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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원 Feb 27. 2017

Life Share 합정 <1기 후기>

일상 여행의 실험

일상 여행의 실험. 일단은 성공. 


될까 말까 했던 기획에 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관심을 주셔서 얼떨떨했습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거짓말 같았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 2월 25일입니다. 생판 모르는 6명의 어른 사람들이 합정동에 모여서 1박 2일을 함께 보냈습니다. 캠프도 처음 진행해보는 데다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 한 집에서 지내게 한다는 것이 조금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짧은 여행이 끝나고 라이프쉐어 1기의 만족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높네요. 올 때는 따로따로 왔다가 갈 때는 훈훈한 친구들이 되어 돌아갔다는 라이프쉐어 1기의 지난 1박 2일 이야기 조금 들려드리겠습니다. 




낮맥을 마실 때 우리가 언제 남이더냐


캠프를 준비하며 저는 이상하게 참 설렜습니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탓에 '어 이거 왜이리 일이 많지?' 하면서도 막 캠프날 열심히 놀 생각을 하면 늘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다 캠프날이 다가오자 그 설렘이 더 커져서 시간 관리를 못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약속 시간 오후 3시를 앞두고 저는 분주했습니다. 급하게 라이프쉐어 카드를 마무리하고, 아침에 마트에서 사온 먹을 것과 냉장고 안에서 차가워진 브루클린 라거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습니다. 혹시 바닥에 뭐 떨어진 것은 없는지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연이어 3명의 참가자들이 도착했습니다. 시간도 잘 지키시는 착한 사람들... 아직 도착하지 못하고 길을 찾느라 전화하는 사람들. 맥주 마셔도 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 초보 호스트는 정신이 없습니다. 제가 빨리 나서서 처음 만나 어색할 이들을 친하게 만들어줘야하는데요. 어라.. 근데 어색할 거라고 생각했던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브루클린 라거를 흡수하기 시작한 여성 멤버들은 서로 너무 반가워하며 이미 친해지고 있었습니다. 내일까지 먹어야 할 맥주는 벌써 동이 나고 있었습니다.


'저. 그거 내일까지 먹어야 하는데..'


내면의 목소리는 결국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약속한 것처럼 가지고 온 작은 선물들을 교환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준비성입니다. 저는 그 사이 쭈뼛 쭈뼛한 남성 참가자를 위해서(저 포함) 자기소개 카드를 꺼냈습니다. '내면 지도'라고 간단하지만 서로를 잘 알 수 있게 돕는 자기소개를 하는 툴이었습니다. 이걸 이용하니 7명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2시간이 소요되더라고요. 모든 참가자가 모이기까지 딱 적합한 시간이었습니다. 근데 이게 분위기가 이상합니다. 이미 라이프쉐어를 웬만큼 다 한 것 같았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벌써 꽤나 한 무리처럼 보였습니다. 아직 시작인데요..





이야기 안듣고 혼자 카메라를 응시하시는 치명적인 훈남 킬리 미소





합정동에서 망원동 로컬 구석구석 먹방


자기소개 타임 이후 우리는 빛의 속도로 방배정을 했습니다. 역시 여행은 숙소에 짐을 푸는 맛이죠. 가장 햇살이 좋고 넓은 방에는 여성 참가자들이 나머지 아기자기한 방들에는 남성 참가자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초롱하우스는 총 3개의 방으로 구성되어있는데요. 참가자들이 저도 여기서 자고 가라고 해서 얼떨결에 저도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방도 배정받고 짐을 놓고 옷도 가볍게 갈아입으니 한결 편합니다. 저마저도 여행 온 기분이 났습니다. 우리는 짧은 휴식 후 합정동 로컬 마실을 나가기로 했습니다.  


참가자 대부분은 합정동을 자주 와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다니는 합정동의 길과는 조금 달랐나 봅니다. 관광객을 피해 높은 월세를 피해 조금씩 뒤로 안으로 숨어가고 있는 로컬 상점들. 오래 동안 동네의 휴먼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었던 터줏대감 카페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아니면 절~대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허름한 음식점이 이지만 놀라운 맛이 숨겨져 있는 로컬 맛집들을 하나하나 짚어갔습니다. 합정동의 새로운 발견이라며 다들 제가 알려주는 정보를 너무 좋아해 주었습니다. 에헴. 나름 홍대 권역만을 다루는 여행책을 냈던 저입니다. 그런데 즐거워하던 참가자들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져 갑니다. 여기저기서 항의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대체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맛집을 소개해주면서 대체 왜 한 군대도 들어가지 않냐는 것이었습니다. 들어보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라이프쉐어고 로컬 여행이고 다 집어치우고 푸드 파이터 투어를 만들겠노라 성난 황소들에게 약속하며 재빨리 망원동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망원시장에 도착해 유명한 로컬 상점들로 이들을 안내했습니다. 사실 저도 배가 고팠습니다. 우리는 물 만난 고기, 이곳은 거리의 스탠딩 뷔페였습니다. 역시 맛있는 것 많이 먹는 것이 최고의 여행입니다. 총 3 군대에 들러 정말 밀어 넣을 수 있는 곳까지 갖가지 종류의 음식을 밀어 넣고 우리는 겨우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달콤한 빵도 잊지 않았죠. 


