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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Jul 18. 2017

라멘집에서 벌어진 '파벌 싸움'

츠케멘으로 유명한 '다이쇼켄(大勝軒)'의 '노렌와케' 분쟁

일본어로 '노렌'이란 각 가게 앞마다 걸려 있는 천 비스무리한 것을 의미한다. 손님이 가게를 바라보는 상징이면서도, 가게가 손님에게 어필하는 첫인상이기도 하다. 가게 이름과 중심이 되는 음식, 그리고 3대째, 4대째 등 내용을 적는 게 일반적이다. 


일본 여행을 해본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본 일이 있을 듯싶다.


전형적인 노렌의 모습

노렌은 '가게 그 자체'를 나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의미에서 파생한 것이 '노렌와케(のれん分け)'라는 단어다. 뒤에 붙은 '와케'는 나눈다는 말로, 즉 노렌을 나눠갖는다는 의미다. 노렌을 나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다음 예를 살펴보자. 도쿠시마현에 있는 한 라멘 체인점이다. 노렌와케의 일반적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돼 그대로 옮겨볼까 한다. 


노렌와케 제도를 설명하고 있는 라멘 체인 '멘오(面王)'

'노렌와케' 제도란


입사 3년이상, 동시에 점장 경험 2년 이상 갖춘 분으로,

회사측이 일상적인 업무내용, 생활태도, 인간성 등에서

적임자로 판단되는 분이 얻을 수 있는 권리입니다.


노렌와케에 대한 설명

-독립 과정

우선은, 배속된 점포에서 점장을 목표로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점장으로서 2년이상 경험을 쌓은 뒤, 점포 영업권, 인테리어, 주방기구, 간판, 비품 전체를 회사측으로부터 독립할 점장에게 매각합니다.


-멘오 '노렌와케'의 이점

식재료: 센트럴키친(회사이름인 듯)으로부터 배송되는 식재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맛이 안정돼있고, 직영점과 같은 맛을 낼 수 있습니다. 또한, 재료 조달처를 처음부터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경영: 이익을 올리고 있는 점포를 그대로 계승할 수 있습니다. 노렌와케 독립뒤 경영, 영업 어드바이스를 해드립니다.

인재: 본사로부터의 유료 인재파견제도가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스탭에 관해서는 그대로 계승할 수 있사오니, 처음부터 교육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금: 주식회사 나나후쿠닌이 은행 차입 보증인이 되오니, 자기자금 0엔부터 개업할 수 있습니다.

관리: 충실한 시스템에 의해, 점포를 안심하게 관리할 수 있습니다.


-> 정리하면, 일정 기간 일한 뒤 독립하는 걸 노렌와케라 한다고 하겠다.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졌듯이, 음식점 등에서 '수행'을 쌓고 독립해 나가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프랜차이즈 창업과는 달리 일정 기간(1년 이상) 수업을 받는다는 점에서 유대감은 한층 끈끈한 점이 특징이다.


특히, 노렌와케한 곳은 딱히 본점과 지점을 나누지 않는 것도 재미있는 지점이다. 중앙집중적이긴 하지만 가게마다 그 나름대로 개성을 살리고 있다(물론 그렇기 때문에 맛이나 분위기의 편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 평이 엇갈리는 일도 종종 있다). 




굉장히 아름다운 제도인 듯 싶지만, 이런 노렌와케를 두고 제자들끼리 나뉘어 큰 분쟁을 벌이고 있는 라멘가게가 있어 소개할까 한다. 


면과 국물(스프スープ라고 한다)을 따로 내는 츠케멘(つけ麺, 찍어먹는 면)으로 유명한 '다이쇼켄(大勝軒)'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국밥집이나 냉면집 사이에 심심치 않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런 분쟁의 일본판이라고 보면 되겠다.


우선 다이쇼켄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겠다.


사카구치 마사야스(坂口正安)라는 사람이 1951년, 도쿄 나카노(中野)에 다이쇼켄이라는 라면집을 차렸다. 여기서 함께 일하던 사카구치의 조카 야마기시 카즈오(山岸一雄)가 1961년 독립해 히가시이케부쿠로(東池袋)에 동일한 이름의 가게를 냈다(노렌와케). 


야마기시가 여기서 독특한 라멘을 만들어냈다. 이름이 '특제 모리소바'로 츠케멘의 원형으로 불린다. 모리소바는 보통 면을 국물(つゆ)에 찍어먹는 음식을 말하지만 라멘을 여기에 응용한 것이다. 아래 일본 타베로그(맛집 사이트)는 나카노 다이쇼켄과 히가시이케부쿠로 다이쇼켄을 각각 소개하고 있다.




