 중대성, 재범 위험성'(70조)등이다. 기사에는 '~영장전담판사는 ""로 구속/기각 이유를 밝혔다'는 식으로 인용된다.


이러한 구속 기사의 문제점은 '구속 자체가 수사의 완성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는 점에 있다. 구속은 말그대로 수사를 위해 신병을 붙잡아두는 데 있지, 반드시 죄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구속되고 정작 판결에선 무죄가 나오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검사들 사이에서도 구속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구속되면 수사가 사실상 성공했다고 받아들여진다는 얘기다.


사석에서 만난 한 검사 출신 변호사(그만둔지 얼마 안된)는 자기가 담당한 사건이 어려운 경제사건이라 판사가 제대로 영장 심사를 할 수 있을지 주위에 불만을 털어놨다고. 그 뒤 영장이 발부되자 안도했다고 한다. 근데 그 판사가 어디선가 불만을 들었는지 영장 발부 뒤 전화를 걸어와 "이해 다 했다"고 항변하는 일이 있었다고. 


또, 검사출신 변호사들 사이에 노력 대비 수임료가 짭짤한 게 영장 심사라고 한다. 


가끔은 딱 보면 기각이 나올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 있는데, 수임자들에겐 일절 말하지 않고 심사에 임한다고. 구치소냐 아니냐의 갈림길에 있는 피의자 입장에선 절체절명의 일이라, 돈을 받아내기 쉽기도 하고.




얘기가 길어졌는데, 오늘 적고자 하는 내용과도 관련이 있어 잡다한 내용까지 언급하고 말았다. 


얼마전 한 한국교수분께서 방문해 현 정치 상황을 설명하는 특강을 했다. 일본인 학자와 학생들도 다수 참여한 자리였다. 


마침 그날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강의 뒤 노학자(일본 헌법 전공)가 "한국에서 체포장(뒤에 설명) 기각 뉴스를 봤는데, 한국에서 기각되는 일이 잦은가"하는 질문을 했다. 한국 교수분의 설명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강의 후 필자가 그분에게 "취재경험으로는 구속영장 기각률이 꽤 나온다"고 답했다.


이어서 "일본에도 한국처럼 영장만 전담으로 하는 재판부가 있는지"물었는데 "없다"고 했다. 형사재판담당하는 판사들이 영장도 담당한다고 한다. 


그리고 기각률이 매우 낮다고 했다. 본인 제자중에 재판관이 있는데 "관행적으로 영장 발부해온 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을 했다고.




실제 기각률이 어떤지 한국과 일본의 자료를 한 번 찾아봤다. 


일본의 인신구속 절차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한국과 달리, 경찰의 권한이 매우 강하다는 점을 미리 강조해두고자 한다. 즉, 수사의 주체는 일반적으로 경찰이 된다(도쿄, 오사카지검 특수부 등 일부 검찰 주체의 수사도 있지만 어디까지 방점은 경찰에 찍혀있다).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하면 48시간 이내에 검찰에 보내져야 한다고. 거기서 검찰은 24시간 이내에 구류장을 청구할지 검토한다. 이 구류장에 관련해서는, 검찰이 청구하고, 청구날로부터 10일간 신체 구속이 결정되고, 한번 10일간 연장할 수 있다고. 아래 법률사무소 홈페이지를 참고했다.



즉, 구류장은 한국에서 구속영장을 의미하는데, 일본에선 첫 단계에서 체포한 뒤 구속하는 게 일반적이라 그런지 언론에서 '체포장'이라고 표현한다. 아래 기사다.



체포장과 구류장 기각률을 살펴보면 양국의 비교가 가능하리라 본다. 


2011년 체포장은 10만4257건 중 10만4185건이 발부됐다. 기각률은 0.07%다. 70년대 0.2%까지 올라간 적도 있지만, 대체로 0.00%대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소폭 높아지는 경향도 보인다. 그럼에도 절대 수치가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다.


구류장도 다르지 않다. 2011년 기준, 1.47%다. 구류장은 굉장히 낮은 경향을 보여오다가 최근 급속하게 높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결코 높다고 할 수 업는 수치다.(아래 자료 참고)


http://www.hou-bun.com/01main/ISBN978-4-589-03522-6/statistics.pdf


한국은 어떨까.


검찰의 체포영장 기각률은 2015년 기준 2.1%라고 한다. 5년간으로는 2.04%로, 서울중앙지검이 3.5%로 높았다. 또한 같은 5년간 구속영장 기각률은 전국 평균 23.2%로 매우 높았다. 그 가운데 30.1%였던 지검도 있었다(이 자료의 체포, 구속 모두 경찰이 신청한 뒤 검찰에서 기각된 건 포함되지 않는다). 


아래 박주민 의원실 국정감사 자료를 참고했다.



일단 자료로 볼 때 일본에 비해 엄청나게 높다고 하겠다. 


재밌는 건, 이처럼 기각률이 높아진 게 이른바 민주정부(특히 노무현 정부) 때라는 점이다. 당시 형사재판에서 인권이 본격적으로 중시되고, 구속영장을 두고 검찰과 법원이 크게 충돌하기도 했다. 론스타 관련 사건이었는데, 아래 기사다.



아래 기사는 영장 기각에 크게 반발하는 검찰(대검 중수부) 모습이다. 박영수 특검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모두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하겠다. 사진에선 오른쪽에 해당 두 명이 보인다.




영장 기각과 관련해선, 수사쪽(검셩)/심사쪽(법원) 모두 생각해봐야 하는데, 수사쪽의 이른바 '무리한 영장 청구 가능성'과 심사쪽의 '엄격한 원칙'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2006년 무렵에는 두 요소 중 후자쪽이 세게 작용했고, 검경이 그에 맞춰 바뀌어갔다고 하겠다.


일본 수사 당국은 철저하게 체포될만 한 사안만 고려해 영장을 청구한다고 알려져있다(정밀사법). 기소도 죄가 될지 철저하게 따져서, 어설프다 싶으면 기소자체를 안한다고.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이런상황에서 일본은 피의자의 영장 청구 자체가 화제가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애초 체포가 결정된 뒤 보도되기 때문에, 체포 단계부터 이슈가 된다. 


독일은 기각률이 대략 1% 안팎이라고 한다(아래 기사 참고). 



전체 형사 피의자 인신구속 비율은 일본이 5~6%, 독일이 4%, 한국은 1%대라고. 아래 기사인데, 즉, 구속 수사가 무조건 능사가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아가고 있다고 하겠다.





일본에 '엔자이'라는 말이 있다. 누명과 비슷한 말인데, 죄가 없는데 죄가 있는 것으로 몰리는 일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보통 독재시대 시국사건 중에 이런 일이 다수 있었는데, 일본은 주로 살인 사건이 많다.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는 일도 종종 벌어져, 그때마다 논린이 된다. 


일본은 여전히 사형 판결과 집행이 모두 이뤄지는 국가기 때문에 엔자이 논란이 있는 사건에 한해선, 사형 집행이 미뤄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구속 남발이 반드시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반드시 구속될 일은 구속돼야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으로 죄가 확정되는 건 아니다. 피의자가 밉고, 법원의 판단이 납득가지 않을 때가 있지만, 큰 의미의 인권존중을 위해 '불구속 수사 중심'이라는 대원칙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리미엄 프라이데이'가 지친 불금 문화 되살릴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