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방 새거 맞는데..

좋아하던 여자애는 내 신상 프라이탁을 헌 가방 취급했다

by 껄룩

내가 프라이탁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창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2008년이었다.


입시 선택과목이었던 환경 과학 Environmental Science 교과서에 소개된 프라이탁의 사례는 단박에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시 나는 고작 교과서를 통해 그린 컨슈머리즘에 겨우 눈을 뜬 주제에 스스로를 아주 깨어있는 소비자로 착각하던 겉멋만 잔뜩 든 스무 살이었다.


그런 나에게 소비자들의 '선함'에 의존하지 않고 브랜드와 제품 그 자체의 매력만으로 환경친화적 제품을 팔겠다는 프라이탁의 철학은 혁신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나이 때 남자애들이 대개 그렇듯 나는 혁신을 사랑했고 동경했다.


문제는 그런 나의 이런 혁신적인 소비자 의식을 세상에 자랑할 길이 없다는 거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프라이탁을 취급하는 매장은 단 한곳도 없었고 아시아로 시야를 넓혀 봐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해외 직구는 그때만 하더라도 생소한 단어였고 또 너무 비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라이탁을 손에 넣고 싶어 안달이 났던 나는, 마침 홍콩에 놀러 가는 지인에게 어떤 디자인이든 상관없으니 프라이탁 가방을 하나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재활용 천막과 폐 자전거 고무 페킹과 자동차 안전벨트로 만든 가방의 가격이라고 하기엔 지금도 손이 덜덜 떨리는 30만 원의 거금을 지인의 손에 쥐여주고 내가 건네받은 것은 심플하다 못해 밋밋한 크림색 메신저 백이었다. 천막 광고의 일부를 오려낸 총천연색의 디자인이나 빈티지하면서도 화려한 색상의 조합을 기대했던 내게 그 가방은 중학생 시절 수채화 붓 세트, 팔레트, 플라스틱 물통 따위를 넣고 다니던 미술수업용 캔버스 천 가방처럼 보였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용기를 내어 '새로 산' 프라이탁을 메고 간 술자리에서, 그것도 호감이 있던 여자애한테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던 것이다.


오빠, 많이 멋있어졌다! 근데 가방은 이제 좀 새로 사야겠네.


그 이후로 프라이탁을 취급하는 매장이 국내에도 하나둘 생겨나고 인지도도 많이 높아졌지만 나는 내 프라이탁을 쉽사리 옷장에서 꺼내지 못했다. 여자애의 한 마디에 빈정이 상해 그렇게나 갖고 싶었던 가방을 어두컴컴한 옷장 속으로 유배 보냈던 걸 보면 난 절대로 힙스터가 될 수 있는 그릇은 아닌 모양이다.


내 프라이탁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본 것은 그때 받은 상처(?)가 희미해졌을 정도로 시간이 꽤 흐른 후였다. 홍대 대형 패션 편집숍 면적의 절반 정도를 자랑스럽게 차지하며 얼굴마담 역할을 하던 프라이탁 코너를 발견하고는 비로소 때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 그 프라이탁은 정말로 '낡은' 가방이 되었다. 가방 이음새가 너덜너덜해졌을 정도로 정말 많이도 메고 다녔다. 하지만 아직도 아웃도어 등 거친 활동에는 꼭 함께하는 애장품 중 하나로 남아있다.


프라이탁과 함께 한 지난 10년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무리 힙스터가 되고 싶어도 너무 시대에 앞서가면 안 된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그때 내 손에 들어온 가방이 치기 어린 스무 살이나 좋아할 법한 요란한 디자인이 아니라 심플하고 차분한 크림색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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