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의 '있어빌리티' 본격 탐구
날씨가 쌀쌀해진 뒤부터 내 아이폰이 마술을 부리기 시작했다. 남아있던 배터리 용량을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드는 마술.
아직 집에 갈 길이 먼데 배터리가 25%나 남아 있다고 안심하다가는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잠시만 정신줄을 놓고 스포츠 뉴스 좀 훑다 보면 주말 해외 축구 소식은 마치 블랙홀처럼 시커먼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집에 와서 충전기를 꽂으면 사라졌던 배터리 용량이 다시 짠 하고 나타난다. 그래도 좀 미안했는지 5%는 서비스로 추가해준다.
그렇다면 내가 스크린 속 세상과 단절되어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시간 동안 그 30%만큼의 대기전력은 어디서 농땡이를 부리고 있었을까. 약이 오른다.
사실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은 하고많은 스마트폰 기종들 중 아이폰을 선택한 순간 이미 예견된 수순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을 골랐던 이유는 그놈의 '있어빌리티' 때문이었다.
들고 다니면 어딘지 모르게 있어 보인다는 아이폰 '있어빌리티'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전문가들도 명쾌한 답변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물론 4년 차 아이폰 사용자인 나 또한 그 정확한 진위는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폰을 사용하며 묘한 자기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전혀 없지는 않다.
업무상 카카오톡보다는 문자 메시지를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텍스트를 입력하는 순간 일반 SMS의 초록색 상자가 iMessage의 파란색 말풍선으로 바뀌면 나도 모르게 상대방을 살짝 다시 보게 된다.
오. 너도 아이폰 사용자? 훗, 나도.
이런 느낌이랄까.
이렇게 남에게 이야기하기 민망할 정도로 소소한 기쁨을 제외하곤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는 나 자신이 특별히 세련됐다거나 쿨하다는 느낌은 아직까지 느껴보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또 한 가지 나의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은 뭔가 감성적이다'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미신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카메라의 화이트 밸런스 성능이 부족해서 사진이 다소 뿌옇게 보이는 아이폰의 단점을 숨기고 오히려 장점으로 포장하기 위해 소수의 극성 '애플 빠'들이 의도적으로 퍼뜨린 루머가 아닐까?
1970년대 독재정권 시절 국민들의 전력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라는 뜬소문을 퍼뜨렸다는 카더라처럼 말이다. 아니면 말고.
오히려 아이폰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내구성이었다.
불쌍한 스마트폰들을 내동댕이 치고 깔아뭉개고 지지고 볶았던 수많은 유튜버들의 내구성 테스트 영상을 보면 아이폰의 내구성이 갤럭시나 V 시리즈에 비해 떨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수차례 검증된 바 있다.
하지만 올해로 4살이 된 내 아이폰은 여전히 흠집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아이폰의 '있어빌리티'를 그대로 발산시키기 위해 케이스 따위는 한 번도 끼우지 않았다. 요즘은 액정보호 필름조차 붙이지 않고 다닌다.
최근 폰을 바꾸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라서 '이제는 좀 고장나 주지 않으려나'라는 마음까지 생기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 아이폰은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이다.
새 폰은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대신 배터리 교체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날씨가 춥다고 해서 상습적으로 자체 조기 퇴근에 돌입해 버리는 배터리의 근무 태만을 더 이상 좌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찾아보니 불과 5일 전부터 아이폰 배터리 교체 비용이 거의 75%나 인상되었다고 한다. 아까보다 더 약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