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마다 선택에 기로에 선다.
나는 감히 주장한다. '남자에게 면도란 여성의 메이크업만큼 중요하다'라고.
메이크업 없이 문밖에 나서먼 마치 벌거벗은 듯한 느낌이 든다는 여성 지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격하게 공감되는 표현이다. 아, 물론 내 경우엔 면도를 안 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지만.
그런 맥락에서 여자들이 뿔테 안경이나 챙이 달린 모자, 후드 등으로 자신의 민낯을 조금이라도 가리려고 하는 것도 충분히 공감이 된다. 하지만 내가 수염을 깎지 않은 채로 위와 같은 방법을 쓰면 오히려 더 꾀죄죄하고 심지어는 흉악해 보이는 불상사가 발생할 것이다.
덧붙이자면 깎지 않은 수염은 마치 '나는 게으른 사람입니다'라는, 누구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정보를 전달하는 악성 광고 컨텐츠와 같다. 이러한 광고를 불특정 다수의 오디언스에게 무작위로 노출시키는 거나 마찬가지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광고주라면 그 에이전시는 당장 모가지다!
이렇듯 면도하지 않은 얼굴에 댈 수 있는 핑계나 감출 수 있는 방법 따위는 많지 않으며, 면도는 내게 외출 전 반드시 거행해야 하는 의식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런 나에게 성능 좋은 면도기를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말 해놓고 조금 웃기긴 하지만 나는 최근까지 오직 한 브랜드의 면도기만 쓰면서 살아왔다. 20대 초반부터 질레트 마케팅 전략의 노예로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질레트의 전략은 이렇다. 일단 젊은 남성들이 좋아하는 리오넬 메시, 박지성, 손흥민 등 스포츠 스타들을 모델로 내세운 광고를 만든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이 광고를 최대한 많이 노출시킨다. 그러면 아직 합리적인 구매 판단력이 영글지 않은 젊은 남성층은 그런 광고에 혹해서, 또는 이것저것 따지는 게 귀찮아서 자신의 첫 면도기로 질레트를 선택한다. 그리고 소모품인 면도날은 자사 제품만 사용 가능하게 만들어 사용자를 평생 고객으로 만든다. 물론 이것은 경험담이다.
이에 질레트의 마수에 붙잡힌 나 같은 남성들을 구제할 스타트업이 등장했으니 미국의 '달러 쉐이브 클럽'과 이를 카피한 한국의 '와이즐리'다. 이들 스타트업은 저렴한 가격과 고객이 원하는 주기마다 면도날을 배송해주는 정기구독 서비스의 편리함으로 남성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남자는 귀찮음의 노예다. 면도날을 다 쓸 때마다 새로 구입하는 일은 해본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매우 귀찮다. 그런데 이걸 대신해주는 데다 가격까지 저렴하다니!
나는 이번에도 귀찮음에 당해버렸다. 내 사용 패턴에 딱딱 맞춰 면도날을 집 앞으로 배송시켜 주는 정기구독 서비스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와이즐리 면도기로 갈아탄 것이다.
처음 택배로 받은 와이즐리의 스타터 세트는 면도기와 면도날이라는 간단한 제품 구성, 심플한 패키지 디자인과는 대조적으로 꽤나 정성스럽게 제작된 제품설명서가 인상적이었다. 구매 고객에 대한 감사 편지와 면도하는 팁, 회사 소식 등이 수록된 매거진 형태였다. 정성은 갸륵했지만 '요새 이런 걸 누가 봐?' 하며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던 기억이 난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환승은 실패였다. 와이즐리의 면도기로 바꾼 이후 자꾸 코밑과 턱에 상처가 생기고 주변 피부가 불그스름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참고로 면도하다가 난 상처는 내가 거칠고 세심하지 못한 남자라는 사실을 광고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런 광고역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모가지다!) 당장 다른 면도기를 살 순 없고, 얼굴에 계속 상처를 내고 싶진 않았기에 부랴부랴 쓰레기통을 뒤져 엉망으로 구겨진 설명서를 꺼낸다.
설명서의 팁에 따라 따뜻한 물에 수염을 불리고, 역시 따뜻한 물로 면도날을 데우고, 면도할 땐 순방향 먼저, 역방향으로 마무리하는 4단계 과정을 거치니 그나마 상처 없이 면도가 가능했다. 어째서 그토록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서를 만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건강한 면도 습관을 기른다는 마음으로 저 4단계를 매일 성실하게 이행했다. 하지만 피곤한 아침마다 불리고, 데우고, 순방향, 역방향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예전에 쓰던 질레트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슥슥 밀어도 깔끔하게 면도가 되었었는데!
나는 아직도 매일 아침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와이즐리의 정기 구독을 취소하고, 내 책상 서랍을 뒤져 어딘가 처박혀 있는 질레트 면도기를 다시 찾아내고, 질레트 면도날을 새로 구입하는 크나큰 귀찮음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매일 아침 불리고, 데우고, 순방향, 역방향의 소소한 귀찮음을 그냥 참을 것인지.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귀찮음의 노예인 것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