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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Nov 21. 2022

로봇 청소기 후기

  이사를 하며 로봇 청소기를 같이 구입했다. 손님이 오질 않는 이상 나는 청소에 워낙 관심이 없기도 하고, 집도 넓어져서 도저히 내 의지력으로는 청소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대학생 신분으로 로봇 청소기는 보통 부담스러운 몸값이 아니었지만, 그래, 삶의 질도 높이고 같이 사는 부모님께 효도도 할 겸 큰맘 먹고 녀석을 모셨다. 그러나 이놈과 나의 첫 대면은 그렇게 순조롭지는 못했다.


  녀석이 처음 우리 집을 청소하면서 둘러 다닐 때,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어디에 낑겨서 나에게 살려달라고 외쳐댔다. 전기 코드, 부엌 매트, 드레스룸, 조금이라도 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빽빽 울어댔다. 베란다로 탈출 시도한 것도 덤이다. 그 시간 동안 난 녀석에게 한 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고, 그냥 내가 빗자루 들고 청소하는 게 더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을 불러온 걸 후회했다. 그래도 끈기를 가지고 놈의 마음을 맞춰주었다. 그 와중에 기특하게도 우리 집 구조를 구석구석 기억하여 자신의 메모리와 내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단다. 나는 그 지도를 보고 녀석이 가면 안 되는 화장실, 베란다 등을 일러주고, 나도 녀석이 싫어하는 것들을 청소할 때마다 정리해 둔다. 고용주로서 녀석의 업무환경을 쾌적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자 녀석이 살려달라는 소리를 점점 안 하게 되었다. 이 요망한 건 우리 집 구조도 익혔으니, 본인이 효율적으로 청소하는 동선을 만들고 청소시간도 반으로 줄었다. 지금 와서는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청소를 마치고 제 자리로 돌아온다. 이제야 녀석을 큰돈 주고 모셔온 보람이 생겼다. 

  이제 녀석과 트러블은 없지만 계속해서 유지관리와 업무 지시를 하고 있다. 녀석이 싫어하는 물건들도 매번 정리를 해야 하고, 센서가 이물질로 가려지지 않게 간간이 닦아주어야 한다. 녀석이 청소를 마치고 스테이션에 돌아오면, 녀석의 엉덩이에 장착된 물걸레를 꺼내서 빨아야 한다. 내가 물걸레를 빠는 동안 녀석은 말없이 본인 몸속에 쌓아둔 먼지를 비운다. 매일 정해진 합을 맞추어 역할분담을 하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다. 덕분에 난 부지런해졌다. 왜 바닥만 청소하냐는 지적도 받고 책상과 책장, 로봇 청소기가 청소를 해 주지 않는 곳을 직접 청소하게 됐다. 이전의 나라면 먼지가 쌓이든 말든 거들떠보지도 않는 부분들을 청소하고 있다. 집안일이 하기 싫어서 데려온 로봇 청소기가 오히려 내게 부담스럽지 않은 일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부지런히 청소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엄마도 이제 청소를 잘 신경 안 쓰게 됐다고 좋아하신다. 녀석이 불러온 변화다. 내 방의 경우에는 내가 샤워할 때 돌려놓으면 알아서 청소를 다 한다. 가끔 씻기 귀찮은 날에도 청소를 하기 위해 씻는다. 몸과 방이 같이 깨끗해지는 이 상황이 매번 상쾌함을 배로 만들어 준다. 지인들과 떠들다가 가끔씩 집안일 얘기가 나오면 꼭 로봇 청소기를 언급한다. 평소 깔끔하고 청소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에게는 모르겠다. 내게는 보이지 않는 부족한 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같이 청소하는 습관마저 없던 사람에게는 로봇청소기가 꽤 좋은 효과를 보일 수 있다. 이런 계기가 나를 행동하게 하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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