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UN Sep 06. 2017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마광수 교수의 갑작스러운 비보에 부쳐

마광수 선생이 자택에서 쓸쓸하게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몇 자 적으려 한다. 페이스북에서도 여기저기 후일담 내지는 추모글이 올라와, 그저 멀리서 본 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거기에 짧게나마 보탤까 한다.


잘 알려진 대로 마광수 선생은 90년대 음란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한차례 구속된 뒤, 어찌어찌 90년대 후반 복직한다. 학교에 돌아온 뒤 동료 교수들이 마 선생을 '없는 사람' 취급한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원래부터 사교성이 없던 그에겐 더 힘든 나날이었을 것이다.


마광수 선생을 직접 본 건 2000년대 초중반 캠퍼스에서였다. 건물 한켠 담배피는 곳에서 그는 석양 질 무렵, 멍하니, 딱히 뭘 바라본다는 걸 의식하지도 않은 채 그저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리고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이내 사라지곤 했다. 내 인상에 강하게 남은 장면이다.


마 선생의 수업은 널널하기로 유명했다. 주로 강의한 과목은 교양 '연극의 이해'와 국문과 전공 '문예사조사'. 국문과는 아니었지만 국문과 친구들이 적잖게 있어, 수업 얘기를 종종 들었다.


교양과 전공 수업은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동일했다고 한다. 출석도 부르지 않고, 수업시간에 교수는 야한 얘기를 쏟아내는데, 묘하게도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다. 유일하게 자신의 성적 취향을 얘기할 때 잠시 생기가 돌았다고. 그리고 기말 시험은 각자 '야설'을 써서 내라는 것. 뭔가 기괴한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요즘 논란이 되는 성추행에 가까운 학생 모욕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야설과 관련해 웃기는 건, 잘 썼다고 A를 받고, 못 썼다고 C를 받는 게 아닌지라, 마 선생이 선풍기 돌려서 점수 주는 거 아니냐는 농담도 나왔더랬다. 나는 마 선생 수업에 시간을 넣는 게 왠지 아까워 직접 듣지는 않고 간접 체험에만 만족(?)했다. 솔직히 지금도 '수업을 들을걸' 하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실제 마광수 선생의 연구나 집필 관련한 업적은 90년대 이후 멈춰있다. 20대에 윤동주 연구로 교수가 된 이른바 '천재'였지만, 세파에 휘말려서인지 연구에 진전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상징'으로서의 마광수는 꽤 강렬한 존재였다. 마광수는, 이 세상에 말 못할 것은 없다는 사실, 금기에 가까이 가는 것도 때론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과거 마 선생이 80년대, 그리고 90년대 펴낸 시들을 듬성듬성 읽으며 깨달았다.


대학교에는 그 학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교훈(校訓)'이 있다. 기독교 계통 학교인 연세대학교의 교훈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다. 성경 요한복음 8장 32절에 나온다. 학문에서의 진리를 추구하면 어느샌가 자유로워지는 건가, 하는 게 막연한 첫인상이었다. 지금도 명확히 다가오진 않는다.


마광수는 이를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는 말로 도치시켰다.


나는 2000년대 중후반 이 말을 알게 된 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교훈에 들어간 진리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속박을, 단지 단어의 위치만 바꿔 전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 나아가 사회의 자유를 한국 사회는 오래간 잃어버려왔다. 그 자유가 궁극적으로 진리를 빚어낸다는 사실, 어쩌면 이것이 마광수 선생이 말하고자 한 핵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 가치는 계속해서 빛나야 한다.


안타깝게 숨진 고인의 명복을 빌 따름이다.













작가의 이전글 한국과 다른 일본 출판사들의 위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