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오급 의자에 앉기 위한 노오력

그 날 내 엉덩이는 호강을 했을 터였다.

by 껄룩

내가 참여하고 있는 한 스터디 모임에서는 브랜드 잡지 <매거진 B>에서 다루는 브랜드들에 대해 2주에 한 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매거진 B>는 한마디로 멋진 잡지다. 이 잡지를 읽고 있으면 세상에는 멋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텔리젠시아 커피와 함께 아침을 시작하고, 주말이면 대너 부츠를 신고 트래킹을 즐기고, 르 라보 샤워젤로 하루의 피로를 푸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 말이다.

입으로는 브랜딩, 철학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가성비와 실제 경험을 더 중요시하는 나 같은 '짝퉁' 말고, 진짜 브랜드를 사랑하고 향유하는 사람들의 삶이 <매거진 B> 속에서는 펼쳐진다. 잡지를 읽으며 나는 오늘도 아주 잠깐 그러한 삶을 맛본다.

이번 모임의 주제는 스위스의 가구 브랜드 비트라(Vitra).


내가 토론 주제를 발제할 순서라 특히 더 꼼꼼하게 <매거진 B>를 탐닉한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비트라는 엄청난 브랜드였다. 자신들이 만든 의자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고집. 디자인에 대한 남다른 정의. 품질에 관해서는 결코 양보하지 않는 장인정신. 그리고 이러한 모든 철학이 응집된 비트라의 의자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그 멋진 의자에 내 비루한 엉덩이라도 한 번 걸쳐 보지 않고는 평생 아쉬울 것 같아 굳이 시간을 내서 한남동에 있는 비트라 매장을 찾았다. 이태원 역에서 버스를 타고 세 정거장을 가도 모자라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한 동네의 좁은 골목을 통과하니 헝가리 대사관 옆에 자리 잡은 비트라의 불 꺼진 매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잠깐, 불이 꺼져 있잖아?


그 고급 가구 매장은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무척이나 어둡고 텅 비어 있어서 문자 그대로 빈집 같았다. 문 앞에는 내부 사정으로 당분간 휴업한다는 메시지가 적힌 종이가 한 장 붙어 있다. 재오픈 날짜를 적어놨다가 다시 지운 것을 보니 그 '내부 사정'이 당초 예상보다 시간을 더 잡아먹는 모양이었다.

내부 공사 등 매장 운영에 필수적인 작업 때문에 불가피하게 문을 닫은 것인지 알아보려고 핸드폰을 켰지만 그 흔한 인스타그램 계정은커녕 한글로 된 공식 홈페이지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돌려 돌아오는 길에 방금 지나왔던 언덕을 또 오르내리려니 다리의 근육들이 온갖 비명을 지르던 기억이 난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트라는 여전히 디자인이 뛰어나면서도 편안한 의자를 만드는 브랜드로 인식되고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내가 비트라를 떠올렸을 때 그 날 완전히 지쳐버린 다리의 그 뻐근한 감각만 생각나는 것은 내가 가성비와 실제 경험을 브랜딩 철학보다 더 중요시하는 '짝퉁'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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