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불편러가 이케아에서 쇼핑해 보았다

불편함을 샀는데 편안함만 남은 사연

by 껄룩


내가 자취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은 신입 티를 갓 벗은 회사생활 2년 차였다. 회사 사무실이 이사를 하면서 통근시간이 왕복 2시간을 훌쩍 넘어버린 것이다. 워라밸을 사수하기 위해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워라밸'이란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큰맘 먹고 회사와 가까운 곳에 원룸을 마련한 나는 이왕 저지른 김에 조금만 더 통이 커지기로 했다. 장안의 화제였던 이케아에서 내 수면의 질을 높여줄 새 침대를 구입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케아의 성공을 분석한 책의 제목, <이케아, 불편을 팔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케아는 기업이 할 일을 고객에게 일부 전가하여 얻은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이처럼 대놓고 고객에게 불편함을 판다고 하니, 나도 작정하고 '프로 불편러' 가 되어 생애 첫 침대를 구입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1. 쇼핑이 불편하다


내가 이케아를 방문했을 때는 한국의 첫 매장을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모조리 꽉 차있던 주차장들. 진입로부터 줄을 서던 차량들. 800원짜리 핫도그를 먹기 위해 30분 동안 줄을 서던 사람들. 침대란 침대는 제 것인 양 드러누워 있던 꼬맹이들. 움직일 때마다 흉기로 돌변하는 무식하게 큰 장바구니...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소위 '오픈 빨'로 인한 불편사항은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지금도 주말 피크시간에는 위와 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자. 누구나 자신에게 편한 시간인 주말 오후에 쇼핑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사람이 몰리는 것인데, 혼잡을 피하기 위해서 다른 시간대에 쇼핑을 해야 한다면 이것도 일종의 불편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순수하게 구매 프로세스에서 불편했던 점은 우선 계산을 하고 배송은 다른 창구에서 따로 접수해야 했다는 점이다. 각 창구 모두 줄을 서야 했음은 물론이다.


카트에 담을 수 없는 제품은 고객이 따로 제품 번호를 메모했다가 알려줘야 한다는 점도 거슬렸다. 작은 종이에 제품 번호를 메모하라고 무료로 나눠주던 연필은 이케아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었을 만큼 상징적인 존재지만 불편함은 어쩔 수 없다. 지금은 그냥 사진을 찍어놓을 수 있는 스마트폰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SI_20151216175108.jpg ⓒ 서울신문



2. 조립이 불편하다.


말 한마디 없이 그림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이케아의 조립 설명서에 대해 심플하고, 직관적이며, 필요한 내용은 모두 담겨 있다고 극찬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실제로 그 설명서를 따라 조립을 해보고 하는 말인지 개인적으로 묻고 싶다.


물론 설명서가 깔끔하고 예뻐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디테일한 설명서를 제작하고 번역하는 데 필요한 공수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리고 실제 조립을 할 때 때때로 정말 필요한 것은 그런 깔끔함이 아니라 친절한 디테일이다.


예를 들어 침대 프레임을 결합할 때 "부품이 딸칵 소리가 날 때까지 돌리십시오." 따위에 지시가 있었다면, 조립이 완료된 줄 알고 프레임을 들어 옮기려고 했다가 이음새가 덜렁 떨어져 버리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도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깨달은 사실이었다.


직접 사용할 가구를 조립하는 일은 즐거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조립을 시작한 지 10분 만에 무참히 깨졌다. 어린 시절 즐겨 하던 건담이나 비행기 조립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특히 실제로 몸을 뉘여야 하는 침대의 경우 무게 때문에 조립이 결코 쉽지는 않았으며, 안전을 위해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많았다.


1547008853.jpg



3. 가격이 불편하다.


고객이 위와 같은 불편함을 참는 이유는 이케아가 가격 면에서 저렴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이케아에서 산 침대는 결코 저렴하지는 않았다. 침대 자체는 싸게 산 편이었지만 배송비, 왕복 주류비, 그리고 쇼핑과 조립을 하는 데 들어간 시간을 고려하면 말이다. 내가 산 가구가 침대라서 더욱 그렇겠지만, 배송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배송에 걸리는 시간도 영업일 기준 3일로 짧지 않았기에, 그동안에는 자취방 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다. 이런 모든 불편을 감수했지만 가격이 혁신적으로 싸지는 않으니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


속은 쓰리지만 이케아를 경험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한 셈 치려고 한다. 다시 방문하더라도 순수하게 구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다른 판매 채널을 찾아보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매장에 방문하고, 그 물건을 찾고, 구매하고, 배송을 시키고, 기다리고, 배송을 받고, 조립하고 설치하는 그 모든 과정이 상당한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751_이케아-일본-배송차량-IKEA_Mitsubishi_Fuso_Canter_delivery_truck.jpg ⓒ CLO


그랬는데. 그런 줄 알았는데...



0. 침대는 편하다


그렇다. 그 모든 북새통이 끝나고 남은 침대는 현재 우리 집에 있는 존재 중에 나에게 가장 큰 편안함을 제공해 주는 휴식처가 되었다. 마치 그동안에 자기가 끼친 모든 불편함을 보답이라도 하듯이 나의 모든 체중을 남김없이 껴안아준다. 수면, 휴식, 독서, 글쓰기까지 집에서 이루어지는 나의 모든 활동을 묵묵히 받아 주면서도 하자가 생긴 적이 없다.


내가 없을 때는 나 외의 가족들도 내 침대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얼마 전 엄마의 독서용 안경이 침대 밑에서 발견되었다. 동생이 누워서 먹은 과자의 흔적이 침대 옆 서랍장에 남아 있는 것도 자주 목격한다. 가장 알아채기 쉬운 건 고양이들이 다녀갔을 때이다. 녀석들이 머물다 간 자리에는 항상 털이 한 뭉치씩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불편함을 샀는데 편안함만 남을 것을 보면 '곧 지나가리라'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는 지금도 그 침대 위에 누워 이케아가 나에게 판매한 불편함을 추억하며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아이러니하다.


unnamed.jpg 이케아 침대는 고양이도 좋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색한 자리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