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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May 19. 2017

5월을 돌이키며

과거글에서 나의 5월을 되새기다

*다소 정치적인 감상을 적은 글입니다. 일본과는 관계 없는 내용이오니, 정치성향에 불쾌해질 수 있는 분께서는 패스해주시길 바랍니다.




5.18 기념식 생중계를 보며 무척 감명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모처럼 듣는 명연설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두고 너무 긴 시간 소모적인 갈등을 벌여온 것도 이제 끝났다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광주의 문제는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6.25때, 베트남전쟁 때 희생된 장병들과 동일선상에서 생각해야 한다.


박근혜씨가 대통령일 때 일본에 건너온 터라, 솔직히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합리적인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았고, 거기에 대해 일일이 일본인에게 설명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문재인정부도 이런저런 시련을 겪고 실책도 있으리라고 보지만, 적어도 박근혜씨 때처럼 상식을 벗어나는 일을 하지는 않으리라.


페이스북을 보니, 대통령 탄핵과 같은 중대사태가 없는 한, 앞으로 대통령 취임식이 5월에 있을 것이란 내용이 있었다(선거는 3월).


5월에는 한국 현대사에 깊게 아로새겨진 사건이 몇 가지 있다. 첫째가 5월 16일 군사쿠데타고, 둘째가 5월 18일 광주민주화항쟁이다. 셋째는 5월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다.


셋 모두 한국 역사의 물길을 바꾼 커다란 전환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대를 이은 비극은 1961년 5월 16일 시작됐다. 그의 영향력은 이전보다 줄었다고 해도 여전히 한국 현대사를 규정짓는 힘을 갖고 있다. 최근엔 박 전 대통령의 과가 많이 주목받고 있지만, 그의 신화가 온전히 무너지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광주민주화항쟁은 보통사람들이 신군부에 저항하다 허망하게 총칼에 짓밟힌, 지금까지 이어지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상징하는 흐름이라 할 수 있겠다. 80년대 이후의 학생, 사회운동은 대부분 '80년 광주'에 빚지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87년 체제가 성립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상징으로서의 광주는 여러차례 재현됐고, 지난해 촛불 시위로 다시한번 주목받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광주 자체를 부정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것이 지역주의라는 왜곡된 현상으로 해석되면서 해결이 꼬여갔는데, 이번 대선은 다소나마 완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2009년 5월 23일은 한국 국민에게 동시에 커다란 충격을 안긴 드문 경험의 날이었다. 개인적으론 문재인 대통령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도 이날이었다.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하던 사망 확인 발표, 무너질 것 같은 미묘한 긴장감 속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봐오던 이의 죽음을 담담하게 전하던 모습. 이날부터 일주일간 이뤄진 강렬한 장례식 체험은 한국 민주화의 현대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날과 관련해 오래전 싸이월드에 적었던 글 몇 개를 여기에 옮겨볼까 한다. 원문은 굳이 고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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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 단상


마침 어제 대법원에서 존엄사 확정 판결이 났더랬다.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끝내고,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허락하라는 게 판결의 골자였다. 문득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이 났다. 존엄사 확정 판결 뉴스를 보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유서를 쓰면서 곧 죽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는 삶의 화신이었다. 누구보다 삶을 향한 의지가 강해보이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꺼지지 않는 불과도 같았고, 진정 압도적인 힘이 그를 누르기 전까지는 사그라지지 않을 걸로 보였다.
 
노 전 대통령은 존엄사 뉴스를 보면서 자신의 다음날을 어떻게 그리고 있었을까. 새벽 5시에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가장 무서운 언어는 결코 길 필요가 없다. 그토록 많은 말과 글을 쏟아냈던 사람이 막판에는 14줄만을 남겼다. 그에게 그 이상의 언어는 무의미했을 테다. 마지막에는 누구를 향해서도 분노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절반 넘는 이들에게 분노했던 그도, 마지막 순간에는 분노를 잃었다.
 
