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드는 독서 인구와 서점들
10여년전 처음 일본 여행을 할 때만 해도 전철, 지하철 안에는 책, 신문 읽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무엇을 그렇게 읽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손에 읽을 거리를 들고 있었다. 정말로 독서 왕국이 맞구나, 하는 감탄을 몇차례나 한 기억이 난다.
근래에는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대부분 손에 스마트폰을 든 채 동영상이나 기사를 보고 있다. 신문을 읽는 사람은 드물어졌고,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는 정도다. 독서 왕국 일본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상징적인 사건 하나를 소개한다.
일본의 대형 서점 체인 '키노쿠니야서점(紀伊国屋書店)' 신주쿠 미나미(新宿南) 지점이 지난해 8월 사실상 영업을 접었다. 대형 건물 1층부터 5층까지 쓰던 서점을 없애고, 기존 서양책을 전문으로 하던 'Books Kinokuniya Tokyo'(6층)만 남겼다.
키노쿠니야 서점은 1927년 탄생한 역사 있는 대형 체인으로, 본점은 신주쿠 미나미 지점에서 멀지 않은 신주쿠 3초메(3丁目)쪽에 있다. 신주쿠 미나미 지점은 1996년 전국 최대 규모로 화제를 모았지만, 결국 임대료를 내지 못해 폐점에 이르렀다고 한다.
폐점한 자리에는 중저가 가구 전문 체인 '니토리(ニトリ)'가 자리잡았다.
현재 필자가 살고 있는 쿠니타치(国立) 역 앞에 있던 중대형 서점(토자이서점, 東西書店)도 2015년 문을 닫았다. 이곳 서점은 무려 42년간 영업을 해온 곳으로, 학원 도시로 유명한 쿠니타치 내 학생들과 주민들에게 사랑받아온 곳이었다.
아래 블로그를 보면 서점이 문을 닫기 직전 '팬'들이 모여서 아쉬움을 나누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지역과 함께 해온 역사 깊은 서점도 허망하게 문을 닫는 순간이었다.
현재 문을 닫은 서점자리엔 드럭스토어가 들어섰는데, 역 근처 드럭스토어는 4개나 된다.
일본 내 전체적인 서점 숫자 추이를 살펴보면 '퇴조'의 경향이 확연히 드러난다.
아래 그래프는 1999년 2만2296곳이었던 서점수가 2015년 1만3488로 대폭 줄어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매년 평균적으로 500여곳이 문을 닫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아래 통계는 점포를 없애고 학교 등에게 책을 납품만 하는 식으로 바꾼 곳은 포착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서점 수는 더 적어졌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래 일본저자판촉센터 홈페이지 내용을 참고로 했다.
당연히 출판사들 사정도 점차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2001년 4500여곳에 달하던 출판사수가, 2015년 3500여곳으로 줄었고, 전체 매출도 같은 기간 40% 가량 줄었다고 한다. 양적으로 보나, 질적으로 보나 일본의 출판 시장은 위기로 접어들고 있다.
이같은 서점 위기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물론 스마트폰의 보급 등으로 인한 콘텐츠의 다양화와 온라인 서점의 발달 등이다.
그 중에서도 콘텐츠 다양화, 즉 볼거리, 즐길거리가 대폭 늘어났다는 원인이 절대적으로, 온라인 서점(특히, 아마존)은 출판 시장 전반보다는 오프라인 서점의 몰락에 결정타를 가한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일본대학생협에서 조사한 대학생들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 추이다. 평소 그런 대로 책을 읽는 학생들보다,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난 게 '0분(0分)', 즉 책을 아예 안 읽는 학생(맨위선)의 증가 추세다.
라쿠텐 리서치에서 지난해 한 조사도 참고가 된다. 인터넷 설문조사로 20~6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지난해에 비해 독서시간이 늘었는가'라는 질문에 줄었다고 답한(조금+상당히) 사람이 32.1%였던 데 반해, 늘었다고 한 사람은 21.1%에 그쳤다. 변화없다는 46.8%였다. 아래 그래프다.
(일본 사회의 지성 수준이 점점 퇴보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이같은 독서 문화의 퇴조와도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다. 혐한, 반중을 주장하는 '헤이트 스피치'가 힘을 얻는 것도, 즉각적,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인터넷 우익'의 등장과 관계가 깊다고 일컬어진다. 이같은 현실의 배경에는 독서 문화의 변화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물론, 서점들이 손을 놓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나오고 있다. 단지 책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을 다시금 읽게 만들기 위한 시도라고 하는 게 좀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여러 매체와 블로그에서 꾸준히 소개되고 있는 '츠타야 서점'의 시도가 대표적이다. 검색해서 나온 기사와 블로그 몇 개를 링크해본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츠타야 서점은 단순히 '일본이 서점 왕국'이기 때문에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이대로 가다가는 멸망(?)하겠다'는 위기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 부분은 명확히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난주 오랜만에 한국 교보문고를 둘러봤다. 교보문고 역시 책을 파는 데서 나아가, 책과 지식을 체험하는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일본의 경험도 교훈이 됐으리라 본다. 테이블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몇권씩 책을 쌓아두고 읽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한국 서점과 출판시장의 위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개인적으론 몇몇 대형 서점을 제외하곤 살아남기 힘들다고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출판대국 일본마저 직면한 어두운 상황은 그 증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자기소개란에 그마나 적을 수 있는 취미가 독서 정도인 필자에게는 더더욱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