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 Oct 25. 2015

<심야식당>서 엿보는 일본의 공동체

세켄(世間)이 묶어주는 일본 지역사회

일본어에 ‘세켄(世間)’이란 말이 있다. 우리말의 ‘세간’과 유사한 듯하면서도(한자로는 같다) 구체적으론 미묘하게 다르다. 한국말의 세간이 넓은 의미의 사회 전반을 의미한다면(세간에 물의를 일으키다 등), 일본어의 세켄은 좀 더 좁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여담인데, '물의를 일으키다'는 일본어에서도 그대로 쓰인다( 物議を醸す). 한국어 어원이 영 불명확한 걸 보면 일본어에서 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한 때 세켄의 개념으로 꽤 이런저런 논의가 있던 모양이다. 현재 배우고 있는 카시와자키 준코(柏崎順子) 선생(에도시대 출판문화 전공)의 말을 빌리면 ‘유럽에서 말하는 ‘사회’보다 좁은, 자신이 속해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영역’이다. 일본인들은 세켄을 삶에서 중시하고 세켄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행동한다는 게 카시와자키 선생의 설명이었다. 다시 말해, 좁은 의미의 공동체성 이라고나 할까.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세켄이란 단어 하나 갖고 책을 쓴 사람도 있다 (阿部 謹也、『『世間」とは何か 』講談社現代新書)』세켄이란 무엇인가).


일본에서 동네 이자카야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주인(일본에서는 통상 마스터라고 불러도 위화감이 없다. 한국에선 들어본 일이 없지만)이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도, 기본적으로 세켄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 동네 있는 이 가게 역시 세켄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일본 이자카야에서 한잔. 가고시마 포장마차촌(鹿児島屋台村)에서 . 8월 24일 촬영.


한국은 자신이 사는 곳을 포함해, 좁게는 동네나 지역사회, 나아가서는 공동체에 별다른 관심이 없거나 희박한 나라다. 이를 사회적 자본으로 부를 수도 있겠다. 어찌됐든 전반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더라도 타인에 대한 신뢰도는 높지 않다. 그런 환경을 무시하고 아무리 일본의 이자카야 비스무리한 것을 들여온다고 해도 그것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사람한테 누가 쉽사리 얘기하고 친해질 수 있을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가게의 주인에게)

아울러, 일본 사람들의 대화 주제에 터부가 많다는 것도 역설적으로 이자카야를 안식의 공간으로 만들어준다고 본다. 일본 사람들은 정치얘기, 종교얘기를 하지 않고 어지간해서는 서로의 견해를 물어보지 않는다. 여기엔 굳이 얘길해서 어색해지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에서 잡담을 ‘세켄바나시(世間話)’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을 것이다. 이자카야에 들러 나누는 얘기를 얼핏 엿들으면, 대체로 그 맥락을 모르면 거의 이해가 안되는 사소한 것들이 많았다. 아베에 대한 찬양 혹은 욕이나, 자민당이 어떻느니 민주당이 어떻느니 하는 건 그닥 못 들어봤다. (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오사카 뒷골목의 이자카야. 8월 중순 촬영. 니혼슈(日本酒)가 200~300엔대로 말도 안되게 싸다. 대신 서서 마셔야 한다.
위의 사진 과 같은 곳



’한국은 어떤가, 종교는 모르겠으나 정치는 단골 주제다. 한국 번안판 <심야식당>에 나오는 식당 비스무리한 곳이 실제 종로에 있다고 치자. 그런데 주인과 손님의 정치 성향이 다르다.  어쩌다 주객 간에 정치 얘기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택시도 그렇지만, 한국이라면 이런 상황을 접할 가능성이 개인적으로 높다고 본다) 모르긴 몰라도, 거기가 안식처가 되긴 힘들 것이다. 종로라면 탑골공원이 가까우니… 자세한 얘기는 생략한다. 심야식당이라면 막차 끊긴 술꾼들이 모이는 그런 공간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술 마신 사람들이 어떤 연유로든 싸우는 광경을 보는 건 드물지 않은 일이다. 기본적으로 남의 얘기를 들으려는 사람이 적다는 것도 한 몫할 것이다. (일본은 듣는사람이 실제로 경청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듣는 척은 한다.)


한국판 심야식당. 출처:홈페이지(http://program.sbs.co.kr/builder/programMainList.do?pgm_id=22000008149)



일본판 드라마 <심야식당>이 신주쿠 뒷골목의 '골든가이'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잘 살린 것도, 거기엔 비스무리한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판은 철저한 판타지도, 현실에 기반한 것도 아닌 붕 뜬 어설픈 느낌이 영 가시지 않은데 반해)


심야식당 극장판. 출처:홈페이지(http://www.meshiya-movie.com/)



일본인들이 정치 얘기를 하지 않으면서 그것이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일리 있다. 그럼에도 얼마간 일본에 있으면서 느낀 건 일본 사회의 기저는 제법 건강하다는 점이다. 초반 상당히 높았던 아베 내각의 지지율도 군대를 해외에 파견하도록 하는 집단적 자위권 법률 가결 뒤는 계속 하향세다. 군대를 갖자는 헌법개정안에 대해서도 50% 넘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물론, 뜨거운-열정을 가진?- 한국사회가 지속적으로 정치를 변화시켜온 데에 대해서는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다만, 요즘 보면 그 동력이 너무 일찍 꺼진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도쿄 나카노(中野)의 모모가르텐(モモガルテン). 카페 겸 술집으로 지역주민 안식처를 지향하며 지난 2013년 전직 사회복지 공무원 아저씨가 개업했다. 이날은 2주년 기념날. 5월중


요는. ‘일본이 한국보다 낫다’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한국은 드라마에 있는 심야식당이란 게 영 어색한 사회적 환경이란 얘기다. 내 생각에, 한국의 식문화는 ‘맛있고 싸고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그러면서 점장이 누군지 알 필요 없는’ 정도에 만족해도 될 법하다. 대표적으로 어디에나 있고 값싼 봉구비어라는 체인이 그 중간지대쯤 될 듯하고, 또한 그것이 백종원으로 대표되는 손쉽게 만들어서 맛있게 먹는 음식들이 아닐까. 급속한 개발과 이주 등으로 공동체성이 거의 사라진 한국의 도시에서 심야식당은 여전히 기대난망한 판타지지 않나 싶다.

가고시마의 한 이자카야 입구.
작가의 이전글 일본 취업의 몇 가지 사실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