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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May 27. 2017

일본 철도회사가 사는 법

운송보다 레저 상업시설을 중심에 둔 사업모델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은 '철도왕국'이다. 다양한 회사들이 지역을 나눠 사업을 벌이고 있다. 도쿄만 해도, JR히가시니혼, 세이부(西武鉄道), 오다큐(小田急), 케이오(京王), 케이큐(京急) 등등 한 손으로는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철도회사가 있다.


노선은 대체로 겹치지 않지만, 간사이(関西)의 경우, 오사카-교토 노선처럼 사철과 JR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도 있다. JR도 물론 87년 민영화됐기 때문에 사철에 속하기는 하지만, 국철 시절의 기반을 그대로 물려받아 사철과는 보통 구분한다.


한눈에는 다 들어오지 않는 일본 수도권 노선도


일본 철도회사들은 대체로 주식시장에 상장돼있다. 그렇기 때문에 매년 실적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꿔말하면, 주주들을 위해서라도 기업 실적이 최소한 나빠지지는 않게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주주들은 철도 운송만으로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인구가 갑자기 증가하지 않는 이상 탑승객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은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가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 철도회사들이 힘을 쏟는 게, 보유 부동산과 철도역사를 활용한 각종 부대사업이다.


과거에 유행했던 것은 야구단과 유원지, 동물원 등이다. 철도로 운송하는 데서 발생하는 수입과 관람료를 얻을 수 있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70~80년대 고도경제성장기에 발맞춰, 야구장과 유원지가 대거 개발됐다.


철도회사들이 직접 유통사업(소매업)을 벌이는 일도 당연시돼갔다.


주로 도쿄와 사이타마 지역을 잇는 도부철도(東武鉄道)를 한 번 보자. 아래 노선도 한 가운데 '도부동물공원'(東武動物公園)이라는 이름의 역이 있다. 말 그대로 동물원과 테마파크가 함께 있는 곳이다.

도쿄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지만, 아사쿠사 등지에서 급행 열차를 타고가면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이름처럼 도부철도회사가 직접 개발에 나서서 1981년 오픈헀다. 햇수로 36년이 흐른 셈이다.


그렇지만 현재 기준으로 보자면 굉장히 낡은 시설을 끌어안고 있다. 직접 가보니 오히려 지금은 애물단지가 아닌가 싶은 수준이었다. 2주전 찍은 아래 사진을 보면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입구사진이다.




먹구름때문인지 모르겠지만 5월임에도 관람객수가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이같은 공원은 세이부선(세이부유원지)이나 케이오선(요미우리랜드) 등등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후지큐하이랜드처럼 지방사철(후지큐)이 갖고 있는 곳도 있다.


야구단으로는, 세이부 라이온즈, 한신 타이거즈, 킨테츠 버팔로즈(폐단) 등이 있었는데, 당연히 이들 구장으로 가려면 각 사철을 이용하는 게 가장 편하다. 한신 타이거즈는 경쟁회사였던 한큐에 모회사(한신)가 합병되는 일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입원이 다시금 마땅치 않자, 이들 철도회사가 눈을 돌린 게 일종의 부동산 개발, 임대사업이다.


JR히가시니혼은 회사 규모가 큰 만큼, 보유 부동산도 많다. 소개하고 싶은 것 가운데 하나는 철도 고가화 사업으로 생겨난 땅(즉, 다리 아래)에 상가를 유치한 'NONOWA' 사업이다.


신주쿠에서 도쿄 동쪽을 달리는 추오센(中央線)은 과거 대부분의 구간이 지상이다가 최근 고가화가 완료 단계에 접어들었다. JR은 이 자리에 백화점 매장을 연상케 하는 디자인의 점포를 입점시켰다. 의류매장과 식품매장, 카페뿐만아니라, 대규모 식품 매장도 속속 입점했다.


가격도 생각만큼 비싸지 않아 역에서 내려 바로 쇼핑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대체로 칙칙한 이미지의 고가 밑 공간을 잘 활용했다고 호평을 받고 있다.


오픈당일 히가시코가네이역 모습 출처: https://matome.naver.jp/odai/2139079447012694501



도쿄의 새로운 명물이 된 '스카이트리' 역시 철도회사(도부철도) 개발 사업 가운데 하나다.


2000년 들어, 도부철도가 주체가 돼서 지자체 등등과 사업을 추진했다. 부지는 화물을 위해 보유하고 있던 토지로, 당연히 현재 도부철도 역과 직접 스카이트리가 연결돼있다. 심지어는 노선 이름에도 스카이트리를 붙여서 어필하고 있다.


도쿄 스카이트리

실제 철도회사 실적은 어떨까.


JR히가시니혼의 경우, 지난해 실적을 보면 운송업 매출은 2조130억엔으로 68%였다(영업이익은 3264억엔). 역 공간 내 상업시설 매출은 13.9%(4171억엔, 영업이익 329억엔), 쇼핑, 오피스 입대사업  9.3%(2805억엔, 영업이익 750억엔), 기타(호텔사업 등)이 8.8%였다.


비철도매출이 32%에 달하는 셈이다. 구체적인 실적과 관련해선 아래 주소에서 다운로드 가능하다.


http://www.jreast.co.jp/investor/report/2017/pdf/report30.pdf


JR히가시니혼 실적 중 쇼핑 오피스 비중


유통업(백화점, 쇼핑센터 등)을 활발히 하는 도부철도는 사실상 철도회사는 부대업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지난해 1년간 실적을 보면, 전체 매출 5688억엔 가운데, 운송부문이 2161억엔(37%)에 그친 반면 나머지 부문이 63%에 달했다. 특히 유통업은 매출이 1949억엔으로 34%였다(10여년전에는 운송보다 높았다). 그밖의 레저업이나 부동산업 매출도 상당히 높다.


아래 주소에서 확인가능하다.


http://www.tobu.co.jp/ir/bs/


한 군데만 더 보자. 서부 도쿄 베드타운지역을 JR과 양분하는 케이오그룹이다. 유통업이 운송업보다 매출규모가 더 크고, 부동산과 레저서비스 비중도 상당하다. 큰 역에는 케이오슈퍼나 백화점이 들어가있어, 사실상 역과 일체화돼있다.


게이오그룹의 지난해 결산자료


비싼 운임으로 운송업에서 적자가 나지 않는 안정적 현금 수입(캐시카우)을 바탕으로, 부동산, 유통 등 추가 사업을 벌이는 게 일본 철도회사의 수익구조인 셈이다 (물론 운송구간별로 보면 적자 구간도 적지 않게 있다). 비교적 성공적인 민영화 모델로 평가받고 있지만, 바꿔말하면 이용자들이 운송 부담을 떠받치고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코레일 단일 회사의 한국 철도 모델에 일본상황을 그대로 적용하기엔 적잖은 차이점이 있지 않나 싶다. 한국 국토가 철도 경쟁을 허용할 정도로 넓지 않다는 점도 그러하다 (일본은 국토가 넓지 않은 대신 길쭉하기 때문에 철도의 효율성이 비교적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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