히가시이케부쿠로 다이쇼켄 홈페이지. 출처: http://www.tai-sho-ken.com/top.html


(이 원조설에도 여러 이설이 있어, 추오선 오기쿠보(荻窪)역 앞에 있는 '마루초'(丸長, 1947년 개업)를 츠케멘의 원조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 마루초계열은 다이쇼켄의 원조라고 말하고 있고, 어느 정도 이는 사실이다. 야마기시도 여기서 수행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가봤을 때 마루초는 30분 전부터 이미 줄이 늘어서 있었다.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맛은 아닌 듯)



야마기시 역시 본인이 배운 대로 많은 이들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직간접적으로 다이쇼켄이란 이름을 내건 노렌와케점은 일본 전국 거의 100여곳에 달하게 됐다. 홋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다이쇼켄 이름을 단 라멘집이 생긴 것이다.


야마기시 생전에는 가게들 사이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각자 개성을 갖고 영업을 했는데, 분쟁은 야마기시가 2015년 숨지면서 생겨났다. 다이쇼켄 직계를 자처하는 곳 70~80여군데와 자신들도 다이쇼켄 지분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30여군데가 갈라져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야마기시 사후 히가시이케부쿠로점을 이어받은 이이노 토시히코(飯野敏彦, 야마기시와 혈연관계는 없는 제자)를 중심으로 하는 '노렌모임(のれん会)'과 오차노미즈 다이쇼켄이 대표하는 '맛과 마음을 지키는 모임(지키는 모임, 守る会)'로 각각 아예 단체까지 결성해버렸다. 


노렌모임이 얼핏 계통을 이은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다이쇼켄이라는 이름이 상표 등록된 건 아니고, 지키는 모임도 실제 야마기시의 제자들이라고 한다. 아래 홈페이지는 각각 단체에 속한 가게들 명단으로, 홈페이지 이름도 거의 같다.



대립의 구도 출처: 스포츠호치, http://www.hochi.co.jp/topics/garticle.html?id=20151004-OHT1I5001


이들이 대립하게 된 계기는 이이노가 야마기시 생전부터 히가시이케부쿠로점을 공공연히 본점으로 위치짓고, '중앙집중화'를 강화하면서라고 한다. 외부 취재에 대해서도 점차 히가시이케부쿠로의 허가를 받는 식으로 요구했다고. '지키는 모임' 멤버의 증언이다. 


게다가 반발하는 이들은 "이이노가 한 명의 제자에 불과한 주제에" 과도하게 자신을 내세우고 있다고 비판한다. 노렌와케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지점이다(즉, 프랜차이즈가 아니란 얘기).


갈등이 폭발한 건 야마기시의 장례식이 있던 2015년 4월. 평소 강하게 주장을 해온 이들을, 이이노를 비롯한 일파가 장례식장에도 못 들어오게 문전박대한 것이다. 심지어 개중에는 연락이 없어 스승의 장례일정조차 모르고 있던 점주도 있었다고. 


(양측 모두 홈페이지에는 스승의 얼굴을 내걸고 있다. 하늘에 있을 야마기시는 제자들의 난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노렌모임의 홈페이지


지키는 모임의 홈페이지


결국 갈등이 폭발하면서 아예 지키는 모임이 독립해 나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숫적으로 열세인 '지키는 모임'은 지난해 오기쿠보 '마루초 노렌 모임'과 연합에 성공한다. 아예 다른 곳에서 정통성을 찾으려고 시도하고 있다고나 할까.


분쟁은 딱히 법정으로 비화하지는 않고 그냥 나눠진 채로 머물러 있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서 분쟁의 의미가 퇴색하는 식으로 무마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일본의 한 라멘오타쿠가 노렌모임(히가시이케부쿠로)과 지키는 모임(히가시이케부쿠로)의 대표집에서 시식하고 남긴 블로그글로 마무리를 대신할까 한다.


'結論としては、どちらにも隙があり「無効試合」というのが妥当だろう。味以外の接客や価格・コスパなどは、両店とも『大勝軒イズム』を感じさせる素晴らしいものがあっただけに、残念としか言いようがない。山岸さんならば、なんと言うのだろうか?'


결론으로는 어느쪽도 틈이 있어 '무효시합'이라는 게 타당할 것이다. 맛 이외 접객이나 가격, 가성비 등은 양쪽모두 '다이쇼케니즘'을 느끼게하는 훌륭한 것이 있던 것만으로도, (분열이) 아쉽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야마기시 상이라면 뭐라고 말하려나.



즉, 소비자는 그저 맛있게 먹고 즐기면 그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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