그리고는 산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스스로 꺼지지 않는 불을 끄기 위해. 더 이상의 분노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인에게 누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어쩌면 지금의 죽음이 그가 생각한 최고의 존엄사가 아니었을까 싶다.
 
2000년 부산 지역 총선에 출마한 때부터 응원해왔다. 아무것도 모르던 고1 시절, 이해관계를 넘어서 행동하는 그가 멋졌고, 뻔히 질 걸 알면서도 옳은 길을 가는 그에게 반했다. 그에 대한 애정은 강준만 교수가 써온 『인물과 사상』으로 공고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통령은커녕 지자체장도 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그에 대한 애정이 현실적이라고 하긴 힘들었다. 장차 사회적으로 활동할 30대쯤이 되면 그의 밑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더랬다. 그래서인지, 끊임없는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그에게 대통령직이 너무 급박한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렇게 대통령이 되고, 가끔은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대부분은 이해하기 힘들었던 그에게, 그래도 애정을 거둘 순 없었다. 당분간은 이런 사람도 없을 거라는 절망 비슷한 게 있었으니깐. 대선 과정보다 더 심한 우여곡절 끝에,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로 내려왔으나, 이명박 정권과 몇몇 언론은 그를 놔주지 않았다. 마치 먹이를 눈 앞에 둔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노 전 대통령은 서거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자신이 평범한 사람임을 증명했다. 자신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수 많은 이를 학살한 자들, IMF를 불러온 자들, 100만명이 모여도 끄떡하지 않는 자들은 '나약한' 그를 비웃겠지만, 세상 사람은 '당신네들'과 다르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게 되었다.
 
결국, 또 다시 남은 자들의 몫이 되고 말았다. 분노하여야 할 때는 분노하여야 한다. 모처럼만에 현실이 비현실보다 비현실적이란 걸 깨달은 날이었다. 슬픔이라는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앞에 놓인 길이 한층 뚜렷해진다.

          

등록일시            2009.05.23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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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특강 다녀와서


YES24에서 신청했던 유시민 신간 출간 기념회 특강에 다녀왔다. 특강이라고 했지만, 형식은 강의보다 문답식에 가까웠다. 초반 30분 가량을 책 소개와 자신의 거취에 대해 얘기했고, 나머지 2시간 가량을 청중들의 질문에 답하는 식이었다. 사람숫자는 300석에 1/3 가량 찼으니 100명 정도 온 듯하다. 연령층은 대부분 30대였고, 젊은 학생은 많이 눈에 띄지 않았다. 강연을 끝나고 둘러보았을 때, 나 정도 연령층이면 제일 어린 편에 속했다.
 
강연과 문답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하면서도 유시민의 확신에 찬 발언들이 나오면서 하나의 선을 따라 진행되었다. 요즘 자주 받고 있다는 "정치는 언제 복귀할 거냐'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정치를 떠난 적이 없고, 떠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올해는 강연에 주력할 것이고 언제든 시기는 오게 마련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정치 일선에서 활약할 예정이 당분간은 없지만, 반드시 정치인으로서의 그를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정치인과 지식인이 크게 구분되는 것이 아님을 동시에 그는 지적했다.
 
유시민이 내리는 참여정부와 노무현에 대한 평가 역시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간의 경험들이 그를 더 확신에 차있게 해주는 듯 싶었다. 청중들의 질문은 대체로 수준 있는 것들이었는데, 마지막에 질문하신 한 3-40대쯤 되어보이는 여성분의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요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식에게 희망을 보여주기가 너무 힘들다. 교육은 점점 경쟁적이 되어가고, 갈수록 이명박 정부의 정책도 도를 더해 간다. 과거 노사모로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이제는 더 이상 아이들 볼 낯이 없다.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봐야 하나" 간추리면 이런 내용이지만, 실제 진심을 담아 얘기해서 울림은 더 컸다.
 
