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여는 모더레이터
나는 라이프쉐어 모더레이터가 되기전, 이벤트 마케팅과 음반 제작일을 했었다. 현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던 상황은 거의 없었다. 그때 많은 것들을 배웠다. 작은 것에도 진정성을 다하는 법, 관객의 시선에서 타임테이블을 시뮬레이션 해보는 법, 누군가의 불편과 편안함을 상상해보는 방법 등이었다.
실제로 관객은 공연장에서 라이브 음악을 듣기 전까지 수많은 작은 정성들을 느낀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공연의 만족도와 직결된다.
관객이 공연장을 찾을 때 길거리에서부터 만나는 알록달록한 포스터, 티케팅을 하면서 인사를 나누는 스텝들의 표정과 목소리, 리허설이 한창인 무대에서 쿵쿵거리며 가슴을 때리는 베스이 기타 소리와 그에 섞이는 하우스 음악, 그리고 지하 공연장 특유의 냄새. 손에 쥐어진 티켓과 기다림의 시간. 그리고 마침내 장막 뒤로 그림자만 보이며 등장하는 밴드 맴버들의 모습들까지.
이 모든 시각, 후각, 청각의 정보들이 쌓여 마침내 클라이막스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가슴에 터질듯한 희열을 느끼게 한다. 이런 과정없이 단하나의 히트곡으로 관객의 감동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관객의 수준도 너무 높을 뿐더러, 마음을 다하지 않은 현장에 감동이란 있을 수 없다.
시각 자료에는 많은 것들이 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행사의 톤앤매너를 보여줄 수 있는 메인 포스터이다. 하지만 그 외에도 더욱 정성을 드린다면 참가자들에게 사전에 보내는 초대장, 인스타그램용 디지털 포스터, 현장 부착용 포스터, 길안내 포스터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이벤트 성격에 따라 적절히 '페브릭'을 사용하면 매우 효과적인 연출이 된다. 조금 오가닉하거나, Zen 스타일의 이벤트라면 생지천, 삼베, 한지 등을 활용하여 데코를 하면 참가자들에게 편안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더불어 이곳이 어떤 무드로 진행되는 곳인지 한번에 전달할 수 있다.
라이프쉐어에서는 대화 워크샵에서는 페브릭으로 만든 가렌다를 많이 연출한다. 알록달록한 색상이 공간에 케쥬얼함을 더해 준고, 생지천과 마찮가지로 천 재질의 소품은 딱딱한 사무공간에서도 무의식적으로 편안한 감성을 느끼게 한다.
더불어 명상과 요과와 관련된 워크샵이라면 만다라 또는 코끼리 프린팅 등의 인도 느낌의 페브릭을 사용하고, 조금더 아웃도어 느낌이라면 연출을 위한 1인용 텐트 또는 캠핑 페브릭을 활용하여 따뜻함을 준다. 이런 종류의 데코 소품들은 무게도 가볍고, 설치도 용이하지만 시각적 효과는 무척 커서 든든한 지원군들이 되어준다.
비대면 상황에서는 같은 키컬러와 폰트를 맞춘 화상채팅 배경화면과 슬라이드가 준비될 수 있다. 더불어 모더레이터와 보조 진행자들이 같은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것도 귀여운 연출이 될 수 있다. 또한 식물과 창을 통한 햇빛이 있다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너머 아주 좋은 연출이 될 수 있다. 창 넘어 특별한 VIEW가 있다면 다른 랜선 참가자들에게 작은 여행의 기분을 선사하게 해줄 수도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시각 자료 중에 또 한가지 매우 중요한 것은 조명인데, 이는 추후에 답사편에 다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라이프쉐어에서는 가장 공을 들여서 준비하는 것이 음악이다. 최근에는 너무나도 좋은 플레이리스트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훨씬 수월해졌지만, 그래도 상황에 따른 여러가지 플레이리스트의 준비는 필수이다.
이때 역시 이벤트의 성격에 따른 준비가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집중력을 요구하는 교육 프로그램인지, 이완과 상상이 중요한 육체 프로그램인지, 참가자들의 참여가 활발하게 일어나야하는 엑티비티한 성격인지 먼저 파악해야한다.
