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홍보용 떡볶이가 맛있을리가 없어

나는 그날 여자친구의 기분을 풀고 싶을 뿐이었다

by 껄룩

추운 날이지만 추위를 느낄 여유는 없다. 여자친구의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얼른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마음까지 꽁꽁 얼어붙을 것임을 나는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떡볶이.


그래, 떡볶이가 있다. 차갑게 굳은 여자친구의 마음을 푸는 데 따뜻하고 말랑말랑한 떡볶이만 한 게 없지. 당장 근처 떡볶이집을 찾아 눈알을 굴리던 도중 기가 막힌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며칠 전에 여자친구가 지나가듯 얘기한 적이 있다. 무슨 웹툰을 모티브로 한 떡볶이 푸드트럭이 코엑스에 있다고. 마침 코엑스와 멀지 않은 곳이다. 당장 지하철을 잡아탄다.


차디찬 일요일 저녁이었다. 그래서인지 푸드트럭들은 대부분 사장님 혼자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예의 그 웹툰 푸드트럭만 빼고.


푸드트럭은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웹툰 컷들로 외부를 랩핑해 놓았는데 나도 본 적이 있는 그림체다. 만화 속 캐릭터 '바비'가 분식집을 운영하는데 그걸 모티브로 브랜딩한 푸드트럭, '바비 분식'이다.



푸드트럭 앞 기다란 줄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 또는 그 여성들에게 붙들려 온 소수의 남성들이다. 아무래도 웹툰이 여성 주인공의 심리 묘사와 로맨스로 인기를 얻은 작품이다 보니 여성 팬이 많은 모양이었다.


거기에 떡볶이 조합이라니! 양념 하나도 안 치고 30년 평생 떡볶이를 싫어하는 여성은 만나본 적이 없다.


그런 생각 하던 즈음에 우리 바로 뒤에 줄을 선 남자가 옆에 서있던 여자에게 부질없는 불평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꼭 이렇게 줄까지 서서 먹어야 돼?


생판 모르는 남자들 사이에 왠지 모를 동지애가 생기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자친구들의 손에 이끌려 영문도 모른 채 줄을 서고 있던 다른 남자들도 다들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의 말이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라는 사실 또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아니 정말로, 지금껏 줄 서서 먹은 음식치고 기다린 만큼의 시간과 수고를 보상받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만족한 적이 있기는 했던가?


그리고 한때 관련 업계에 몸담았기 때문인지 이렇게 완벽하게 타깃 고객의 마음을 흔드는 마케팅을 보면 일단 경계부터 하게 된다. 마치 약장수는 다른 약장수의 말을 믿지 않는 것처럼.


이러저러한 이유로 음식 맛이 크게 기대되지는 않는다. 여자친구의 마음에 들기를 바랄 뿐이다.


바로 옆에서 홀로 가게를 지키는 랍스터 샌드위치 푸드트럭 사장님과 눈이 마주친다. 반은 질투심으로 빛나고, 나머지 반쯤은 애원하는 듯 촉촉한 눈빛이다. 나는 그 눈빛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 여자친구에게 괜히 말을 건다.


기획자 출신이랍시고 '역시 컨텐츠가 중요하다'느니 '상품은 마케팅하기 나름이다'느니 재잘대지만 여자친구는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눈은 메뉴에 고정되어 있다.


한참 기다린 끝에 드디어 김이 솔솔 나는 떡볶이와 어묵 튀김을 받는다. 추운 날씨에 음식이 식을까 봐 얼른 어묵 튀김을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엥?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맛이다.


이게?!


내가 평소에 자주 먹는 신*떡볶이의 어묵 튀김을 한 2~3배 정도는 더 농축시키는 것도 모자라 그 위에 생선기름을 한 번 더 발라 튀겼다고 해도 믿을 만큼 농후한 맛이다. 이 정도로 진한 맛의 어묵 튀김이라면 몇 개를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추운 날씨 덕인지는 몰라도 떡볶이 역시 상당히 맛있다.


ⓒ Instagram


이렇게 고객에게 상품에 대한 흥미와 호감, 기대감을 줘서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마케팅과 실제로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고객 경험이 만나면 모든 영리 활동의 최종 목적이자 끝판왕, 고객 만족이 탄생한다.


여자친구도 만족스러웠는지 이제야 웃기 시작한다. 나의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진다.


‘바비 분식' 푸드트럭을 기획하고 실행하신 기획자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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