유시민은 이에 대해,
 
"미국에서 오바마가 나오는 데 부시 8년이라는 세월이 있었다. 그 기간동안 9.11,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비롯해서 정말 헤아릴 수 없는 일이 터졌다. 지난 이명박 정부 1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자신은 못하지만, 작년 일들보다 더한 일들이 앞으로 터질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지난 일들은 약과다. 독재정부 세월을 생각해본다면, 아직은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국민의 선택이 항상 옳다는 법은 없고, 그들의 선택은 때로 합리적일 수도, 때로 비합리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 이명박 당선 시에 많은 분들이 좌절했겠지만, 개인적으로 87년 유월항쟁으로 일궈놓은 직선제 개헌을 전두환의 2인자인 노태우가 앗아갔을 때, 구로구청 바닥에서 주저앉아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것도 결국 국민의 선택이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을 계몽할 수 있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할 수 밖에 없다.
 
그러고보면 우리가 사실 오바마를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6년 전 참여정부를 선택한 것도 국민들이었다. 노무현이든 오바마든 둘 다 아무런 기반 없이 시작해서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이번 오바마를 당선시킨 원동력이나 당시의 노사모나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믿음을 갖고 기다려야 한다. 밤 11시부터 해가 뜨려면 적어도 6시간은 있어야 한다. 그때 아무리 시간을 빨리 가게 하려는 시도를 해도 무의미하다. 오히려 밤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새벽은 가까워지는 법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분명 그러한 가능성을 갖고 있고, 아직은 시기가 아닌 것일 수 있다. 믿음을 갖고 기다려보자."
 
모두 듣고 싶은 말들이었다. 유시민답게 논리정연하고, 시원시원하게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려 꽂을 때의 속시원함이란.(물론, 비판받을 여지도 충분하지만)
 
올해 내내 유시민은 강연에 주력한다고 한다. 책도 한 권 더 낼 예정이라고 한다. 시간되고,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 번 쯤 강연회에 가서 약간의 가능성을 엿보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본다. (책에 사인도 해준다) 시간이 아깝지 않은 순간들이었다.  


등록일시            2009.03.2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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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뷰의 단면을 읽다가


문 : 다음은 경제관련 질문입니다. 너도 나도 CEO 대통령을 표방하고, 광역단체장 후보들도 CEO 시장, CEO 도지사, 그래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데,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서 국민 경제의 미래가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답 :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는 정책에서 좀 차이가 있는 것 말고, 기술적인 면에서는 누가 대통령이 되나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안정입니다. 정치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그래서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일을 잘 하면 경제도 잘 됩니다. 경제기술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좀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기술적 정책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대통령은 그 경제가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정치를 잘 관리하고 사회를 잘 통합하고 갈등을 조정해 나가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정치지도자와 CEO는 역할이 다릅니다. CEO는 시장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축구시합에서 보면 선수입니다. 골을 넣으려고 뛰는 선수죠. 정치하는 사람은 축구장을 잘 만들어 주고 심판을 공정하게 보고 조정과 중재를 잘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경기를 관리하는 사람이죠. 정치에도 경영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크게 봐서 정치가 할 역할은 시장이 시장대로 잘 돌아가게 하면서 시장이 실패하는 영역을 추스려 나가는 것이죠. CEO에게 패배자라는 건 무의미한 것이지만 정치가에게는 패배자야말로 중요합니다. 정치가는 패자들을 챙겨서 함께 데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질문자 : 유시민
답변자 : 노무현
인터뷰 시간 : 2002년 2월 15일
 
노무현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그리 크지 않던 시절에 샀던(2002년 3월인가쯤), 『노무현, 상식 혹은 희망』에 실린 인터뷰의 단면. 정말로 몇 년만에 들춰보았는데, 마침 지금과도 동떨어지지 않은 문답이 제시되고 있더라. 그래서 굳이 수고로움을 마다 않고 타이핑해봤다.
 
지금 사람들은 노무현을 '몰상식 혹은 절망'이라 얘기하지만, 난 아직 확실한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다. 노무현이 현직에서 물러나 좀 더 이성적으로 판단될 수 있을 때에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지금은 단지 그가 과연, 그렇게 절망적인지, 그 절망이 또 다른 절망을 불러와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물음을 집중할 뿐이다.  


등록일시            2007.09.07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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