망원동에서 무거워진 몸을 가지고 우리는 다시 합정동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쓰리고 카페로 들어가 맥주와 칵테일, 과일 음료 등 각자 취향에 맞는 음료 하나씩을 먹으며 커다랗게 불러온 배를 달랬습니다. 음료수 배는 또 따로 있으니까요. 음악도 편안하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뭔가 더는 없을 것 같았죠. 이쯤 되니 슬슬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캠프를 이대로 끝내도 모두들 만족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라이프 쉐어 합정은 단순 로컬 맛집 투어가 아니라 인생 토론이 중심인 캠프입니다. 메인 프로그램을 하기도 전에 긴장을 놓을 순 없었습니다. 모두가 노곤 노곤해하는 그 시간 잊지 않으려고 꽁꽁 숨겨온 라이프 쉐어 카드를 테이블에 펼쳤습니다. 




그림책 전문 서점 베로니카 이펙트에서 책을 우아하게 보는 위선 


망원시장에서 음식을 기다리다 급 페북 친구 신청 타임







1:1 라이프쉐어. 결국에는 한 무리가 되다. 


카드는 '일, 사랑, 관계, 여행, 가치, 삶, 꿈' 총 6가지 키워드와 각각의 질문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키워드 카드를 펼치면 질문이 나오는 형태죠. 질문은 그동안 라이프 쉐어를 알려주었던 유럽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또 읽어봤던 관련 서적 중에서 괜찮은 문장들로 추려보았습니다. 참가자들은 각자 맘에 드는 두 장의 카드를 선택합니다. 카드에 어떤 질문들이 있을지 궁금증을 안고 우리는 조용히 다시 초롱하우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선택한 카드 중 공통점이 있는 사람들 위주로 1:1로 짝을 정했습니다. 캠프의 핵심 프로그램인 라이프 쉐어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언제 웃고 떠들었냐며 처음으로 1기들은 자신들의 짝과 함께 진지한 대화의 시간에 돌입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의 무리가 되어서 라이프 쉐어를 진행했다는 전설




참가자분들은 질문을 어려워하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서로의 생각들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때가 가장 호스트로서 행복했습니다. 정말 오랫동안 그려왔던 장면이었거든요. '내가 즐거웠던 이 대화법으로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다. 또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여행하고 싶다.' 이 생각이 현실로 펼쳐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혼자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멀리서 차를 마시며 이 광경을 한참을 바라봤습니다. 참 진중하게 잘 참여해주시더라고요. 나이와 성별을 떠나 각자 삶에 대한 고민은 다 있으니까요. 


그런데 대화 짝을 바꾸는 시점에서 자연스럽게 1:1 무리가 셋이 되고, 다시 여섯이 되어 모두가 한 무리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될 거라고 조금은 예상했지만, 이리도 자연스럽게 연결될 줄은 몰랐습니다. 서로의 라이프 쉐어 중에 인상 깊었던 질문에 대해 모두가 대답해 보는 방식으로 우리는 한참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어려운 질문도 간혹 있었지만 평소에 잘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들을 꺼내고 공유하는 시간이 값지게 느껴졌습니다. 


'저.. 질문이 좀 너무 어렵나요?'

'좀 어렵긴 해요. 그런데 괜찮아요. 언제 이런 이야기 남들이랑 해보겠어요. 재미있어요!'





취침대신 야반도주


라이프 쉐어를 하다 목이 마르면 차를 마시고, 맥주를 마셨습니다. 이야기는 끊이질 않고 정확히 3시간 30분간 이어졌습니다. 시간은 12시 30분. 이제 적당히 실내에 있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고, 몇몇 멤버들은 살짝 지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다들 바쁜 삶을 살다 1박 2일 겨우 시간 내어서 참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끊어갈 타이밍이었죠. 하지만 이대로 이 아까운 밤을 끝내고 싶지도 않습니다. 


합정동의 저녁에는 아주 재미난 곳들이 많습니다. 굳이 힙스터들이 가는 클럽이 아니더라도 주말 저녁에는 음악 듣거나, 조용히 와인을 마시며 침전할 곳들이 많죠. 게다가 오늘 한 레코드 바에서는 제 일본인 친구 한 명이 음악을 틀 예정이었습니다. 사전에도 말은 해놓았지만,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혹시 걸어서 1분 거리에 레코드 바에서 친구가 음악을 트는데 같이 갈 사람 있어요?'

'지금 옷 입으면 되나요?'


