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는 러시아 남자

우리는 모르지만 지구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

by 제피



집에 가고 싶은데, 여긴 내 집이 아니야.
집이 너무 멀다.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고 고달프네…

2022년 2월 어느 날, 회사는 퇴사 직전의 근로자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았고 나는 햇살이 과도하게 들어오는 창 옆에서 아무 의미 없는 인터넷 사이트들을 헤엄치며 시간을 보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고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하던 중 네이버에서 속보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뉴스를 보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나 서울 마포구의 사무실과는 한참 먼 곳이라 잔혹한 현실을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한 흥밋거리로만 즐겼다. 점심을 먹고 와서 전쟁과 관련된 뉴스를 읽으며 하루를 보냈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같은 걸 계속 읽으며 월급을 날로 먹었다. 세계여행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지만 내가 갈 곳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불구경하듯이 소식을 즐기고 잊었다. 출국하는 나를 태운 비행기는 전쟁터와는 한참 먼 방향으로 이륙했고, 여행이 계속되고 피부가 검게 타는 동안 전쟁 소식 역시 옅어져 갔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Yerevan) 버스 터미널에는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Tbilisi)로 가는 국제 버스가 있다. 말이 좋아 버스지 그냥 학원 봉고차 수준의 차다. 아침 이른 시간에만 다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 준비해 차에 탔다. 하루 단 한 편만 있는 교통편이라 그런지 좁은 봉고차는 국경을 넘을 사람들로 가득했다. 정원은 대략 14명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 기억 속의 탔던 사람도 그 정도 됐던 것 같다. 숨이 막혔다. 후… 이걸 타고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6시간을 가야 한단 말이지? 교통 인프라가 발달하지 않은 나라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숙명이다. 만약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위스 같은 나라를 여행했다면 편안한 기차에서 최소의 흔들림으로 알프스를 감상하며 편하게 국경을 넘거나, 리무진 버스의 등받이를 뒤로 젖혀 잠을 자거나 넷플릭스 저장해둔 걸 보면서 이동할 것이다. 하지만 불편한 나라에 와서 불편하게 여행하는 건 각자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난 그저 주머니 사정이 아쉬워서 값싼 나라로 온 것이다. 같은 차에 탄 다른 이들도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20220906_142309.jpg “그렇지, 근데 이제 아르메니아 체류 기한이 끝나서 조지아로 넘어가려고. 난 내 나라에서 도망쳐왔어.”



내 옆에 앉은 러시아 남자도 그만의 이유가 있었다. 키가 크고 피부는 어디 아픈 것처럼 창백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이 남자가 내 옆에 앉았을 때 나는 조금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여행 기간이 늘어나는 동안 별의별 사람과 같이 앉아 이동해왔지만 그만큼 첫인상이 무서운 사람은 없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은 키가 작고, 피부가 어둡고, 자주 웃어 보기 좋은 방향으로 주름진 자들이라 적어도 불편한 마음까진 들지 않았다. 지금 내 옆에 앉은 이 남자는 지금까지 봤던 이들과 달랐다. 경험에 따르면 이 남자가 나를 해코지하거나 내 물건에 손을 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런 첫인상에 주눅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만약 내가 마동석이나 추성훈 같은 얼굴과 몸을 가졌다면 가볍게 무시할 수 있겠지만, 나는 왜소한 전형적인 동양 남자다. 차는 제시간에 출발했고 나는 일찍 일어나느라 못다한 잠을 청했다. 남자는 조그만 노트북을 꺼내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아직도 이 남자를 ‘러시아 남자’로 부르는 이유는 내가 이 남자의 이름을 까먹었기 때문이다).



두 시간쯤 달려 차는 휴게소에 도착했다. 내부가 답답하기도 했고 곧 인도로 떠나기 때문에 푸른 산맥이 그리울 것 같아 조금이라도 눈에 더 담고 싶었다. 내 옆에 앉았던 남자도 나와 스트레칭을 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저 큰 남자가 스트레칭을 하려면 얼마나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할지 생각하다가 남자는 차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키가 더 큼을 느꼈다. 너 한국인이지? 여행 왔어? 옛날이면 모를까 이제는 한국인이냐고 묻는 게 그리 놀랍진 않다. 물론 아직도 동양인을 보면 중국인인 줄 아는 사람이 더 많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인임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 또한 많아졌다.

“어… 맞아. 그러는 넌?”

“난 러시아인이야.”

“오… 여행으로 온 건 아닌 것 같던데. 차에서 보니까 계속 일하고 있더라.”

“맞아, 난 디자이너야. 이번 주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 있어서."

"그런데 굳이 지금 국경을 넘어? 보통 그런 디지털 노마드들은 한곳에 오래 머무르잖아.”

남자의 그다음 대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지, 근데 이제 아르메니아 체류 기한이 끝나서 조지아로 넘어가려고. 난 내 나라에서 도망쳐왔어.