먼저 음악은 크게 입장, 몰입, 퇴장. 세가지 구성으로 나눈다. 참가자의 활발한 대화가 일어나야하는 라이프쉐어 대화 워크샵의 경우 입장시에는 편안한 인디 어쿠스틱 음악을 주로 튼다. 꽉 짜여진 K-POP은 처음부터 활력을 주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고, 클래식은 자칫 고루해보일 수 있다. 너무 속이 비어보이는 인스트로멘탈 음악은 처음에 입장해서 대화할 사람도 없는 참가자들을 뻘줌하게 만들수도 있다. 그래서 악기가 많이 들어가지 않지만 적절히 가사도 들어가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인디가요 등이 제격이다.
음악의 볼륨은 입장 때는 밖과 다른 분위기 환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카페 정도의 크기로 튼다. 카페에서는 음악을 옆사람의 대화는 잘 들리지 않지만, 내 눈 앞에 있는 상대와의 대화는 잘 들릴 수 있는 크기로 세팅되어 있다. 이를 참고하면 좋다.
분위기가 점점 고조될 때는 멜로우 힙합을 많이 사용한다. 물론 처음부터 크게 틀지는 않지만,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고조 시점에는 옆 팀의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볼륨을 다시 카페 볼륨 정도로 맞춘다. 힙합의 리드미컬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공존하는 멜로우힙합은 참가자들의 대화의 박자를 더욱 신나게 만든다.
아웃트로(outro)는 사람들이 퇴장을 하거나, 돌아가기에는 아쉬운 사람들이 남아 서로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점이다. 공연이 끝나고, 잔여 감정들이 아쉬운 사람들이 무대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서로 너무 좋았다며 후기를 나누는 광경과도 비슷하다. 이때는 가장 자유로운 음악을 틀 수 있는 시점이다. 참가자들의 나이 때를 고려하여 그 나이때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도 좋고, 오늘의 이벤트와 어울리는 POP을 틀어도 좋다. 이전에 분위기가 너무 타이트 했다면 여유있는 chill 음악을, 이전에 분위기가 너무 엑티브한 분위기 였다면 잔잔히 정리하는 음악을, 또 계속 다운되는 분위기였다면 의도적으로 활기찬 음악을 줄 필요가 있다.
음악의 전환으로 참가자들의 마음이 더 머물수 있도록, 또는 서로에게 더 너그러워질 수 있도록 얼마든지 연출할 수 있다.
뭐 이런 것까지 신경을 쓰나 싶을 수 있지만, 향은 생각보다 큰 정서적 요소가 된다. 아무리 안락한 택시를 타도 꿉꿉한 냄새가 나면 기분이 나쁠 것이다.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들어간 카페에 아주 좋은 커피 향이 난다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우리느 생각보다 향에 민감하다.
먼저 이벤트가 진행되는 공간에 환기가 가능하다면, 가장 먼저 환기를 해야한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 어떤 향을 맡으면 가장 편안하고 기분이 좋을지를 상상해본다.
마치 잘 가꿔진 가정집에 온듯한 느낌이 필요하다면 코튼 향의 향초를 쓸 수 있다. 공간이 크지 않다면 의도적으로 커피를 내려, 커피향을 공간에 입힐 수도 있다.
조금 머리가 상쾌해지고, 가슴이 열리는 기분을 주고 싶다면 숲 향을 느끼게 해주는 디퓨저를 사용할 수도 있다. 또한 유칼립투스 스타일의 선향 인센스도 효과적이다.
또한 공간의 크기에 따라 이국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주고 싶다면 침향 인센스를 태워 사용할 수도 있다. 인센스도 밀키한 느낌의 로맨틱한 향과 나무 냄새가 강한 캠핑 스타일의 인센스 등 그 종류가 참 다양하니 여러가지 향을 써보며 나의 이벤트가 가장 적합한 몇가지를 선정하여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오늘은 보이지 않지만, 챙기면 정말 좋은 세가지의 작은 연출법들을 챙겨보았다. 물론 이 이외에도 다과며, 조도, 의자, 방석, 온도, 습도, 테이블, 쇼파, 뷰 등 정말 다양한 배려가 존재하지만 소수의 인원으로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볼 수 있는 것들만 간추려 놓은 것이니 한번 참고해보길 바란다. 누구나 모더레이터가 될 수 있지만, 누구나 편안하고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를 낼 수는 없다. 이 같은 작은 정성들이 모여 마음을 열고, 감동을 줄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