스르륵하고 4명이나 일어나 잠바를 챙깁니다. 편안한 차림에 잠바 하나 걸치고 바에 가는 게 로컬의 멋이죠. 저는 이 사람들이 너무 좋습니다. 우리는 심야의 합정을 달려 한 로컬 바에 도착했습니다. 각자 먹고 싶은 위스키며 칵테일을 시켜 홀짝대며 음악을 즐겼습니다. 오늘의 디제이 철홍도 우리를 환영해 줍니다. 모두들 어디 정말 동남아 여행 온 것 같다며 순간을 마음껏 즐깁니다. 그러다가 아까 낮에 들렸던 쓰리고 카페의 사장님도 우리 자리에 잠깐 합류하십니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우리는 한 차를 더 달려서 겨울 꼬막과 함께 한라산을 열심히도 올랐다고 합니다.  











아침을 깨우는 힐링 요가 


낮에 만나 저녁이 되었고, 우리는 함께 잠을 잤고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이 당연한 일들이 합정동에 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니 특별한 아침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지난밤 유독 참으려고 했지만 너무 좋은 분위기 덕분에 한참을 한라산을 올랐던 제게는 두통으로 더 특별한 아침이었습니다. '좋은 술도 좋은 사람과 먹어야 맛있다.' 킬리 훈남의 명언과 함께 아늑해지던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임무가 있습니다. 바로 일찍이 초빙한 요가 선생님을 맞이해야 했고, 거실도 정리해야 했습니다. 겨우 선생님 도착 10분 전에 정신을 차리고 거실을 정리하려는 찰나 요가 선생님이 도착했습니다. 결국 함께 거실도 치우고 빵과 차로 간단한 아침도 먹었습니다. 이제 운동을 할 차례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름 웰빙 캠프 '라이프 쉐어 합정'입니다.  



가만히 자신을 몸을 지켜보는 참가자들. 몸이 제발 나좀 챙겨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습니다.


요가 클래스는 지친 직장인들의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힐링 요가로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몸을 지켜보고는 나중에는 작은 볼을 가지고 요리조리 누워서 근육을 푸는 신기한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약 80분 동안 진행된 수업은 여기저기에서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로 진행되었습니다. 끝나고 나서 한결 온화해지고 밝아진 참가자들의 표정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어제부터 어깨 통증으로 팔을 자꾸 돌리시던 참가자 한 분은 너무 어깨가 편안해졌다고 좋아해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참가자 분들 중에는 명상을 꾸준히 하고 계신 분이 두 분이나 계셨습니다. 나름 우리 취향이 통했었네요. 





마지막 티타임


요가 수업이 끝났습니다. 사실상 공식적인 '라이프 쉐어 합정'의 일정은 모두 끝이 난 샘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아쉬웠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바로 일어나야 하는 멤버들도 너무 아쉬워하며 헤어졌고, 딱히 일요일 일정이 없었던 멤버들은 남아서 계속 차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초롱하우스에는 꽤 다양한 차가 마련되어 있기도 합니다. 사실 거의 20시간을 같이 붙어있었는데, 1박 2일이 너무 짧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막 마음을 열고 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확실히 같은 서울 안이라도 이렇게 하룻밤 어디서 함께 자는 것이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 같다며 말합니다. 몇몇의 멤버들은 합정동에 남아서 꽤나 오랜 시간 더 대화를 나누다가 돌아갔습니다. 





협찬해주신 브루클린 브루어리, 매거진 아트레블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1기를 마치며


처음에는 사실 '와. 정말 진행 잘되었다.' 하고 행복감에 젖어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저한테서 오랜만에 밝은 표정을 본다며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피드백을 구했던 참가자들에게 후기를 받아보고 나니 다시 겸손해지더군요. 상대적으로 식사가 부족했다. 로컬 투어를 할 때 뒤쳐지는 멤버들도 신경을 써달라. 참가비가 오르더라도 지역 맛집을 더 가고 싶다 등등 생각지도 못한 피드백들이 있었습니다. 2기부터는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요가를 할 때 거실이 좁았던 것도 아쉬웠고요. (그래서 날이 좀 따뜻해지면 아예 한강으로 나가서 할 계획)


하지만 참가자 모두가 정말 만족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분은 진짜 훌륭한 여행을 한 것 같아 좋았다고 하고, 어떤 분은 최근 일주일 동안 떠났던 여행보다 더 힐링을 받았다고 합니다. 스스로도 참가자분들이랑 깊은 교감을 하고 덕분에 깊이 있는 여행을 했다는 기분이 들어요. 일상 근처에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실험했었던 건데요. 성공은 아니더라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음에 계획하고 있는 캠프 아이디어를 다들 너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행복했습니다. 계속 실험하고 여행할 수 있겠다는 기분.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물론 조금씩 나아져야겠지만요. 


앞으로 또 2기, 3기를 진행하며 어떤 분들을 만날지도 기대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도 언젠가 여행의 한편에서 만나기를요. 라이프 쉐어 캠프에서라면 더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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