이 이야기의 시점은 2022년 9월이다. 당시엔 러시아가 생각 외로 고전해 총동원령을 검토하던 시점이었다. 어… 안 그래도 관련된 여러 뉴스를 보긴 했는데. 이거 물어봐도 되나? 혹시 징집을 피하려고? 남자는 물어보기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웃으며 답했다.

“하하, 요즘 들어 그런 친구들 많지. 근데 난 일찍 도망쳤어. 전쟁 초기부터. 3월부터 아르메니아에 왔으니까 벌써 6개월 됐지.”

여행 출발 직전에 그런 뉴스도 본 것 같았다. 경제 제재로 일부 러시아인들이 해외로 나가고, 그 덕분에 인접 국가의 물가, 특히 월세가 급등했다는 소식.

"난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 러시아 제2의 도시) 출신이야. 전쟁이 시작되고, 도시 곳곳에선 반전(反戰) 시위가 일어났어. 왜 굳이 전쟁해야 하는데? 너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같은 나라야. 조상도 같고, 역사도 공유하고, 물론 소련 이전에도, 언어도 같고, 문화도 같은. 지금은 다른 나라로 갈라졌지만, 굳이 싸울 이유가 없거든. 예전에는 러시아인이 우크라이나로, 그 반대로 여행 가는 사람 많았어. 보통의 러시아인은 그들과 싸우기 싫어해. 그래서 시위했고. 그런데, 그 시위하는 사람들을 잡아가더라고. 내가 아는 사람 몇몇도 잡혀갔어. 그때 느꼈어. 그다음은 내가 될지도 모른다. 그 전에 도망가야겠다고 느꼈지. 그리고 지금, 고향에서는 우리 또래들을 군대로 끌고 가려고 해. 물론 피테르(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약칭)는 가장 마지막에 끌고 갈 거야. 러시아 와봤어? 모스크바와 피테르는 러시아 나머지 지역과 전혀 다른 세계야. 아무리 인원이 부족해도 이 두 도시 청년들을 우선 끌고 갈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지금 하는 거 봐, 너도 알지? 시간 문제야. 고향에 남는다면 아마 내년이나 내후년엔 우크라이나 땅에서 죽을지도 몰라. 솔직히 너무 피곤해. 아무리 아르메니아가 말이 통해서 편하긴 해도(아르메니아에선 러시아어가 잘 통한다) 그래도 힘든 건 사실이지. 집에 가고 싶은데, 여긴 내 집이 아니야. 집이 너무 멀다.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고 고달프네…"


20230305_162237.jpg 사건은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 사건에 연루된 자가 내 바로 옆을 수없이 스쳐 지나갔다.



1시간을 더 달려 국경에 도착했다.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는 나는 아무 불편함 없이 조지아에 입국할 거라고 확신하지만, 러시아 사람인 그가 걱정됐다. 원래 조지아와 러시아는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는데, 전쟁으로 러시아인들이 조지아로 넘어와 물가를 감당 못 하는 수준으로 올려놨으니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그렇지만 다행히 남자도 조지아 땅을 밟을 수 있었고, 트빌리시에 도착했다.

“너 그럼 이제 어디서 머물게?”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트빌리시는 너무 비싸서. 산속 깊은 곳으로 갈까 생각 중이야.”

“그 비싸다는 물가 너희가 올려놓은 거 알지? (장난이다)”

“하하, 그래도 피테르보다 비싸겠어? 아무튼 잘 가고, 한국 꼬맹이.”

나는 그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 그렇게 어리지 않은데. 군대도 갔다 왔고…



명백히 휴전 국가지만 그 사실을 느낄 수도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한국 경기도의 어느 카페에서 글을 쓰며 2022년 9월을 회상한다. 아르메니아를 떠나 조지아에 도착한 날,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과 다시 국경 분쟁을 겪었다. 수도인 예레반에서 만났던 인연들은 안전하겠지만, 나라의 변두리 어딘가에서는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불꽃이 여럿 꺼졌을 것이다. 단지 ‘운이 좋았다’라고 말하기엔, 사건은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고 있고 그 사건에 연루된 자가 내 바로 옆을 수없이 스쳐 지나갔다. 아르메니아에 입국하던 때를 기억한다. 불과 2년 전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라는 사실은 이 나라 국민들마저 좌절감과 패배감에 휩싸여 살아갈 거라는 편견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곳에서 내가 본 건 힘이 넘치는 삶 덩어리, 여름을 즐긴 흔적의 땀, 웃는 얼굴, 그리고 환대와 사랑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커피를 마시고 강을 바라보고 산을 오르며 평화롭다고 느끼는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디선가는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총을 쏘고, 미사일을 날리고, 사람을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 사실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참 슬프다. 전쟁이란 건 서로의 이권을 위해 수많은 계산과 노림수가 모여 결정되는 행위지만, 그 결정 때문에 집에 돌아갈 수 없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필요 없는 분노와 혐오를 키우고, 방황하고, 꿈을 잃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이 밤을 쉽게 놔주지 않는다. 지구가 돌면서 이 밤이 전쟁터에도 드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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