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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Apr 13. 2017

파산 여행사 신입사원 쟁탈전

파산업체 신입직원에 러브콜 보낸 회사들

다니던 회사가 망하면 누구든 눈앞이 깜깜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용 보장은커녕, 이직이 가능할지도 불확실하다. 한국에선 최근 조선, 해운업계가 불황에 빠지면서 위기에 처한 회사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얼마전 이역만리에서 침몰한 선박에 탔던 선원들 상당수가, 한진해운 출신이라는 안타까운 소식도 접한다. 


일본이 '역취업난(=구인난)'이라는 얘기는 이 블로그를 통해 수차례 거듭해왔다. 물론 일본에서 개개인에게는 힘겨운 취업활동이지만, 그럼에도 취업이 안돼 재수, 3수했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얼마전 통계를 보니 평균적으로 2군데에서 내정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다소 황당한 전개로, 취업시장 활황세가 재확인된 사례가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테루미클럽(텔미클럽,てるみくらぶ)이라는 여행사가 지난달 27일 급거 법원에 파산신청을 했다. 부채만 무려 151억엔(=1510억원)에 이르고, 예약자나 여행자 9만여명에게 피해가 미칠 것으로 예측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피해규모가 더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테루미클럽이 강점을 지닌 부문은 저가 여행. 그 중에서도 한국과 하와이 여행에 특화돼있는 곳이었다. 여태까지는 한국 여행을 하는 일본인 관광객이 줄면서, 오히려 한국 업체들 경쟁이 격화돼 나름대로 싼 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 하와이는 때때로 비싼 여행 상품을 팔면서 밸런스를 맞춰왔다.


한 한국행 피해고객은 "3명이서 14만엔을 냈다. 정말 가격이 쌌지만 일찌감치 예약하라고 한 뒤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걱정하고 있다고. 이런 식으로 일찌감치 현금으로 입금을 요구한 뒤 파산하면서 돈을 떼일 처지에 놓인 고객이 한둘이 아니어서 사회문제가 됐다. 


아래 기사를 참고로 했다.


결국 국토교통대신(장관)이 "원활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열기까지 했다. 홈페이지에는 '별 일 없을 것이다' '제대로 대응하겠다'는 내용을 첫 머리에 걸어놨다.


파산을 알리는테루미 클럽 홈페이지 문구


고객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난감해졌다. 


올해 입사할 예정이었던 신입사원 약 50명의 채용도 일괄 취소됐다. 테루미클럽은 파탄 직전까지 채용 공고를 내고 직원을 뽑을 것처럼 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 비난을 받던 터였다.


최근의 한국 상황이었다면 이들 신입사원의 삶은 아마도 비극의 출발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회사 문턱에도 못가본 채 오갈 데 없이 다시 취준생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내정자 취소를 선언하는 사장


그러나, 일본의 상황은 달랐다.


가장 적극적으로 신입사원에게 손을 내민 곳은 재단법인 '숙박시설활성화기구(JALF)'였다.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에서 JALF가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고"

'테루미클럽'을 비롯해 내정이 취소된 학교 졸업생 분들께.

'여러분을 JALF에서 받아들이겠습니다' 캠페인을 벌입니다.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이사해버려서 곤란해진'(채용이 확정돼서 집을 이미 옮긴) 분들을 비롯해, 

전형을 실시하지 않고 채용하겠습니다.

-당신이 우수한 분일 경우 : 평생 JALF에 남아주세요

-당신이 그렇게까지는... : 몇 개월, 비바람을 견뎌주세요

희망하시는 졸업자 분들은 직접 메세지 주세요.

보신 분들,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공유 부탁드립니다.


JALF 페이스북 캡처


재단이라고 해서 일할 만한 곳인가 하여, 홈페이지를 한 번 가봤다. 일본의 호텔이나 민박 등 숙박업소 경영 컨설팅이나 상담을 해주는 곳이었다. 본사 건물은 도쿄 한복판인 토라노몬(虎ノ門) 지역에 있다. 


기존에 올라와있던 채용 조건도 살펴봤다. 일본은 대체로 기업들이 채용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다. 


정사원(정규직) 채용일 경우, 총 급여액은 14만~35만엔 사이라고. 계약사원일 경우에는 오히려 조금 올라가서 15만~38만엔. 정사원은 한국에서 말하는 소위 4대 보험을 가입하게 된다. 


아주 좋은 대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 학생들에게는 충분히 옮겨봄직한 곳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직종도 여행업계로 동일하고. 정규직 구하기가 힘든 한국에서는 감지덕지할지도 모르겠다.


당연하게도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JALF를 칭찬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JALF의 구인 급여조건



그러자 채용을 다소 부족하게 했던 곳들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나섰다. 항공권 예약사이트를 운영하는 '어드벤처'사나 '아디레' 법률사무소, 경비회사 등이 '무시험 합격'이니 와달라고 러브콜을 보냈다. 


어드벤처사는 오는 사람들에게 1인당 20만엔을 '전직지원금'으로 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변호사가 180명 정도 있는 중형 로펌 아디레 사무소(지점 70여곳)는 심지어 "업종은 법률사원으로 다르지만 50명을 다 받아들이겠다"고 강조했다. 아디레의 홈페이지에 따르면 첫 임금은 21만엔(상여제외)으로, 전형도 상당히 까다롭게 돼있다. 그럼에도 '사회공헌' 차원에서 끌어안겠다고 대표 변호사가 설명했다.



전화위복이랄까, 채용이 활발한 시즌에 입사가 취소된 터라, 오히려 선택지가 넓어지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애초 가고 싶었던 곳을 가지 못했던 분함은 있을지언정, 막막한 취준생 생활을 굳이 다시 보내지 않아도 되게 됐다.


(만약 다시 준비한다고 해도, 오히려 테루미클럽의 사연을 말하면 지망한 회사에서 이해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개인의 운명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과 천양지차인 이번 테루미클럽 사태의 전개를 보면서, 일본 취업 시장의 활황세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일본에서 구인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모습이 조만간 한국에서도 나타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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